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r 9. 2000년 태국
테마 : 트레킹 + 휴양
경비 : 항공권 포함 80만원

봄에 신혼여행을 2주 다녀왔는데, 가을에 2000 시드니 올림픽 하느라 방송이 3주간 죽었다. 뉴논스톱 조연출하던 시절인데, 초창기에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올림픽 하이라이트 방송에 밀렸다. 저조한 시청률 탓에 불방의 수모를 당한건데, 난 당시 "땡큐!"를 외치며, 2주간 휴가내고 태국으로 날랐다. (늘 하는 생각인데, 세상에 나쁜 일이라고, 다 나쁜 것도 없고, 좋은 일이라고 다 좋은 법도 없다. 찾아보면, 비극 속에 희망이 숨어있다.) 신혼초였지만, 아내는 첫째 아이를 임신해서 같이 여행을 갈 수 없었다. 아내가 회사를 빠질 수가 없어 결국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다.

태국의 수도 방콕은 아시아 지역을 찾는 세계 여행자들의 허브 도시이다. 특히 카오산 로드는 배낭족들의 성지다. 갑자기 방송이 죽어 휴가가 생겼기에 여행 계획을 짤 틈이 없었다. 그래서 난 무작정 카오산 로드로 향했다. 예전에 EBS 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본 사람이라면 기억하겠지만, 이곳은 세계일주 여행자, 6개월 이상 장기 여행자들의 집결지이다. 예전에 호주를 여행할 때 시드니 킹스크로스에서 만난 배낭족들이 카오산 로드 얘기를 했다. 그곳에 가면, 세상의 모든 여행자를 만날 수 있다고...

                                              방콕, 카오산 로드

비행기 표 한 장 끊고, 방콕으로 날아갔다. 태국 여행이라, 어디를 가야하지? 파타야? 푸켓? 카오산 로드에서 배낭족들을 만났더니, 다들 고개를 흔든다. "노,노,노! 거긴 관광객들 가는 곳이지, 여행자들이 갈 곳은 못돼. 비싸기만 하지. 치앙마이로 가 봐. 5일짜리 정글 트레킹을 하면 아주 즐거울 거야. 단, 원주민들이 주는 밀주나 대마초는 조심하라구, 친구."

밤기차를 타고, 치앙마이로 달려갔다. 배낭족들에게 추천받은 싼 숙소를 찾아가 방을 잡고, 트레킹 팀을 찾았다. 마침 다음날 아침에 떠나는 다국적 팀이 있어 합류했다. 정글 생활을 오래 한 현지인 가이드 덕에 트레킹은 즐거웠다. 첫날, 밀림을 걷다 대나무를 보더니, 가이드가 줄기를 잘라 칼로 열심히 다듬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니들 젓가락 만드는거야." 그런 식으로 대나무 통에다 밥을 지어먹고, 밤이 되면 산 속 원주민 마을 원두막에서 잠을 잤다. 나무에 걸어둔 해먹에서 자는 친구도 있었다. 난 뱀이 무서워서 그러지는 못했지만...^^ 

남쪽 바다를 이미 다녀 온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어디가 좋아? 코 사멧이라는 작은 섬을 추천해주었다. 당시로서는 아직 한국 관광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섬마을이었다. (지금은 완전 유명해져서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바닷가 방갈로 하나 빌리는데 1박에 5천원이었다. 혼자서 방갈로 독차지하고 지내자니 황송할 지경이었다. 섬 전체에 한국인은 나 뿐이었고, 알뜰한 미국인이나 유럽 배낭족들이 많았다. 밥은 마을 시장에 가서 손짓 발짓으로 시켜먹었는데, 파인애플 볶음밥이나 팟타이 같은 음식이 한 끼에 500원하던 시절이었다. 

항공권이 당시 30여만원이었고, 2주간 여행하는데는 40여만원 들었으니, 간만에 짠돌이 배낭 여행의 진수를 즐겼다.^^
 
오늘의 여행 팁, 더블 테마 추천 코스.

