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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답은 책 속에 있다

by 김민식pd 2018. 4. 9.

살다보면 가장 힘든 게 인간 관계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게 가장 힘들어요. 특히 드라마 연출을 하면서, 저는 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누가 부탁할 때, 거절하는 게 참 괴롭거든요. 연출이란 선택하는 게 주된 업무입니다. 대본을 선택하고, 배우를 선택하고, 스태프를 선택합니다.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연출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7년만에 맡은 드라마 연출, 이 귀한 기회를 저는 신성하게 생각합니다. 최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가급적 청탁은 배제하고 전문가와 상의하고 항상 회의를 거쳐 결정합니다.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드라마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지쳐갈 무렵 큰 딸 민지가 추천해준 책을 읽고 마음이 풀렸어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 가나출판사)


일에 관련한 청탁을 싫어합니다. 평소 친분을 함부로 쌓지 않습니다. 술도 안 마시고, 커피도 안 마시고, 골프도 안 치는 걸요. 친한 제작자라는 이유로 대본을 선택하고, 친한 기획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내게 드라마 연출을 맡긴 회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연출에 관련해 들어오는 청탁이 사람을 참 힘들게 만듭니다. 그 모든 청탁을 고려하는 순간 길을 잃어버리거든요. '내가 너무 냉정한 걸까?'하는 생각에 괴로울 때,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어요.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위의 책 67쪽)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요구를 받습니다. 그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선택의 여지를 누릴 수 있어야 해요. 어쩌면 내게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닐지 몰라요. 진짜 친구는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아니 부탁을 할 때는, 상대에게 거절할 수 있는 자유도 함께 줬으면 좋겠어요.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싫은 사람을 덜 봐도 된다는 것과 친구에 덜 연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며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도 하고 나쁜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도 관찰해보니, 행복감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관계는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인간관계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위의 책 202쪽)


관계는 양보다 질이라는 말이 참 와닿는군요. 나이 50이 되어 보니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더군요. 나 자신으로 사는 게 참 중요한 일인데 그게 힘들어요. 이제는 굳이 누군가에게 맞추려 하지 않습니다. 동창회는 나가지 않습니다.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해가며 의미없는 네트워킹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고등학생인 민지는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요. 어느 친구와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 고민을 풀기 위한 답을 찾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대요. 책을 읽고 고민이 풀리고 마음도 풀렸다고 해요. 책에서 민지가 밑줄 그은 대목을 읽을 때는 마치 딸아이가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민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어요. 

"덕분에 좋은 책을 읽게 되었네. 제일 기분 좋은 게 뭔지 알아?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너는 책에서 답을 찾는다는 거야. 네가 책을 찾아서 읽는 사람이 되어서 너무 좋아."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답은 역시, 책 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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