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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제자가 경쟁사로 갔습니다

by 김민식pd 2022. 12. 9.

MBC를 명퇴한 후, 저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스쿨 대학원에서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과목은 <방송 제작 세미나>입니다. 1학기에는 이론 수업 위주로 예능 드라마 제작론을 강의하고요. 2학기에는 학생들과 다양한 영상을 기획하고 찍습니다.  

몇달 전 신입생이 저의 연구실로 찾아왔습니다. "교수님, 제가 고민이 하나 있는데요. 상의 좀 드릴 수 있을까요?"

평소 수업 시간 발표할 때 보면 진중하고 심지가 단단한 학생인데요. 어떤 고민이 있을까요? 

"실은 몇 년 전, 교수님의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오홀! 강의를 다니다보면, 청중들 반응은 갈립니다. 제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눈빛이 달라요. 제 책을 읽고 오신 분은 좀더 집중하고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래,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강의를 잘하나 한번 보자.' 저를 평가하듯 봅니다. 책을 읽은 독자는 저자와의 대화에 참여하고요, 읽지 않고 온 청중은 강의를 구경하지요.

저도 실은 그래요. 책을 읽고 나면, 저자를 직접 만나 글로 담을 수 없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싶어요. 도서관 저자 특강을 들으러 가는 저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직관하는 사생팬처럼 설렙니다. 설레지 않는 시간은 죽은 시간이에요. 기왕에 내 삶에서 2시간을 쓴다면 그 시간은 설레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자와의 대화를 듣기 전에 작가의 대표작부터 찾아 읽습니다. 그래야 강의를 듣는 게 더 즐거워요. 

"책을 읽고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 책까지 샀는데요. 외우는 건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영어 공부에 욕심이 나서요. 다시 도전해도 될까 싶어 여쭤봅니다."

제자의 고민이 뭔지 알 것 같았어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의 삶이 만만하지는 않아요. 첫째, 석사 학위 과정이니 수업을 듣고 과제를 내는 게 우선이고요. 둘째, 매일 발행되는 <단비뉴스>(학생들이 주도하여 만드는 온라인 뉴스 매체)에 올릴 뉴스나 영상물도 제작해야 하고요. 셋째, 언론사 공채 준비를 위해 지원서를 쓰거나 논술 스터디도 해야 해요. 이렇게 바쁜 와중에 영어 공부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꿈이 뭐에요?"

"피디가 되는 겁니다."

"그럼 학교 생활에 더 집중하는 게 나아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고 마음을 낸 건 고마운 일인데요. 피디가 굳이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어요. 나의 시간을 더 중요한 일에 써야해요. 나는 공대 다닐 때 수업에 흥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공 공부 대신 영어 공부를 한 겁니다. 전공을 포기하고 영어를 얻었지요. 모든 걸 다 잘 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석사 학위도, 뉴스 제작도, 언론사 입사도 무엇하나 포기할 수 없지요. 이럴 땐 영어를 포기하는 게 맞아요."

제자는 제가 영어 공부에 동기부여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나봐요. 영어 공부는 안 해도 된다고 그냥 학교 생활을 열심히 즐기라고, 어깨 툭툭 쳐서 돌려보냈어요. 

얼마 전, 그 학생이 문자를 다시 보냈어요. 

'교수님, 오늘 강의도 수고하셨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또 다른 조언을 얻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사실 제가 그간 KBS 시교PD 지역권으로 지원을 했고, 오늘 막 실무면접을 통과했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면접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막막해서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으실 때 궁금한 점들을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제 연구실로 불러 모의 면접을 진행했어요. 방송사 피디들은 신입사원 면접 볼 때 어떤 점을 보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내가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지원할 때 낸 자기소개서를 보고 그랬어요.

"정말 잘 썼어요. 나라도 이런 글을 보면, 뽑고 싶을 것 같네요. 지원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했어요. 이제 남은 건 운입니다. 어떤 심사위원을 만나느냐도 운이고요. 어떤 경쟁자를 만나는가도 운이지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기다리면 됩니다."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준 말.

"민균님, 고향인 전남에서 어린 시절 보내고, 광주에서 대학을 다녔지요? 그렇다면 서울에 가볼 기회가 많이 없었겠네요? 나도 그랬어요. 스무 살에 처음 서울 올라왔으니까. MBC 필기 시험 합격 통보를 받고 면접 보러 가는데 너무 긴장되는 거예요. 그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와, 나같은 촌놈이 여의도 방송사 구경을 다 해보는구나. 떨어지든 말든, 나중에 아이들에게 해줄 좋은 이야기거리 하나 생겼네.' 먼훗날 민균님이 TV를 보다 아이들에게 그럴 날도 오겠지요. "저기 방송사 보이지? 아빠가 옛날에 저기 가서 면접도 봤다? 방송사 높은 분들이 쫙 앉아있는데 말이지....."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좋은 추억 하나 만들러 간다고 생각하고 즐기고 오시어요."

며칠 후 문자가 왔어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늘 KBS 임원면접 결과가 나왔습니다..ㅎㅎ 정말 운좋게도 합격했습니다. 교수님이 조언해주신 대로 이야기 하나 만들러 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생 면담을 앞두고 제자가 보내준 자기소개서를 읽었어요.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어떤 질문을 할까? 고민하며 모의 면접을 보거든요. 그때 '아, 이 친구 진짜 진국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글에서 진정성이 줄줄 흘렀어요. 이 친구, 기왕이면 MBC 피디가 되면 좋겠다... 싶었는데요... KBS가 먼저 채어가버렸네요. 아웅, 아쉽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제 욕심이니까요.... 다음엔 MBC가 탐낼만한 제자를 키워보기로... ^^

"KBS 함민균 PD의 입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에서 강의한 첫 해, PD 후배가 나와 진심으로 기쁩니다. 이제 은퇴를 선택한 제가 할 일은 저의 경험을 나누고, 다음 세대의 꿈을 응원하는 것입니다. 내년에도 저와 함께 즐겁게 PD의 꿈을 키워갈 제자를 찾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에서 2023년도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저는 아직 강의에 초보이지만, 제정임 원장님, 심석태 교수님, 안수찬 교수님 등 막강한 실력을 갖춘 교수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기자와 PD의 꿈을 함께 키워보아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www.semyung.ac.kr/cop/bbs/BBSMSTR_000000000426/selectBoardArticle.do?nttId=119547 

 

세명대학교,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세명대학교,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www.se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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