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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무더운 여름밤엔 호러 미스터리

by 김민식pd 2016. 7. 20.

2016-171 붉은 눈 (미쓰다 신조 / 이연승 / 레드박스)

 

'호러 팬이라면 알겠지만 읽으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공포 소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완성도가 높은 단편집이라도 그중 두세 편 정도 무서운 이야기가 있으면 괜찮은 수준이다. 영상과는 달리 활자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선사하기란 상당히 까다로운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비슷한 역대 공포 소설집 중에서도 최상위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책 316 해설 중)


12편의 무서운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 '붉은 눈'. 끝부분 해설에 나오는 글인데, 책의 느낌을 제대로 옮겼네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공포 소설을 두 번 읽는 괴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겁이 많아서 무서운 대목은 세세하게 읽지 않고 그냥 설렁설렁 넘기거든요. '이번 이야기의 반전은 뭐야?' 하가 결말에 가서, 소름이 쫙! '이런 트릭이 가능해?'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찬찬히 꼼꼼히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읽었더니, 페이지를 넘길수록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와, 알고 보는데도 이렇게 무섭다니귀신의 소행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살인범, 살인을 잡은 줄 알았더니, 이미 3년 전에 죽은 사람, 그럼 내가 잡은 이 서늘한 손의 정체는? 호오... 이것 꽤 무서운 걸요?

괴담의 형식 중 가장 무서운 것이 '이건 말이야, 내가 지난 여름에 직접 겪은 일인데...' 하면서 실제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일들이지요. 미쓰다 신조는 소설 속 괴담 작가로 자주 등장합니다. 직접 화자의 역할을 하는 메타픽션인데, 이게 작가의 상상인지, 실제 사건인지 정말 아리송합니다. 그래서 더 으스스해요.

 

'허구<->현실'이라는 세로축에 '본격 미스터리<->호러'라는 가로축을 더해 사분면을 자유자재로 왕복하는 것으로 독자에게 생각지도 못한 수수께끼와 공포를 제시하는 작가가 바로 미쓰다 신조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책 322쪽 해설 중)

 

미쓰다 신조는 소년 시절 미스터리 팬이었다가, 대학 시절 호러의 재미에 매료되고, 잡지 편집자로 일하면서 '런던 미스터리 투어' '일본 괴기 환상 기행' 등의 시리즈를 만들어냈답니다. 일본 문학 시장이 참 부러운 게 이런 엉뚱한 작가 (미스터리와 호러의 이종교배 전문!)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거죠. 다양한 장르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 잡지가 많아 편집자로 기량을 닦을 수도 있고, 작가로 단편을 기고할 수도 있습니다. 공포나 SF 같은 장르가 일정 정도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인 것 같아요.

저자는 첫 책을 낸 후, 10년 넘게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인 만큼 성실하게 작업하는 작가입니다. 꾸준히 많은 작품을 내놓는데 일정 퀄리티 이상을 보장해주네요. 미스터리 팬으로서 독자를 놀라게 하는 트릭도 꼼꼼히 만들고, 호러 마스터로서 분위기 묘사에도 상당히 공을 들입니다.   

 

 

여름에 서늘한 공포를 원하신다면, 도서관에서 미쓰다 신조를 검색해보세요. 우리 동네 도서관에도 저자의 책이 꽤 많아요. 겁이 많은 저는 이 책을 사지는 않았어요. 얼른 읽고 반납해야지, 서가 꽂아 두기는 좀... 책꽂이 사이에서 무언가 스르륵 빠져나올 것 같은 느낌...... 

작가가 수집한 괴담을 책으로 내는 이유, 괴담을 듣고 말면 그 괴이가 들은 이에게 붙는답니다. 그런데 글로 쓰면 읽는 사람에게 옮겨간다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 등 뒤에 저 분은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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