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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초보 작가의 자세

by 김민식pd 2017. 10. 10.

지난 번 소개한 조지 R. R. 마틴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2017/09/29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인생


지금은 미드 <왕좌의 게임> 원작자로, 대가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조지 마틴에게도 신인 시절이 있어요. 조지 마틴은 1971년 처음 SF 단편을 잡지에 실으면서 데뷔했는데요, 그 이듬해 그는 당시 SF계의 거장이자, <위험한 비전>이라는 SF 앤솔러지의 편집자인 할란 엘리슨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1972년에 뉴욕 시의 연례 SF 대회인 루나컨이 열린 호텔 복도에서 할런 엘리슨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짜고짜 <최후의 위험한 비전>에 내 작품을 보내도 되느냐고 물었다. 할런은 이미 작품들을 다 받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1년 뒤에 투고 기회가 다시 열렸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그 무렵에는 공통의 지인인 리사 터틀을 통해 할런과도 꽤 친해져 있었던 데다가 잡지에 발표한 작품 수도 늘어나 있었다. 그 덕에 할런은 나도 자기 앤솔러지에 끼워 줄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임을 확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런이 마음을 바꾼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하여튼 바꾼 것만은 사실이다. 1973년에 그가 내게 투고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기뻤고...... 극도로 불안했다. <최후의 위험한 비전>에는 중량급 거물들의 작품이 잔뜩 실릴 예정이었다. 그런 그들을 신인인 내가 따라갈 수는 있을까? 책에 걸맞을 정도로 위험한 작품을 쓰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몇 달 동안 이 단편과 씨름했고, 1974년 초에 마침내 할런에게 결정고를 우송했다. (중략) 할런은 1974년 3월 30일에 원고 불채용을 통고하는 편지와 함께 내게 원고를 되돌려 보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소재에 따르는 책임을 작가가 모조리 기피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리 나쁘지 않군." 그런 다음 그는 내 글을 무자비하게 비판했고, 단편의 오장육부를 완전히 들어내고 첫 문단부터 다시 써 보라고 나를 도발했다. 나는 욕설을 내뱉고 씩씩거리며 벽을 걷어찼지만, 할런의 지적들은 구구절절 옳았기 때문에 도저히 반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단편의 오장육부를 들어내고 첫 문단부터 완전히 새로 쓰기 시작했다. 오장육부만 들어낸 것이 아니라, 정맥까지 절개해서 종이 위에 뚝뚝 핏방울이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게 1973년과 1974년은 작가적으로는 아주 좋은 해였지만, 나의 삶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단편을 개고한 다음 할런에게 돌려보냈던 것이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할런의 답장은 처음에 비해 훨씬 더 상냥했지만, 아무리 상냥했어도 거부당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조지 R. R. 마틴 걸작선 - 꿈의 노래 2. 하이브리드와 호러> 중 작가의 말. 137쪽


책을 읽으면서 고군분투하는 마틴의 모습에 저는 위안을 얻었어요. 신인 작가임에도 할런 엘리슨같은 거물에게 무작정 들이대는 모습에서 자신감과 용기를 보았고요, 그런 태도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었어요. 저도 들이대기는 무척 많이 들이대지만,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거절과 좌절 속에서도 다시 시도하는 모습에 감동했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는 점에 인생을 배웁니다. 맞아요, 인생은 절대 쉽지 않아요. 조지 마틴 같은 이를 우리는 천재 작가라고 부르고 싶어하지만, 그는 천재가 아니에요. 다만 실패와 좌절에서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의지력을 가졌을 뿐이에요. 결국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지력인 것 같습니다.


유난히 긴 연휴였어요. 매년 그러듯, 올해 추석에도 저는 아버지를 모시고, 둘이 여행을 다녀왔고요. 다녀와서는 다섯 편의 원고를 붙잡고 씨름했어요. 내년에 나올 두번째 책의 수정고를 작업하고요, 공저자로 참여할 책의 원고도 다듬고, 어쩌다 3개로 늘어나버린 연재 원고를 썼어요. (인생독서, 육아일기, 파업일기) 가족과 나들이 다니는 틈틈이 연휴 중 읽으려고 빌려놓은 다섯 권의 책도 읽었고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입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고 무엇을 비셨나요? 저는 조지 마틴이 신인 시절에 보여준 용기와 의지를 빌었어요. 감히 성공을 빌지는 않습니다. 그게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다만 실패해도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요. 내 인생이니까요.  포기하고 돌아서기엔 너무 소중하니까요. 오늘도 책에서 배웁니다. 대가의 삶에서 배웁니다.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여러분, 실패에 좀 더 담대하게 맞설 준비가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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