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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드라마 PD의 길 1

by 김민식pd 2011. 10. 6.

MBC에 입사하여 10년을 예능국에서 지낸 후, 드라마국으로 옮겨 산 지 5년째이다. 사람들이 날 보면 꼭 하는 질문, ‘어디가 더 좋아요?’ 내 대답은 비슷한 딜레마에 빠진 미취학 아동의 식상한 대답과 같다. ‘둘 다 좋아요.’ 물론 더 식상한 답은 이거다. ‘일장일단이 있어요.’

 

나의 사명은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는 장대한 포부는 세웠으나, 정작 그 꿈을 실현하는데 예능이 맞을지, 드라마가 맞을지 고민 중인 분들에겐, 위의 대답은 정말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내려야할까?

 

내가 입사한 1996년 당시에는 선택이 쉬웠다. 팩트냐, 픽션이냐, 둘 중 하나였다. 언론인을 꿈꾼 아이들은 진실을 찾아 교양국을 지원했다. 진실보다 허구를 더 즐기는 아이들은 남았는데 그 중, 심각한 예술가 타입은 다 드라마 지망이었고 인생이 마냥 즐거운 아이들은 예능국을 지원했다. 나의 경우, 평소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니 드라마가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춤추는 게 취미고 시트콤을 즐겨보니 예능국이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선택은 쉽지 않았다. 예능이냐 드라마냐, 그것이 문제로다.

 

 

수습 기간 6개월 동안 각 국의 현장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드라마 촬영현장을 다녀보니 선배들은 현장에서 험악한 표정으로 욕만 해댔고, 예능국에 가보니 어떤 선배는 코미디언보다 더 웃겼고, 어떤 선배는 가수보다 더 끼가 넘쳤다. ‘한 순간을 살아도 즐겁게!’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예능국을 선택했다.

 

예능국에서 난 가요 프로그램 조연출을 하며 무대에 올라가 가수들과 춤도 추고, 시트콤PD를 할 때엔 필리핀 악사로 출연해 동남아 현지인 연기도 하고,(내 외모를 보시면 이해가 쉽다.) 게릴라 콘서트에 뉴논스톱식구들과 나가 HOT의 캔디도 불렀다. , 정말이지, 예능국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행복했다. (예능국에서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을 통해 연출로 입봉하게 된 과정과 시트콤 연출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PD WHO & HOW 1편의 시트콤 PD의 길을 참고해 주세요.~)

 

하지만 행복이 영원할 순 없는 법, 파국은 일순간에 찾아왔다. 일일시트콤 논스톱시리즈를 2년 반 가까이 연출하며 비슷비슷한 에피소드에 싫증이 난 나는 파격적인 내용의 새로운 시트콤에 도전했는데, 이름하여, ‘조선에서 왔소이다.’ 시간여행으로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오게 된 양반과 그 몸종이 이 시대를 살아가며 신분 없는 사회에서 오히려 신분이 역전되는 이야기였다. 놀고먹던 양반은 백수로 전락하고 재주 많은 종놈은 인간문화재로 존경받는 인생 역전 이야기. 조선시대와 달리 21세기는 양반도 노비도 없는 지상낙원인 줄 알았더니, 결국 다들 돈의 노예로 살아가더라는 나름의 철학을 담으려했던 시트콤인데, 이야기 전개가 시청자 수준에 비해 너무 유치했는지, 아님 시대를 너무 앞서가 기발했던 탓인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끝에 조기종영이라는 비운을 맞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방송 4회 만에 종영 결정은 너무한 거 아닌가?^^)

 

새로운 도전에서 참패를 맛 본 후, 난 방황의 세월을 보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는 남자 셋 여자 셋이후 10년째 이어온 MBC 청춘 시트콤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고, 저녁 7시대 청춘 시트콤을 폐지하기에 이른다. 연출로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도전은 실패했고, 기존의 성공 장르는 수명이 다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MBC 마지막 청춘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 촬영 현장. 연기자, 스탭들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드라마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 ‘환상의 커플이나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드라마라는 틀 안에서 잘 녹여낸 수작들이었다. 시트콤의 틀 안에서 새로운 시트콤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드라마에서 시트콤의 진화를 꿈꿀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때, 마침 드라마 국에서 PD 사내공모를 실시했다
.

(
나이 40의 새로운 도전, 그 결과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곧 출간될 'PD WHO & HOW 2'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판사의 양해를 얻어 미리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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