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 좀 철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닥...^^) 20대에는 록카페에 가서 춤을 추고 놀았어요. 춤추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일하기 싫으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오고, 배낭여행 훌쩍 떠나고 하던 시절, 제 눈에 비친 어른의 삶은 재미가 없었어요. 자식들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상사나 고객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들으며 버티는 삶. 나이 서른 이후의 삶은 상상이 가지 않았어요. 늙는 게 너무 싫었지요. 참 철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철없는 어른으로 사는 것도 재미있어요. 30대 시절 비디오 게임에 빠져 살았어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엑스 박스, 위 등 온갖 게임기를 제조사별로 사고 모았고요. 중고 장터에 올라온 글을 보고, 초등학생을 만나 중고 게임 타이틀을 사기도 했지요. 눈떠보니 50인데요. 철은 아직도 안 들었어요.  

저처럼 딴따라인 친구가 또 하나 있어요. MBC 입사 동기이자 친구인 김재환 감독입니다. 이분도 좀 철이 없어요. 방송사를 나가서 외주 제작사를 차렸는데요. 방송사의 불합리한 외주 시스템에 대해 통렬한 풍자를 퍼붓는 블랙코미디, <트루맛쇼>를 만듭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절에는 <MB의 추억>이라는 심히 불손한 영화를 만들고요.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대형 교회의 치부를 들추는 <쿼바디스>를 연출하기도 해요. 겁 없이 세상과 맞짱 뜨는 그를 보면, ‘아, 천상 딴따라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고 사는구나’ 싶어요. 그런 김재환 감독이 새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휴먼 코미디 장르입니다. <칠곡 가시나들> 

칠곡에 사는 일곱 할머니들이 주인공인데요. 이분들 예사롭지 않아요. 나이 팔십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요. 그러다 한글로 시를 쓰는 재미에 폭 빠지지요. 


칠곡군 복성 2리의 늘 배움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글자를 배웁니다. 평균 나이 86세인 할머니들이 왜 한글을 모를까요? 일제 식민지 시대,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가르쳤거든요. 광복 후에는 전쟁이 터졌고 난리통에 교육 기회를 잃었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을 보내고 장성한 아이들을 내보낸 후, 이제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한글을 배웁니다.  

영화를 보면, 또 한명의 주인공이 있어요. 한글 선생님인 주석희 선생님. 할머니들에게 스승이자 친구이자 딸처럼 대하면서 공부의 즐거움을 설파합니다. 주석희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가 있어요. ‘아침 저녁 맛있게 먹기’, ‘밤에 잘 자고 잘 일어나기’ 노인학교 학생들이 소풍 가서 쏘요 (소주 + 요구르트) 칵테일을 만들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이제는 늙는 게 두렵지 않다.’

어려서늙는 게 두려웠어요.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날 거라 생각했거든요. 영화 속 할머니들에게서 배웠어요. 무언가를 새로 배울 수 있다면, 친구를 새로 만들 수 있다면, 기나긴 노후는 축복이라는 것을. 유쾌한 할머니들을 보니, 나이 드는 것은 오히려 아이가 되는 것 같아요.  

저도 할머니들처럼 늙고 싶어요. 시인이 되어 인생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요. 

언젠가 나이 70이 되면, 블로그에 자작시를 올리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네요. 


동심과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강추합니다!

2월 27일 대개봉!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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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라피나장 2019.02.14 0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년
    영화 67편 정도
    보면서

    노후
    앞으로

    취미생활
    발견♡실천

    볼까 말까
    망설임

    곧바로
    등극 ^~~

    오늘도
    놀이처럼

    하루
    시작

    ~~~울산공고 근처 남구 주민^^^

  2. 최수정 2019.02.14 0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은 나이 공부하기가 쉽지 않고 또 시를 쓴다는건 더더욱 어려운 일인데 참 멋진 할머님들이세요! 영화 꼭 챙겨봐야겠어요!!!^^

  3. 보리랑 2019.02.14 0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춤 게임... 무엇에도 미쳐보지 못한 사람보다 나으세요. 그런 사람이 방향을 잘 잡으니 제대로 하시고 여러사람 변화시키고 계세요. 짝짝짝~

    노후가 두렵지 않으려면 건강해야 해요. 제일 무서운 것이 암 심혈관질환인데, 체력이 좋거나 감기 안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책에서 배웠어요.

  4. 꿈트리숲 2019.02.14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해전 <세상을 바꾸는 후마니타스>라고
    해서 칠곡 할머니들이 한글 배우고 시 짓고
    하는 걸 봤는데, 혹시 그분들이 이 영화에
    출연하는 분들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인문학이 별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건강하게 살면서 즐길 거리가있고, 나눌
    사람이 있으면 그게 인문학적 삶이라 생각
    했는데, 영화로 나오다니 깜놀입니다.^^

    우리 부모님과는 다른게 나이들어 가는 제
    자신이 고맙고, 나이 먹는 걸 축복으로 생각하게
    되어서 모든게 감사하네요.^^

  5. 하늘은혜 2019.02.14 0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님과 밥먹다 눈 마주치고 갈까? 하면 바로 저녁 밥상치우고 락카페가서 춤추던 그때가 좋았습니다. ㅋ

  6. 섭섭이짱 2019.02.14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김재환 감독님이 이번에는
    할머니들의 따뜻한 얘기를 영화로 제작하셨군요.
    내용이 기대되네요. 피디님 아니었으면 놓쳤을텐데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바로 추가합니다.

