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짠돌이라고 소문이 난 탓인지, 가끔 책 선물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은, 저는 책 선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상하지요? 공짜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니, 공짜 책 선물이라면 환장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반대입니다. 저는 책 선물이 달갑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저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요. 제 휴대폰 메모장에는 아직도 읽고 싶은 책 목록이 1000권 가까이 쌓여있습니다. 틈날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고 읽는데도 줄어들 지가 않네요. 재미난 책을 한 권 읽으면, 그 작가의 이전 책 다섯 권을 다시 메모에 올리는 탓인가 봐요.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요. 책을 받으면, 책을 읽기 위해 반나절을 쓰게 됩니다. 저는 인생에서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이나 나쁜 책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에게 더 잘 맞는 책이 있고, 안 맞는 책이 있지요. 전혀 모르는 저자의, 전혀 관심 없는 분야의 책을 선물받으면 그래서 참 괴롭습니다. 어떨 땐 <주식투자 이렇게 하면 대박난다> <부동산 경매 고수의 대박 전략> 뭐, 이런 책도 받는데요, 이럴 땐 정말 고역입니다. 저는 재테크를 하지 않거든요. 주식 시세표 들여다볼 시간에 책을 읽고, 부동산 시세 알아보러 다닐 시간에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책선물을 받으면 의무감에 억지로 읽었는데요, 그러다보니 독서의 재미가 반감되더군요. 절대 피해야 할 일은, 그렇게 선물 받은 책에 대해 억지로 리뷰를 쓰는 일이에요. 비록 책은 재미나게 읽었어도 블로그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리뷰를 억지로 쓰지는 않거든요. 매일 아침 한 편 글을 쓰기 위해서는 타인의 의지에 따르기보다, 오로지 저 자신의 즐거움에 복무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쓴 <이동진 독서법>을 읽었는데요,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라는 부제가 확 와닿아요.
'왜 이런 말이 있잖아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라고.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에요.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것들이 있잖아요. 남극에 가보겠다, 죽기 전에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싶다, 우유니 사막을 방문하고 싶다 이런 것. 한번 보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고, 실제로 가보면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게 행복이 아니고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쾌락은 일회적이라고, 행복은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쾌락은 크고 강렬한 것, 행복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 있는 일들이라고. 그래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습관론이 나오게 되는데, 행복한 사람은 습관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
(위의 책 142쪽)
누가 나에게 책 선물을 해줄 때마다 그걸 행복이라고 느낀다면, 그건 나의 행복을 타인의 의지에 맡기는 일이에요. 선물을 주고 안 주고는 타인의 의지니까요.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건 오로지 나의 노력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습관입니다. 스스로를 공짜 책선물보다 도서관 대출에 길들이고 싶어요. 그게 책벌레로서 무한한 행복을 누리는 비결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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