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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이메일 주소로 자신을 표현하라

by 김민식pd 2011. 8. 20.
사람을 만나 명함을 주고 받을 때, 난 꼭 이메일 주소를 살펴 본다.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말문을 여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이메일 주소는,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여 세상에 알리는 나만의 정체성이다.

이름은 태어나자 부모님이 지어주신다.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뭐, 너무 후지게 지으면 바꾸기도 하지만... 메일 주소는 자아가 생긴 후, 사이버 공간에서 내가 어떤 이름으로 활동할 지 정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다. 이메일 아이디를 잘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니 적어도 한 사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담겨있기도 하다. 

물론 이메일 주소를 그냥 별 생각없이 만드는 사람도 많다. 그냥 자신의 이름을 영문으로 만들거나 전화번호를 조합하거나... 난 이런 사람들은 창작자로서 정말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다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심지어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아무런 창의성 없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짓는다? 이건 아니라고 본다.

별 거 아닌 메일 아이디에 나름 거품 무는 이유가 있다. 나를 시트콤 PD로 만들어 준 것이 내 메일 아이디이기 때문이다. 나의 인터넷 아이디는 seinfeld다. 싸인펠드를 혹 아시는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의 시트콤이다. 우리는 프렌즈나 섹스앤더시티를 최고로 치지만, 미국에서는 싸인펠드를 역대 최고의 시트콤으로 꼽는다. '난 언젠가 한국판 싸인펠드를 만들어야지!' 하는 포부를 갖고 MBC에 PD로 입사했다.

 



근데 막상 MBC 예능국에 와보니, 시트콤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연차가 많은 조연출들만 배정되었다. 난 입사하고 '인기가요 베스트 50'이나 '쇼 토요특급', 연예정보프로그램 등의 조연출로만 돌아다녔다. '시트콤 시켜주기만 하면 정말 잘 할 자신 있는데...' 하지만 한번도 검증된 적 없는 내게 시트콤 조연출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1998년 봄, 당시 MBC 예능국장이셨던 신종인 국장님이 나를 불렀다. 클래식을 좋아하셔서 미국 아마존에서 직접 해외 주문을 하시던 국장님인데, 어느 날 배송에 문제가 있어 아마존에 항의 이메일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국장님은 내게 영문 편지 작성을 부탁했다. 어깨너머로 내 이메일을 보시던 국장님, "아이디가 저게 뭐야? Seinfeld? 저거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시트콤 아냐?"

난 국장님께 내가 평소 미국 시트콤을 즐겨보는 시트콤 매니아라고 말씀드렸다. "너 시트콤 좋아해?" 그 다음 가을 개편에 난 바로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3년 후, 신종인 국장님이 제작본부장으로 승진 하신 후, 어느 날 나를 부르셨다. "야, 민식아, 니가 시트콤 전문이라는데, 제대로 한번 만들어 봐, 응?" 그러시고는 나를 새로 만드는 시트콤 팀에 발령내셨다. 그게 내가 뉴논스톱을 맡게 된 사연이다. 

                            (나의 연출 데뷔작, 뉴논스톱. 보고싶다, 다들~)

이메일 아이디, 자신의 온라인 아이덴티티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이름을 지어라. 그러면 언젠가는 세상이 당신을 알아보는 날이 올 것이다. 무한도전의 김태호를 보라. 연출자막에 테오라고 올린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은 남다르다는 것을.   

명심하시라,
자신의 길을 분명하게 밝히는 사람에게 세상은 길을 양보하는 습성이 있다.


(혹시 싸인펠드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내가 2004년에 올린 카페글을 참고하시길~
http://cafe.daum.net/sitcomlove/2VCZ/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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