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미래에서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내게 이번 주 로또 당첨번호를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저만 하는 상상이 아닌가 봐요.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보면, 악당 비프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스포츠 연감 한 권을 줍니다. 수십 년간의 경기 결과에 따라 스포츠 도박을 한 비프는 떼돈을 벌지요. 미래에서 온 부자 친척이 나에게도 책 한 권을 쥐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과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정해져 있거든요. 미래로 가는 건 가능해요.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현재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거든요. 미래에서 온 부자 친척이 내게 책 한 권을 주기는 쉽지 않지만,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책을 선물할 수는 있어요. 지금 이 순간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겁니다. 오늘 한 권의 책을 읽어 내일 나의 삶이 더 풍성해지기를 소망하는 것, 그것이 독서의 즐거움 아닐까요?
미래에서 온 부자 친척이 내게 돈을 주는 것보다, 과거에서 온 스승이 내게 시간을 선물해주기를 바랍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팔아 돈을 벌거든요. 돈을 아끼고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시간을 버는 일인지 모릅니다. 돈을 벌게 해주는 타임머신은 없지만, 소중한 시간을 아끼고 모아주는 ‘타임 세이빙 머신’ (Time-saving machine)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책이에요.
1988년 스무 살 시절에 앨빈 토플러의 책을 읽고, 다가올 21세기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라는 걸 깨달았어요. 21세기에는 영어 사용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 느꼈고, 책의 충고에 따라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공대를 나와 미국계 기업에 입사하고, 또 외대 통역대학원에 진학했어요. 1996년 통역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읽었는데, 앞으로 미디어 산업이 뜰 것이라 하더군요. 지식의 2차 생산자가 되기보다는 제1 생산자가 되라는 말에, 번역사에서 TV PD로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20대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10년 간 영어를 공부하며 얻은 노하우를 6개월간 글로 쓰고 또 6개월간 원고를 다듬어 낸 것이 올해 초에 나온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입니다. 수십 년 동안 외국어를 혼자 공부하며 익힌 노하우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독자가 하루 만에 이 책을 다 읽고 그 비법을 깨달았다면, 그는 수십 년의 제 시간을 벌어가는 셈입니다. 좋은 책에는 작가가 오랜 세월 터득한 삶의 노하우가 녹아있습니다. 다른 이의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스무 살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안녕? 스무 살의 나?”
“아저씨는 누구세요?”
“네가 앞으로 30년간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는 사람이지.”
“전 어떤 인생을 살게 되나요?”
“그냥 지금처럼 살면 돼.”
“예?”
“너 1년에 책을 200권씩 읽지?”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아세요?”
“다 아는 수가 있단다. 지금 그대로 살면 돼.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언젠가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단다.”
“진짜요?”
“그래.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시간도 올 거야.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마.”
“왜요?”
“할 일이 없으면 책을 읽으면 되니까, 그것도 좋잖아? 예쁘고 능력 있는 부인을 만나 밥 굶을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는 말고.”
“우와? 제가 결혼도 하나요? 그게 제일 큰 걱정인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갈 수는 없기에, 미래의 나에게 매일 책을 한 권씩 선물합니다. 독서가 인생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준다는 걸 믿으니까요. 책 속에서 만난 글귀를 앞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비즈한국> 연재 칼럼 <김민식의 인생 독서>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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