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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왜 우리는 작은 일에 더 분노하는가?

by 김민식pd 2011. 9. 14.

원래 이글의 제목은, 'PD에게 체력이 중요한가요?'였다.
 
얼마전 어린 여학생이 물어왔다. 'PD하는 데 체력이 좋아야 하나요?'
 
아마도 PD가 되면 밤샘 작업을 많이 하니 체력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하나보다. 물론 기본 체력은 필요하다. 나 역시 평소 체력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면 하루 2~3시간 자면서 석 달씩 달려야하니 말이다.
 
하지만 체력이라고 해야 물리적인 근력보다는 정신력과 지구력이다. 체력 때문에 여자에게 불리하진 않다. 지레 겁먹고 연출의 꿈을 접을 필요는 없다.
 
일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달려있다. 난 하기 싫은 단순 반복 작업을 시키면, 서너시간만 일해도 괴로운 편이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장면을 모아 편집하라고 시키면 밤을 새도 말짱하다. (적어도 젊은 땐 그랬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기본 체력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출 하고 싶으면 체력 걱정말고 하시라.

물론 체력이 더 좋은 사람이 연출을 더 잘하는 건 사실이다. 체력이 실력으로 직결되는 예는 바로 MC 강호동이다.  
 
그가 진행하는 '무르팍도사'에 나가서 싹 털린(?) 배우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니, 왜 예능 나가서 그런 얘기까지 했어?' '감독님... 무르팍 가서 제가 몸사리는 대답만 계속 했더니, 호동씨가 집에 안 보내줄 태세더라구요. 녹화를 밤새하는데, 주위 스탭들도 다 피곤해하고, 그런데 호동씨는 계속 물고 늘어지고... 새벽이 되니까, '에라 이 한 몸 버려서 저 사람들 잠이나 재우자' 싶더라니까요.'
 
MC 강호동은 유독 밤샘 녹화에 강하다. 그가 성공시킨 예능을 보라. 1박2일도 그렇고, 동고동락도 그렇고, X맨도 그렇다. 수많은 게스트들을 데려다 철야 녹화를 하면서도 체력이 떨어지지 않으니까 결국 제 풀에 지친 연예인들이 망가지는 모습도 보여주고 해서 재미난 방송이 나오는거다.
 
난 강호동의 체력을 존경한다. 그건 그만의 리그다. 씨름에서 챔피언 먹은 사람이 개그맨으로 전업하며 바보 연기부터 시작한 걸 보면, 도전 정신도 대단하다. 아마 그의 자신감은 체력에서 나올 것이다. 씨름 천하 장사를 따기 위해 땀흘린 만큼 방송에서도 노력하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지 않았을까? 공부도 결국 체력에서 승부가 나듯, 모든 것의 기본은 노력이다. 
 
이렇게 체력과 실력의 상관 관계에 대해 글을 쓴 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강호동을 방송계에서 영구 퇴출시키자는 기사가 떴다. 음...... 강호동이 백번 잘못했다고 해도, 영구 퇴출이란건 좀 너무하지 않나? 왜 우리는 그에게 자숙하고 반성할 기회를 주지 않는걸까?
 
욕먹을 각오하고, 한마디 하자면, 난 우리가 연예인에게 유독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연예인은 공인이니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오히려 공적인 책임으로 보면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공인 아닌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이들이니까. 그런데도 국회의원이나 장관은 군대 안가고도 잘만 버틴다. 자식들 군대 안보낸 정치인이 수두룩한데, 연예인은 군대 안가면 그 길로 방송 인생 끝이다. 재벌들 세금 떼 먹는 건 어떤가? 유수의 재벌들이 상속세 아끼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쓰다 걸려서 경제사범이 된다. 그래도 조금만 지나면 다 사면받고 나와 떵떵거리며 산다. 정치인이나 재벌에 대해서는 별 말 없는 사람들도 연예인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영구퇴출을 외친다.
 
그 이유는 무얼까? 난 이것이 우리의 패배의식에서 나온다고 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정치인이나 재벌은 응징의 대상이 아니다. 지난 몇년간 우리가 학습한 결과다. 우리에게 가능한 응징이란 결국 연예인에 대한 사소한 복수뿐이다. 연예인은 인기에 민감한 직업이니, 내가 다는 악플 하나하나가 모여 그에게 응징을 가할 것이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안티 운동의 뿌리가 된다. 사람들의 분노에도 끄떡하지 않는 정치인과 재벌들의 행태를 보면서, 개인의 차원에서 응징이 가능한 연예인에게 그 분노를 몰아가는건 아닌지? 
 
우린 참 많은 분노를 품고 사나보다. 드라마 게시판을 보면서 그런 생각 자주 한다. 신인의 미숙한 연기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참 많구나. 그런데 그게 그렇게 공분할 일인가?   

'분노하라.' 지당한 말씀이다. 나는 우리가 큰 일에 더 크게 분노하고, 작은 일에는 약간의 관용을 보였으면 좋겠다. 그게 바른 분노의 용도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그는 밤샘 촬영을 통해 우리에게 웃음을 준 사람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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