    저도 나이 먹는게 두려웠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요즘 공자님 말씀이 딱 제 마음이네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Isn't it a pleasure to study, and to practice what you have learned?
    - 공자 -

    예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명언이었는데
    지금에서야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네요..
    남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공부해서 그런거 같아요.

    와우~~~ 시집 내시는건가요?
    항공모함 운동화 시를 들은적이 있어서 그런지..
    유머 가득한 시인이 되실거 같아요. ^^
    기대할께요. 시인 김민식

  7. 하준 2019.02.14 0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8. 아리아리짱 2019.02.14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이 영화 제목이 좀 특이하다 생각 했는데 꼭 챙겨 봐야겠어요.
    동심과 시심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 보고나서, 한껏
    동기부여 받기를 바랍니다.^^

  9. kuaile 2019.02.14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는게 두렵지 않다, 역시 김민식 피디님!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지금 여기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게 되면, 삶은 풍요로워지고 두려움은 줄어드는 것 같어요^^

  10. 쩍팔리게살지말자 2019.02.14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영화를 보진 못 했지만, 피디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정말 아름답게 사시는 것 같네요.
    한편으론 멋있고, 한편으론 저희 어머니도 그렇게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행복이라는 게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
    저 할머니들도 나 늙어서 무슨....이라는 생각 이셨다면, 저렇게 즐기실 수 없었을 건데.
    포기 하지 않고 하신 덕분에 행복을 이루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포기 하지 않고 꾸준히 나의 행복을 위해 나의 발전을 위해 뭔가를 시도 한다면, 심심할 일도 무료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요즘 영화를 볼 때 우는 게 싫어서 자꾸 액션이나 코믹 등 자극적인 것만 봐 왔는데....
    그런 인간적인 영화들도 자주 봐야 겠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읽고 아침을 시작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11. 광장 2019.02.14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감독님의 작품은 나올 때마다 신선한 충격입니다. 이번 작품은 또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피디님과 친구라니 두 분의 대화가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피식피식 나오네요. 좋은 작품 소개 고맙습니다.

  12. 오또기 쭘마 2019.02.14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에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 울면서 예고편을 봤네요.
    영화 속에서 나오시는 할머니들과 비슷한 처지였던
    저희 엄마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즐겁게 사시다 가셨는지
    생각하게 되네요. 제가 좀 더 옆에서 즐겁게 사시도록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질없는 후회만 듭니다.
    많이 울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 꼭 봐야겠습니다.
    좋은 영화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13. 은하수 2019.02.14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임까지...pd님의 호기심의 끝은 어디일까요?
    김재환 감독님 영화를 추천해주셔서
    한편씩 보고 싶었는데 저도 이 영화 리스트 추가요.
    극장가서 보고 싶어요~

    대학 때 복지관에서 노인한글교실 봉사를 몇 달 한 적이 있는데
    할머니 한분이 초성,중성,종성 조합으로 한글을 익히시는게 아니라 글자 한개씩을 그림처럼 외우는 것을 고집하셔서 곤란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땐 그 분들 삶은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는게 목표라 숙제를 열심히 내드렸던 기억이 나요.
    '동네 간판 이름 적어오기'
    '부엌에 있는 식료품 봉지 이름 적어오기' 등
    그것도 어려워 하셨지만 한글을 익히고 싶은 마음만큼은 간절하셨을 것 같아요.

    요즘 노인분들 사이에 무료 지하철 타고 온양온천역에 내려 경로할인 온천목욕을 하고 재래 시장에서 점심을 드시고 다시 지하철 타고 돌아오는게 인기라고 하더라구요.(어딘가 pd님의 자전거 전국일주 냄새가..ㅋ)
    노인분들이 즐길 문화가 많지 않아 그런 것도 있겠죠.
    배우고 노는 것을 젊었을 때부터 열심히 해야되겠어요!

  14. 혜린 2019.02.14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피디님 항상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댓글 남깁니다. 요 며칠 우울했는데 피디님 글 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고갑니다. 즐거워만 하기도 짧은 인생, 무엇때문에 그리 괴로워했을까요 단번에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천천히 털고 다시 일어나려고 합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저도 발도장 찍고 갈께요
    화요일 북바이북 강연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녁 강연인데도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서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동이었어요~ 워킹맘이라 긴 줄에 사인은 포기하고 돌아섰지만 강연듣고 힘 많이 얻었습니다
    앞으로 매년 책 내시겠다는 약속 지키셔야 해요? 기다리겠습니다^^

  15. 샘이깊은물 2019.02.14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왕 감동입니다. 누구에게나 마음 깊은 곳에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을텐데요. 평생 까막눈으로 사시던 할머님들이 자기 이름을 한 자 한 자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쁨이 크셨을까요.
    도교인들은 삶의 활동기에는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다가, 나이가 들면 벗들과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며 자신에게 몰두한다고 해요. 정신을 가다듬고 지극히 가볍고 초연하게, 평온한 기쁨을 누리면서요.
    저도 종종 그런 노후의 모습을 그려보곤 합니다.^^

  16. 킴작가 2019.02.14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사회로 먼저 봤는데, 강추합니다!

  17. coolmajor7 2019.02.15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오늘도 철없이 삽니다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