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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출세를 못한 게 아니라, 선비라고요^^

by 김민식pd 2017. 2. 13.

제가 지금 근무하는 부서는 MBC 주조 송출실입니다. 이곳에서 저와 함께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이들은, 조능희 PD (MBC 전 노조위원장) 이근행 PD (해직 PD로서 뉴스타파를 창립한 분) 한학수 PD (PD수첩 '황우석 편' 연출)  김재영 PD ('PD 수첩' 연출 및 '하우스 푸어'의 저자) 그리고 아나운서로는 강재형, 김상호 등의 기라성같은 선배님들입니다.

처음 이곳에 발령이 났을 때, 부끄러웠습니다. 주조는 MBC 스타 언론인의 산실인데, 나같은 딴따라가 감히 낄 수 있나 해서요. ^^ 일근과 야근을 교대로 하는 근무 형태 역시 익숙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 MBC 뉴스의 안전한 송출을 책임진다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네, 제가 뉴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것 말고 무슨 불순한 이유가 있겠습니까...ㅠㅠ)

고민이 있으면 항상 책을 펼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선현의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 그러다 찾은 책입니다.

<낭송 18세기 소품문> (이용휴, 이덕무, 박제가 지음 / 길진숙, 오창희 풀어 읽음 / 고미숙 기획 / 북드라망)

제가 모시는 스승님 중 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선생님이 계십니다. 남산강 학원을 다니며 선생님과 함께 고전 강독 세미나도 들었습니다. 박제가와 이덕무 등 북학파의 책을 읽었지요. 조선시대 서얼 출신 선비들은 과거 시험을 볼 수도 없고 관직에 나갈 수도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혹은 유배지에서도 그들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치열하게 삽니다. 그런 선비의 삶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올해 저의 목표는 좋은 책을 매일 조금씩 소리내어 읽자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닌 몸을 굴리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책에서 찾은 글귀를 소리내어 읽으며 몸에 새기고자 합니다. 어떤 분들의 글을 읽을 것인가? 옛날 선비들에게서 배우려고요.

 

''낭송 18세기 소품문'의 1부는 이용휴의 문장으로 구성했다. 이용휴는 남인으로 성호 이익의 조카이자, 천재 학자 이가환의 아버지다. 숙부나 아들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품문의 개척자이자 대가로 문단을 주도했다. 과거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백수 선비로, 전업 문장가로 생을 보냈다. '문장가가 소유한 것만이 진짜 소유로, 조물주도 빼앗을 수 없다'고 자부했던 이였다.'

(책 20쪽)

저는 '드라마 PD'라는 타이틀을 무척 귀하게 여겼습니다. '감독님'이라 불리며 촬영장에서 지시하고 연출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 감독이란 지위는 너무 쉽게 빼앗기더군요. 자리가 허망하다는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저는 요즘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요.

 

'이용휴는 잃어버린 '원래의 나'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빈부귀천, 염량세태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 식견이나 욕망에 부림당하지 않는 나, 세상의 노리개가 되지 않는 나로 돌아가는 길을 문장으로 보여 주었다. 그래서 대중의 삶에 부합하거나 욕망만을 따르는 것이 아닌 오로지 '마음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방법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 21쪽) 

 

'이덕무는 서얼의 신분으로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았던 문인이다. 몸이 허약하여 병치레도 많았지만, 그의 생을 지탱해 준 것은 책이었다. 자신을 '책만 보는 바보' 看書癡(간서치)라 부르며, 책을 읽고 탐구하는 것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22쪽)

'박제가는 서얼로 이덕무와 평생의 지기였다. 소심한 이덕무와 다르게 거침이 없었고 격렬했다. 서얼의 신분으로 세상에 나설 수 없음을 한탄했으나, 할 말을 거침없이 하는 스타일로 그의 문장도 거침이 없어 시원하게 느껴진다.'

(23쪽)

 

옛 선비들의 삶의 자세를 배우고 싶습니다. 낭송을 하면 글 공부도 절로 됩니다. 영어 공부를 할 때도 소리내어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데요. 말이 익숙해야 글도 잘 나옵니다. 책에서는 '낭송의 달인이 윤문도 잘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강조합니다. 글을 고칠 때 제가 항상 하는 일이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자연스러운 글이 바로 잡히더군요.

 

책벌레로 사는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21세기 선비처럼 살고 싶습니다!

내가 출세를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선비처럼 사는 거라고!

정신 승리를 외칩니다. ^^ 

 

다음엔 책에서 찾은 낭송하기 좋은, 귀한 글 몇 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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