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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PD의 어느 주말 하루.

by 김민식pd 2011. 9. 18.
어제 9월 17일 토요일은 정말 알차게 보낸 하루였다.

아침엔 교보문고 배움 아카데미에 가서 'PD가 말하는 PD' 강연.

10시에 도착해서 간만에 광화문 교보문고를 돌아보며 책사냥. 베스트셀러 서가에 서서 내가 놓친 책은 없는 지 두리번 두리번.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증보판이 보여 얼른 포획. 베스트 셀러 소설 순위 20위 안에서 읽은 책은 10권 정도. 광활한 책의 숲을 돌아 본다. '세상의 재미난 모든 이야기들, 언젠가는 다 읽어주마,'

10시반 강연 시작,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 'PD를 속성으로 준비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기에, 잠시 고민 후, '운입니다.'라고 대답. 후배 PD들을 붙잡고 '네가 PD 공채 합격한 데 가장 공이 큰 건 무엇이었니?'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운이 좋았죠.'라고 한다. 처음엔 겸양의 표현인가 싶은데, 생각해 보면 이것도 맞는 말이다.

작년도 MBC PD 공채 경쟁률은 1300대 1. 1300명 중에서 100명까지는 실력으로 판가름난다 쳐도. 그 100명, 아니 최후의 30명은 실력차가 거의 없다. 결국 운이 좋아야한다. 자기소개서를 읽는 PD의 취향, 논술 문제와의 궁합, 합숙 평가시 본인의 컨디션 등등... 그러니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라.'이다.



나 역시 운이 무척 좋아 PD가 되었다. 그걸 알기에 시간 내어 글도 쓰고 강연도 다니고 그런다. 어떻게든 이 운명에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  

강의 후, 교보문고를 나와 건너 편 광화문 씨네큐브로 이동. 2시 10분 영화 예매. 홍상수 감독님의 신작, 북촌방향. 영화 기다리며 교보문고에서 준 샌드위치와 우유로 점심 해결. 극장 로비 한 켠에 앉아 과학 콘서트 읽기 시작. 역시 명불허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괴짜 경제학'에 비견할만한 통찰력의 메들리. 정재승이라는 학자는 통섭의 시대에 준비된 이야기꾼이다. 놀라운 책이다.

2시 10분. 영화 시작. 홍상수 감독의 11번째 영화는 즐거웠다. 얼마전 고려대에서 연 시민 예술 인문학 강좌를 들을 때 홍상수 감독님의 강연을 들었다. 그때 난 청중의 한 사람으로 질문을 했다. '전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제일 좋아합니다. 혹시 데뷔작처럼, 다른 이의 이야기를 가지고 작업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홍상수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하고 말았다. 난 홍감독님의 영화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점점 대중과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걱정을 했던 것인데,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데 '북촌방향'을 보니, 그 질문이 약간 실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촌방향', 재미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풀었다. 난 몇번 박장대소했는데, 혼자 영화보러 온 아저씨가 미친듯이 웃는 모습을 보고, 옆자리 커플들이 째려봤다. '이게 웃겨?' 그런 표정으로... 음... 찌질한 중년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감독역을 맡은 유준상씨가 하는 마음의 소리가 너무 웃겼다. 나만 웃겼나?

영화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주인공이 나와서 반가웠다. 한동안 안보이시더니. 극중 감독과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또 혼자 뒤집어졌다. 나 역시 많이 겪은 일인지라...

영화가 끝나고 광화문역에서 5호선을 타고 광나루역으로 갔다. 악스코리아 공연장에서 갭 본투락 콘서트가 열렸다. 지하철 역 근처에서 떡볶이 순대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공연장 입장.


몽구스-갤럭시 익스프레스-킹스턴 루디스카-장기하와 얼굴들-리쌍-크라잉넛-윤도현 밴드로 이어지는 로큰롤 최고의 라인업! 이 공연을 단돈 25000원에 볼 수 있다는 점에 갭 코리아에 감사드린다. 황홀한 하루 저녁이었다.

오후 5시반에 시작한 공연은 밤 10시반에야 끝이 났다. 5시간 동안 스탠딩 공연을 보며, 점핑, 펌핑, 푸츄어핸썹! 까지... 아, 삭신이 쑤신다. 역시,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가 맞는 말씀이다. 5시간 동안 달리는 청중 속에서 내가 최고령 관객인것 같아 살짝 민망했는데, YB의 기타리스트가 오늘 38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TV속 10대 아이돌 그룹만 보다 그들의 나이가 신선했다. '그래, 딴따라에게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청춘은 나이의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잖아?' 만약 누가 '아니 왜 아저씨가 이런 공연에 와요?'라고 당돌하게 물어보면, 난 천연덕스레 대답해주리라. '나 드라마 감독인데, 록 공연 취재 온거야.' 다행히 아무도 시비거는 이가 없었다. 다들 속으로 흉보려나?^^ 

어제 공연의 발견, 킹스턴 루디스카! 스카 펑크를 하는 친구들인데 브라스 밴드 연주가 아주 신났다. 보컬도 귀여웠고^^ 

어제의 최고 밴드, 순전히 개인적인 평가로 점수를 주자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이 가장 좋았다. 장기하의 무대 매너가 발군이었다.

어제의 최고 넘버, 장기하와 얼굴들이 앵콜을 시작하는데, 리쌍이 달려나와 같이 부른 '우리 지금 만나'. 짜릿한 순간이었다!

아침 10시반부터 밤 10시 반까지 쉼없이 달렸다. PD로 산다는 게 즐거운 하루였다. 아니, 난 이런 생활, PD지망생 여러분께도 권하고 싶다. 교보에 가서 책의 숲을 거닐고, 살짝 비주류인 영화도 찾아보며 혼자 낄낄거리고, 공연장에서 점핑에 펌핑하며 록에 취해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PD지망생이 해야 할 모든 것이니까.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어제 윤도현 밴드의 앵콜곡은 무엇이었을까요?
보기 1. 나는 나비 2. 커피 한 잔 3. 런 데빌 런 4. 빙글빙글




정답은?
4곡 다!

1번이라고 쓴 사람은 YB는 알지만, 나가수는 안 보신 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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