난 여행을 갈 때, 하나의 테마보다는 2가지 테마를 정해서 간다. 태국 배낭 여행도 처음부터 트레킹과 섬마을 휴양이라는 2가지 테마를 정하고 출발했다. 미국으로 간 신혼 여행도 그랬고. 하나만 하고 오면, 웬지 서운하다. 여행을 가면 꼭 2가지 테마를 즐기고 온다. 내가 좋아하는 더블 테마 추천 코스를 날짜별로 알려드린다.

5일: 동경+하코네 
여행 기간이 5일 정도라면, 동경을 추천한다. 김포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항공편이면 오전 중으로 동경 시내에 도착할 수 있다. 동경에서 2박을 하며 쇼핑과 관광을 즐긴 후, 하코네로 가라. 신주쿠 서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2시간 반이면, 산 속 호수마을 하코네가 나온다. 산악 열차, 케이블 카, 유람선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탈 것을 즐기다보면 하루 후딱 간다. 여유있게 하코네 온천까지 즐기려면 1박2일도 좋다. 동경에서 도시 구경만 하는 것보다, 1박2일짜리 트레킹 여행같은 하코네 여행도 즐겨보시라. 

2주: 태국 (치앙마이 + 남부 섬마을)
코 사모이, 코 사멧, 찾아보면 아직 물가가 싼 섬마을이 태국 남부에 남아있다. 절대 파타야나 푸켓은 배낭족들에게 권하지 않는다. 
2주: 베트남 + 앙코르와트
베트남 하노이로 가서 3일간 구경하고,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날아가서 4일 정도 앙코르와트 사원을 보고, 호치민(예전 이름 사이공)을 보고 나오는 코스. 에어텔을 이용하면, 시간도 절약하고, 공항에서 픽업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4주: 인도 + 네팔
2주 정도 번잡한 인도의 도시들을 돌아본 후, 인도가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하면, 네팔로 가라. 히말라야로 가서 산 속 트레킹을 즐기고 포카라 호수가에서 며칠 쉬고 돌아오시라. 무척 다른 느낌의 여행 2개를 한 코스안에 넣을 수 있다. 

배낭여행,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최고의 활력소다. 
뉴논스톱을 연출할 때, 1주일에 5편 씩, 2년반 동안 500여편을 연출했다. 
틈만 나면, 배낭여행을 다니며 쉬었다. 왜?
치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에게, 휴식은 필수다. 
아니 놀 줄 모르는 사람은, 제 풀에 지쳐 오래도록 일할 수 없다. 

창의성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스스로의 삶에 리듬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린 아이디어 짜내는 기계가 아니니까~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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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미현 2011.10.27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콕 여행다녀오신 분으로서 그 끔찍한 홍수때문에 이 글 올리시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셨겠네요. 빨리 복구되어야 할텐데요.

    • 김민식pd 2011.10.28 0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은 아래로 흐르니까요. 도시를 채운 물도 언젠가 빠질겁니다. 그럼 다시 방콕을 살릴수 있는건 더 많은 여행자지요. 더 많은 이들이 태국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중에는 일부러 요즘의 홍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어요. 홍수는 금방 지나가지만, 이 블로그 글은 오래도록 남아 태국으로 여행자를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cinemool 2012.01.05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 감독님! 시트콤 사랑카페 회원이자;; (그러고보니 벌써 10년이군요^_^) 음...또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하나... 우연히 태국여행기 검색하다가...한참 글을 읽다보니 응?뉴논스톱...해서 다시보니 감독님 블로그네요. 오랜만에 좋은 글 많이 읽고 갑니가- 너무너무 반가워 글 남겨요! 자주 놀러올께욧!! ^^

    • 김민식pd 2012.01.08 07: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우 카페 회원이신데, 태국여행기 검색하다 블로그를 오셨다니... 님과 저의 인연도 만만치 않은데요? 반갑습니당~ 종종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