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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저예산 독립 SF 영화 제작기

by 김민식pd 2011. 8. 12.
공짜로 영화 찍는 시대가 왔다. 스마트폰으로 영화 찍고, 저가 앱으로 편집하고, 유튜브에 올려 전세계에 배급하는 시대. 놀면서 찍은 '저예산 독립 SF 영화 제작기'를 올린다. 연출을 꿈꾸는 분들도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기 바란다.

1. 기획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인가? 그 답은 어떤 사람들이 모였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좋아하는 SF 매니아들의 친목 모임이 있다. 내가 예전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을 번역할 때 만난 출판사의 편집자들과 만나는 모임이다. 한 달에 한번 씩 만나 좋아하는 영화 얘기, 만화 얘기, 미드 얘기하다, 어느날 문득, '우리끼리 독립 영화 한 번 만들어볼까?'하고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각자가 시나리오를 쓰고, 우리가 직접 연기와 스탭을 번갈아 하는 시스템.

그럼 어떤 시나리오를 쓸까? 2가지만 정했다. 첫째, SF라야 한다. 저예산 셀프 영화인데 SF라고? 그게 가능해? 한번 보시라. 그게 가능한지 안한지...^^ 둘째, 영화 촬영은 무조건 1박2일 동안 놀러가서 완료한다. 그래서 시나리오는 캠프장이나 펜션 등 전국의 휴양지를 배경으로 써야 한다. 왜? 일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노는 게 우선이니까!

2. 대본
홍대 카페에서 모여, 서로의 기획안을 가지고 회의를 한다. "난 이런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 어때?" 5명이서 기획안을 내놓고, 그 중 가장 먼저 시나리오화 할 수 있는 기획안을 고른다. 그런 후 기획안을 내놓은 사람이 직접 대본을 쓴다. 배역은 6명을 넘어가면 안 된다. 우리 모임 총원이 여섯 명이다. 그리고 한 장면에 6명 전체가 모여서도 안 된다. 카메라를 잡는 한 명은 필요하니까. ^^ 한 명이 화장실에 가야, 다른 한 명이 들어오는 구조다. 

1차 완성된 대본을 들고 수정 회의를 한다. 그런 다음 촬영 전 주, 대본 리딩을 한다. 대본 리딩 하는 장소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지하 골방으로 한다. (대본 리딩하며 외계인 연기나 UFO를 쫓는 FBI 요원 연기를 해야 하니, 누가 보면 환자들의 집단 상담인 줄 알거다.)

3. 촬영.
1박 2일간 놀러가서 마음껏 찍는다. 포인트는 즐겁게! 무슨 과제작도 아니고 어디 출품할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끼리 재밌어서 하는 일이니,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쓴 카메라는 요즘 영화같은 화질로 각광받는 디카, 오두막(캐논 EOS 5D Mark II)이었지만 스마트폰으로도 요즘 고품질의 촬영이 가능하다.  



2011 여름 고래방 SF-캠프 영화 1탄, "사이좋게 지내요" 촬영 현장.
내가 맡은 역할은 인도에서 온 구로동 선반공이었다. 내 옆에 앉은 분은 서울대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멤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왕자 역할을 했다. (외국인 배우를 섭외할 돈이 없어 그냥 우리가 직접 연기했다. ^^)

나는 영화 내내 경포대 해수욕장에 놀러온 피서객에게 같이 사진찍자고 따라다닌다.
"오우, 한쿡 여자, 뷰티풀! 예뻐요! 사진 하나 찍어요!" 

그러다 여자 뒷발차기에 날아가는 역할이다. 저 리얼한 발연기를 보라! (발로 연기하기 정말 어렵더라. 발 연기란 표현은 앞으로 자제해야 겠다. )

카메라 뒤에 서서 큐를 외치고 NG!를 외치기는 참 쉬웠는데, 막상 연기해보니 쉽지 않더라. 모든 연출 지망생들에게 권해드린다. 독립 영화 찍으면서 직접 연기도 한번 해보시라.

캠핑하며 놀면서 영화도 찍는다. 1석2조! 그런데 왜 이 영화가 SF냐고? 나중에 편집본을 보시면 안다. 어마어마한 반전이 있다. ^^ 왼쪽 두번째 여자분이 첫 시나리오를 쓰신 출판사 편집자 님이다. 왜 나를 인도에서 온 노동자로 그리셨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지지 않냐고 뭐라 그럴까 걱정이다. 흠흠... 

끝으로...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며 PD시험을 준비하기보다 직접 시나리오도 써보고 직접 연기도 해보며 연출을 실습해보시라. 예전에는 영화 찍으려면, 장비 구하기가 힘들어 포기하는 예가 많았지만,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독립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아니 난 셀프 영화라고 부르고 싶다. 독립 영화보다 더 만들기 쉬운 셀프 영화. 

다음 편에서는 직접 쓴 기획안과 시나리오를 들고 오겠다. 

독립 SF 영화 만들기, 뜻이 없지, 길이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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