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라면 피디 공채 지망생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겠다. 그리고, 몰래 관찰해서 영화를 무덤덤하게 보는 사람은 1차로 떨어뜨린다. 보고 나서 이러쿵 저러쿵 영화평을 하는 이는 2차로 떨어뜨린다. 하도 울어서 눈이 빨개진채 나오는 사람이 합격이다. 글이나 영상을 보고, 울고 웃고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 상상력의 소산이다. 상상력이 없으면 어떤 일에나 무덤덤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까? 무조건 많이 경험하고 볼 일이다.

나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두번 봤다. 뉴욕에 신혼 여행가서 보고, 10년 후 런던에 연수가서 또 봤다. 재밌는건 두번 다 보면서 울었는데, 눈물을 흘린 이유가 달랐다. 오랜 짝사랑 끝에 아내를 얻었는데, 처음 '레 미제라블'을 봤을 때는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테나르디에의 딸 이야기에 혼자 눈물을 흘렸다. 당시에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도 많이 울었다. 못생긴 남자가 예쁜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이야기... 왜 이렇게 슬프지? (험험험!...^^)



그런 내가 두번째로 '레 미제라블'을 봤을 때는 다른 대목에서 눈물을 쏟았다. 장발장이 사랑하는 딸 코제트를 위해서 마리우스를 구하러 가는 장면...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발장... 하수도를 걸어가며, '사랑하는 딸을 위해, 너는 내가 반드시 살린다.'라고 노래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두 딸이 생각나 펑펑 울었다. 그때 느꼈다. 아, 나도 아버지가 되어가는구나.

똑같은 뮤지컬이지만, 나의 경험치에 따라 감동받는 대목이 다르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범위 안에서만 감동을 느낀다. 

박웅현 님이 쓴 '책은 도끼다'를 보면, '지식이 많은 친구보다 감동을 잘 받는 이가 일을 더 잘한다.'고 하는데 백번 공감한다. 머리로 아는 사람은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을 절대 못  따라간다. 연출은 먼저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야 자신이 받은 느낌을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대본을 받고, 머리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만 해석하는 연출은 제대로된 감동을 시청자에게 전해 줄 수 없다.

느끼는 것은 자신의 경험 범위 안에서 가능하다. 직접 몸으로 겪어보거나, 안되면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이라도 늘려야한다. 즉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이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한다.

예전에 면접을 볼 때, 전형위원들이 모여서 '고시꾼은 뽑지 말자'고 했던 적이 있다. 몇년씩 스터디만 하며 공채를 준비한 사람을 뽑기보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려 온 사람을 뽑자는 취지에서 나온 의견이었다.

곧 면접이다.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기보다, 많이 느낀 것을 보여달라.

우리는 먼저 느끼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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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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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곽새미 2011.12.11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 한번 피디님 블로그를 찾게되는 끌림의 이유를 알것같습니다. 매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MYMBC 2011.12.11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도 뮤지컬 좋아하시나봐요~ 저는 '레미제라블' 보면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 흘러나오는 부분에서 펑펑 울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개인적으로 전 런던에서 본 '빌리엘리어트'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시작부터 끝까지 울다가 부어서 나왔거든요~ PD님 글 마지막 문단을 보니 괜시리 걱정이 되네요. 언시 준비한다고 스터디한건 몇개월 안됐는데 이것저것 해보고 방황하느라 졸업 후 공백이 길어졌거든요. MBC가 물리적으로 젊은 피만 원하는건 아니겠지요?^^

    • 김민식pd 2011.12.12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몇년전에 신입피디 평균 연령을 재봤더니 설흔 한 살 인가? 그렇더군요. 저 역시 설흔살에 입사했구요. 반드시 이래야한다! 는건 없는것 같아요~

  3. 행인 2011.12.17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글 보면서 무릎을 탁! 쳤네요... 저는 토익도 800대이고 3점 초반의 저질 학점대인데, 저만 서류 합격했다고 의아하다는 듯이 보는 고스펙 친구가 있었는데... 저의 다양한 경험을 가치있게 봐주셨나봅니다... 사실 저질학점에 자격증 하나 없는저는....대학가요제 및 음악활동...을 열심히 하였는데....주변에서는 그저 놀고먹다가 서류합격한거로 보지만...제 입장에서는 pd님 쓰신것 처럼....노래하면서 울고, 영화 보면서 우는...저의 모습을 '고시꾼'보다 더 좋게 봐주신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저처럼...객관적 공부....뛰어나게 못하는 학생도....상상력이 뛰어나다면...방송계에서 일할수 있는거겠죠??ㅎㅎ

    • 김민식pd 2011.12.18 0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요, 그럼요. 세상에 저렇게 수 많은 시청자가 있는데, 나같은 피디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어? 라는 자세로 사셔야 합니다. 스스로를 아껴주세요.

  4.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1.08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글 읽으면 왠지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데 현실이 참 녹록치가 않아요 ..^^;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