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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지금 우리에게 세월호란...

by 김민식pd 2016. 8. 22.

며칠 전 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세월호 특조위 조사 기간 보장과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자식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알기 위해 자식을 잃은 부모가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해야하는 현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쉬 시리즈 중 '클로저'라는 작품이 있어요. 퇴직한지 3년이 지난 해리 보쉬 형사가 미해결 사건 전담반에 복귀하는 이야기죠. 17년 전 미해결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은 해리 보쉬. 수사반장이 보쉬에게 하는 얘기가 있어요.

"분명한 것은 이 전담반(미해결 사건)이 이 건물(LA경찰서)에서 가장 고귀한 곳이라는 겁니다. 피살자들을 잊는 도시는 길을 잃은 도시죠. 이곳은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예요. 우리는 9회 말에 불려나오는 투수 같은 존잽니다. 마무리 투수. 우리가 끝낼 수 없으면, 아무도 끝낼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일을 망쳐버리면 게임은 끝나는 거고, 왜냐하면 우리가 최후의 수단이니까."

2016-191 클로저 (마이클 코넬리 /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 (전자책 5%)

 

세월호 유가족들은 특조위가 최후의 보루라고 느낄 겁니다. 그분들에게 세월호 사건은 아직 종료되지 않은 미해결 사건이고요. 유가족들이 특조위의 활동 지속을 원한다면, 그 뜻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님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돕는 '치유공간 이웃'을 꾸려왔어요. 강연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누가 물어요.

 

'Q :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추모집회에 나가거나 리본을 달거나 하는 일이 실제로 무슨 도움이 될지 회의가 듭니다.

A: 그런 생각 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을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학생의 오빠가 죽을 만큼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이 아이가 전철을 타고 가던 중에 가방에 세월호 리본을 단 학생을 봤대요. 그런데 그 순간 '세상이 다 잊은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그때부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죽음이 두려운 것은 완벽한 잊힘 때문이기도 합니다. 억울한 죽음일 때는 더하지요. 그러니 내 고통을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느낌, 내가 거대한 고통 속에 홀로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은 피해자를 살게 하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평택에 있을 때는 고립되었다는 느낌 때문에 힘들었는데,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농성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들러주고 분향을 해주는 것을 보고는 살 힘을 얻었다고 해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모른다, 홀로 고립되었다, 내 고통을 세상은 다 잊었다는 느낌은 사회적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에게는 치명적이에요. 그래서 삶의 끈을 놓는 거죠. 죽음을 선택하는 겁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고통을 나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은 어떤 방식이든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이에요. 추모집회에 머릿수를 보태는 일, 노란 리본을 다는 일, 유가족 간담회에 참석하는 일, 세월호 관련 글이나 기사에 댓글로 공감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치유적 행위이고 사람 목숨을 살리는 일입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한 모든 사람은 치유자예요. 이런 치유자들이 모여서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를 살리는 겁니다.'

 

 2016-192 정혜신의 사람 공부 (정혜신 / 창비) (113쪽)    

 

우리 시대, 가장 아픈 사람이 세월호 유가족이라 생각합니다.

그 아픔을 돌볼 수 없다면, 우리 사회가 공동체로서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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