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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미래에서 온 부자 친척

by 김민식pd 2017. 6. 16.

가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미래에서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내게 이번 주 로또 당첨번호를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저만 하는 상상이 아닌가 봐요.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보면, 악당 비프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스포츠 연감 한 권을 줍니다. 수십 년간의 경기 결과에 따라 스포츠 도박을 한 비프는 떼돈을 벌지요. 미래에서 온 부자 친척이 나에게도 책 한 권을 쥐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과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정해져 있거든요. 미래로 가는 건 가능해요.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현재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거든요. 미래에서 온 부자 친척이 내게 책 한 권을 주기는 쉽지 않지만,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책을 선물할 수는 있어요. 지금 이 순간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겁니다. 오늘 한 권의 책을 읽어 내일 나의 삶이 더 풍성해지기를 소망하는 것, 그것이 독서의 즐거움 아닐까요?

미래에서 온 부자 친척이 내게 돈을 주는 것보다, 과거에서 온 스승이 내게 시간을 선물해주기를 바랍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팔아 돈을 벌거든요. 돈을 아끼고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시간을 버는 일인지 모릅니다. 돈을 벌게 해주는 타임머신은 없지만, 소중한 시간을 아끼고 모아주는 타임 세이빙 머신’ (Time-saving machine)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책이에요.

1988년 스무 살 시절에 앨빈 토플러의 책을 읽고, 다가올 21세기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라는 걸 깨달았어요. 21세기에는 영어 사용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 느꼈고, 책의 충고에 따라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공대를 나와 미국계 기업에 입사하고, 또 외대 통역대학원에 진학했어요. 1996년 통역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읽었는데, 앞으로 미디어 산업이 뜰 것이라 하더군요. 지식의 2차 생산자가 되기보다는 제1 생산자가 되라는 말에, 번역사에서 TV PD로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20대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10년 간 영어를 공부하며 얻은 노하우를 6개월간 글로 쓰고 또 6개월간 원고를 다듬어 낸 것이 올해 초에 나온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입니다. 수십 년 동안 외국어를 혼자 공부하며 익힌 노하우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독자가 하루 만에 이 책을 다 읽고 그 비법을 깨달았다면, 그는 수십 년의 제 시간을 벌어가는 셈입니다. 좋은 책에는 작가가 오랜 세월 터득한 삶의 노하우가 녹아있습니다. 다른 이의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스무 살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안녕? 스무 살의 나?”

아저씨는 누구세요?”

네가 앞으로 30년간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는 사람이지.”

전 어떤 인생을 살게 되나요?”

그냥 지금처럼 살면 돼.”

?”

1년에 책을 200권씩 읽지?”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아세요?”

다 아는 수가 있단다. 지금 그대로 살면 돼.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언젠가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단다.”

진짜요?”

그래.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시간도 올 거야.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마.”

왜요?”

할 일이 없으면 책을 읽으면 되니까, 그것도 좋잖아? 예쁘고 능력 있는 부인을 만나 밥 굶을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는 말고.”
우와? 제가 결혼도 하나요? 그게 제일 큰 걱정인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갈 수는 없기에, 미래의 나에게 매일 책을 한 권씩 선물합니다. 독서가 인생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준다는 걸 믿으니까요. 책 속에서 만난 글귀를 앞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비즈한국> 연재 칼럼 <김민식의 인생 독서>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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