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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이 순간이 기적

by 김민식pd 2018. 5. 24.

지난 겨울 방학 때, 큰 딸 민지랑 영화 '원더'를 봤어요. 정말 좋았어요. 나오면서 민지랑 얘기를 했죠. '아, 이 영화는 원작을 찾아서 읽고 싶다.' 마침 아내가 둘째 보라고 책을 사왔더군요.

'아름다운 아이' (R. j. 팔라시오 / 천미나 / 책과 콩나무)


이 책은 책콩 어린이 문고에요. 주인공이 초등학생 어린이인 어린이 책이지만 어른이 봐도 좋을 책이에요.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을 위한 이야기. 

영화 '원더'의 주인공은 평소 헬멧을 쓰고 다닙니다. 심한 안면기형이라 맨 얼굴로 다니면 사람들이 놀라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헬멧을 쓰고 다녀요. 그런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헬멧을 벗고 세상에 나가야 해요.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이는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새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걱정이 많았어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드라마 연출이란, 자꾸자꾸 해야 잘 할 수 있어요. 근육이 필요한 거죠. 지난 7년, 내 이름으로 된 드라마 한 편 만들지 못한 내가, 이제와서, 나이 50 넘어 연출 현장에 복귀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긴장이 많이 되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드라마 연출 복귀를 축하한다고 하는데 그럴 수록 더 떨려요. 제가 원래 그렇게 뛰어난 연출이 아니었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아이' 책 첫장을 넘겼습니다. 이런 글이 나와요. 


'의사들이 먼 도시에서 찾아왔어요.

단지 나를 보기 위해서.

바로 침대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그들은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했죠.


나는 기적들 가운데 하나가 틀림없다고

하느님의 창조물 중에서.

그들이 지닌 지식으로는 

어떠한 설명도 할 수 없다고.


- 나탈리 머천트, <기적> 중에서


이 노래는 미국의 여가수 나탈리 머천트가 기형아로 태어난 여자아이를 보고 노래한 <Wonder 기적>의 가사랍니다. 어거스트가 친구 써머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요. 


"내 얼굴이 왜 이런지 궁금한 거야? 별 거 아니야. 하악-안면-이골증인데, 거기다 골덴하르 증후군이라는 것도 있고, 발음조차 할 수 없는 다른 게 또 있어. 이런 모든 것들이 함께 변형을 일으켜서 하나의 커다랗고 엄청난 걸 만들었는데, 그건 너무 희귀해서 이름도 없어. 그러니까,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래봬도 내가 의학적 기적의 산물로 간주되는 귀하신 몸이라 이 말이야."


100년 전, 아니, 1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살아있기 조차 힘든 아이. 너무 많은 기형과 장애를 타고나 현대 의학의 발전이 아니었다면 살 수 없는 아이. 그런 아이를 기적이라고 부르고요. 영화와 소설은 그 아이가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기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겁이 날 때, 문득 돌아봅니다. 때로는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한 순간도 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내게 온 운명을 기형이라 부를 것인가, 살아가는 나날을 기적이라 부를 것인가. 그건 나의 선택이겠지요. 


책장을 덮고, 가만히 먼 산을 봅니다.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꿈같아요. 3년 전, 송출실로 발령 나면서, '드라마 연출의 삶은 이제 끝났구나...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 하고 고민했는데, 이렇게 빨리 드라마로 복귀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많은 분들의 응원과 염원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쫄지 않고, 즐겁게 달리려구요.


이 드라마는, 시작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기적이니까요.


고맙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즐겁게 만들겠습니다.

MBC 주말특별기획 <이별이 떠났다>

5월 26일 첫방송,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45분 4회 연속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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