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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겪은 만큼 느낀다

by 김민식pd 2011. 12. 11.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라면 피디 공채 지망생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겠다. 그리고, 몰래 관찰해서 영화를 무덤덤하게 보는 사람은 1차로 떨어뜨린다. 보고 나서 이러쿵 저러쿵 영화평을 하는 이는 2차로 떨어뜨린다. 하도 울어서 눈이 빨개진채 나오는 사람이 합격이다. 글이나 영상을 보고, 울고 웃고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 상상력의 소산이다. 상상력이 없으면 어떤 일에나 무덤덤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까? 무조건 많이 경험하고 볼 일이다.

나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두번 봤다. 뉴욕에 신혼 여행가서 보고, 10년 후 런던에 연수가서 또 봤다. 재밌는건 두번 다 보면서 울었는데, 눈물을 흘린 이유가 달랐다. 오랜 짝사랑 끝에 아내를 얻었는데, 처음 '레 미제라블'을 봤을 때는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테나르디에의 딸 이야기에 혼자 눈물을 흘렸다. 당시에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도 많이 울었다. 못생긴 남자가 예쁜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이야기... 왜 이렇게 슬프지? (험험험!...^^)



그런 내가 두번째로 '레 미제라블'을 봤을 때는 다른 대목에서 눈물을 쏟았다. 장발장이 사랑하는 딸 코제트를 위해서 마리우스를 구하러 가는 장면...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발장... 하수도를 걸어가며, '사랑하는 딸을 위해, 너는 내가 반드시 살린다.'라고 노래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두 딸이 생각나 펑펑 울었다. 그때 느꼈다. 아, 나도 아버지가 되어가는구나.

똑같은 뮤지컬이지만, 나의 경험치에 따라 감동받는 대목이 다르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범위 안에서만 감동을 느낀다. 

박웅현 님이 쓴 '책은 도끼다'를 보면, '지식이 많은 친구보다 감동을 잘 받는 이가 일을 더 잘한다.'고 하는데 백번 공감한다. 머리로 아는 사람은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을 절대 못  따라간다. 연출은 먼저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야 자신이 받은 느낌을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대본을 받고, 머리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만 해석하는 연출은 제대로된 감동을 시청자에게 전해 줄 수 없다.

느끼는 것은 자신의 경험 범위 안에서 가능하다. 직접 몸으로 겪어보거나, 안되면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이라도 늘려야한다. 즉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이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한다.

예전에 면접을 볼 때, 전형위원들이 모여서 '고시꾼은 뽑지 말자'고 했던 적이 있다. 몇년씩 스터디만 하며 공채를 준비한 사람을 뽑기보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려 온 사람을 뽑자는 취지에서 나온 의견이었다.

곧 면접이다.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기보다, 많이 느낀 것을 보여달라.

우리는 먼저 느끼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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