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열었으니 주인장 소개를 해야겠는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난 스스로를 딜레탕트라고 생각한다. 취미파 학자. 어떤 일을 취미로 시작해서 전문가의 경지까지 가는 사람... 나의 경우는 심지어 취미로 시작한 일이 너무 좋아, 그걸 직업으로 삼게 되는 사람이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고민하는 건 딱 하나다. '그래서, 그게 재밌어?' 재밌으면 한다. 아니 그냥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난 미친듯이 한다.
대학 다닐때 전공은 나와 사뭇 맞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전공을 열심히 해야 취직도 하고, 돈도 벌터인데... 난 건방지게도 20대 시절, 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돈에 관심없는 이유? 적은 돈으로도 버티는 짠돌이 생활이 몸에 익어 돈 없이 사는데 자신이 있었다. (이 시절 나의 생활방식은, 나중에 연출하게 된 '논스톱'에서 구리구리 양동근이나 변태 짠돌이 최민용의 캐릭터의 원형이 되기도 했다.) 인생, 돈 없이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재미없는 삶은... 오 그건 죽음이다.
대학 시절,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한 이유도 그렇다. 먹고 살려면 전공을 열심히 해야하는데, 대학 시절 내내 전공 점수는 시들시들 2점대였다...C,D,C,D. 왜? 재미가 없었다. 그럼 뭐가 재밌었느냐, 난 스티븐 킹 소설이나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소설을 영문으로 읽는게 재밌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미쳐 살다 보니 어느새 일본어에 능통해 있더라는 어떤 여고생 이야기도 있는데, 내게 있어 영어가 그렇다. 영업사원이 되어서도 일보다 영어 원서로 소설 읽는게 즐거웠다. 그래서 어느날 결심했다. 그냥 매일 영어 책 읽고 사는 걸로 먹고 살자.
그래서 첫 직장을 그만두고 외대 통역대학원에 들어갔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좋아해서 그의 책을 번역하는게 꿈이었고, 누가 돈 한 푼 안줘도 순전히 재미로 SF동호회에 아시모프의 미공개 작을 번역해 올렸다. 그렇게 번역한 소설은 통역대학원 졸업 논문으로 재활용되고, 급기야는 또 출판까지 됐는데... 재작년 '내조의 여왕' 연출을 마치고 쉬는 와중에도 난 짬짬이 SF소설을 번역했다. 올해 상반기 중에 그 과학소설은 출간 예정인데, 드라마 피디가 쉴 때 소설 번역을 하는 이유? 그냥 좋아서다. 미친듯이 좋아서...
통역 대학원에서 남들 타임지 읽고 CNN보면서 영어 토론할 때, 난 구석에 혼자 앉아 미국 시트콤 보며 낄낄대며 살았다. '프렌즈'나 '사인펠드'같은 시트콤에 완전 중독되어, 어느날 문득, '이렇게 재미난 시트콤이 한국에는 아직 없네? 내가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래서 다시 통역사 생활을 접고 MBC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후 '프렌즈'를 어설프게 베낀 내 연출 데뷔작이 바로 '뉴논스톱'이다.
무슨 공중파 PD가 후안무치하게 미국 시트콤이나 베끼냐구? 미안하지만 그게 내가 프렌즈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난 무엇을 좋아하면 미친듯이 좋아하고, 그런 후에는 꼭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딜레탕트가 사는 방식이 그렇다. 돈은 둘째다, 재미가 우선이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봐도 그렇다. 일이 좋아 열심히 하다보니 돈이 따라오는거지, 처음부터 돈 벌겠다는 욕심이 앞선 사람은 결국 일 재미를 못느끼고, 결국은 엉뚱한 데서 재미를 추구하다 몸 망치고 돈 날린다.
블로그를 여는 이유? 역시 재미있어서다. 재미있으면 무조건 한다. 돈 한 푼 안생겨도 한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 재미로 만들어 본 블로그다. 편하게 즐겨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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