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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고?

by 김민식pd 2018. 8. 17.

2010년에 앙코르와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숲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크메르 유적의 모습에 감탄했지요.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으로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도 못지 않아요.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 건축 양식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데요. 이슬람이 스페인 남부를 지배하던 시절, 아랍의 조각가와 건축가들이 유럽으로 건너와 만든 것입니다. 이슬람은 성지 참배가 중요한 종교 의식인데요. 스페인을 지배한 이슬람 왕족들이 매년 아랍의 성지로 가기가 힘드니까 스페인 식민지에도 성지를 만든 거죠. 아랍의 예술가들에게 공지를 날립니다. 유럽에 알라신에게 바치는 성전을 지을 것이다. 이 성전을 꾸밀 최고의 조각가와 건축가를 찾노라. 안달루시아 지방에 특히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이 지어진 이유는, 현세의 노동이 내세의 천국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덕분이었던 거죠. 앙코르와트도 그렇고, 알함브라도 그렇고, 종교적 건축물들이 특별히 아름다운 이유가 거기 있어요. 노예들이 채찍에 맞으며 만든 게 아니라, 장인들이 예술혼을 불태우며 만들었기 때문이죠.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한민 / 부키)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적 편견을 깨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중 하나가 노예들이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헐리웃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주입된 측면이 크답니다. 잔인하고 사악한 이집트 (유색인종) 지배계급이 노예들을 동원해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해석한 이야기지요.

최근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발굴된 결과를 보면,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피라미드를 만들었대요. 그 자료에 따르면 파라오와 자유 계약을 통해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했고요. 노동자 한 사람이 받은 임금은 심지어 근 18세기 유럽인의 임금 수준을 웃돈답니다. 게다가 하루 8시간씩 8일 작업하고 2일을 쉬었고요. (한국의 드라마 제작 현장보다 나은 노동조건이군요... ㅠㅠ) 채찍질하는 감독은 없고요. 임금이 체불되면 파업도 하고, 자유롭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증거가 많답니다. 카트 멘델슨 같은 학자는 피라미드를 일종의 복지사업이라고 해석합니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이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 근처는 비가 별로 안 오지만 나일강 상류인 에티오피아 근처는 비가 엄청 오기 때문에 나일강은 1년에 4개월이나 범람했다고 하죠. 

이렇게 강이 넘치면 농사짓던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지고 가정에는 수입이 끊깁니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요. 한시적으로 일자리가 없어진 사람들에게 수입을 제공하기 위해 이집트의 지배층은 평소에 거둬들인 세금을 이용해서 국가 주도의 건설 사업을 벌였던 겁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도 무척 발전된 개념의 복지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죠.


와우, 제게는 놀랍고 새로운 사실이네요. 하긴 5000년 넘게 가는 건축물을 노예들이 만들었다는 건 좀 이해가 안 가기는 해요. 그렇게 정교하고 튼튼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협업을 했을 테니까요. 책을 읽고 나니 수수께끼가 풀리는 느낌입니다. 저자의 서문이 인상적이었어요.

 

제 설명이 처음엔 생소하겠지만 읽어 보면 꽤 그럴 듯하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저, 공부 많이 했거든요. 공부 많이 하고 열심히 찾아낸 답들이니만큼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학자가 겸손하지 못하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요? 아니 그럼 공부 많이 한 걸 조금 했다고 할 수도 없잖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책에서 저자의 말을 보면, '이 부족한 사람이...' '이 졸고를...' 이런 식으로 나와 있던데, 바쁜 현대 사회의 독자들이 왜 그런 부족한 사람이 쓴 부끄러운 책을 시간 낭비하며 읽어야 합니까.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자신 있게 쓴 이 책을 읽으십시오.

독자 여러분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문화심리학자 한민.


(위의 책, 저자의 말에서)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모든 문화 심리학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나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일이 이렇게 유쾌할 줄은 미처 몰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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