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방명록에 가끔 이런 사연이 올라옵니다.
“피디 지망생입니다. 피디님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당시엔 드라마 연출중이라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한다며 정중하게 사절했는데요. 사실 저는 피디 지망생을 만나는 일이 많이 어렵습니다. 저 자신, 어떻게 해야 피디가 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공대를 나왔다고 해서, 공대를 가라고 할 수도 없고요. 신문방송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공과 피디는 상관없다고 감히 말할 수도 없어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책부터 읽습니다. 책에서 답을 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창의성을 기를 수 있을까, 제 평생의 화두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장순님의 책 <기획자의 습관>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끌렸어요. 창의성은 어떤 탁월한 재능이나 번뜩이는 영감이라기보다 일상의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트콤 한 편을 연출하기 위해 먼저 저는 수백편의 시트콤을 녹화해서 반복 시청하는 것부터 했어요. 피디가 되기 위해서? 아니요, 통역사로서 영어 공부의 일환이었지요. 영어 공부를 더 즐겁게 하고 싶었어요. 저는 일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상이 쌓여야 무언가 이룰 수 있어요. 어떤 한 사람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직업을 얻고, 꿈을 이루는 일은 없다고 믿습니다. 살아보니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고요.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별 것 아닌 습관들이 어떻게 기획력을 증대시키는지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누군가를 보면 위안을 얻고 삶에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는 내 비밀 하나를 밝히겠다.
중학교 때 마지막으로 치렀던 IQ 평가에서 내 점수는 109밖에 되지 않았다. 100을 간신히 넘는 이 IQ는 아마도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어느 경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보노보 침팬지의 IQ가 120이라고 한다. 그런 나도 지금 기획을 하며 먹고산다. 기획이라는 걸 통해 브랜드를 분석하고,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기획과 크리에이티브를 어려워하는 당신께 용기와 위로를!
기획이라는 단어가 주는 억압감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공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즐겁게 상상하는 습관을 기르길-
기획의 방법론, 혹은 공식을 달달 외우는 일은 이제 그만 하기를-
(책 머리말에서)
책을 읽다 말고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보노보 침팬지의 아이큐가 120이라고? 고교 시절, 나를 놀려먹던 녀석들은 원숭이보다 머리가 나쁜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진짜로 그럴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비슷한 지능을 지녔음에도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보노보 침팬지는 숲속에서 섹스만 열심히 즐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을 쓰고 보니 문득 보노보 침팬지가 우리보다 더 낫다는 생각도...?) 인간의 가장 뛰어난 도구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언어의 발명으로 우리는 지식을 전수할 수 있고, 문자의 발명 덕에 가장 뛰어난 인간의 생각이 수천년 후대까지 전해질 수 있어요. 즉 보노보 원숭이의 지혜는 전수되지 않지만, 우리의 지혜는 문자의 형태로 축적되고 있다는 거죠. 이게 인간이 문명을 이룬 근원이 아닐까 싶어요.
‘기획자의 습관’을 보면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언어를 활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읽으며 아이디어를 얻는 거죠.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 창작자로 살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역시 독서라고 생각해요. 비록 나는 모자란 점이 많지만, 훌륭한 저자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매일 주어지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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