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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노동화가 빈센트 반 고흐

by 김민식pd 2011. 8. 18.

PD도 공부를 한다. 아니 PD이기에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난 요즘 공짜 강의를 찾아다닌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즐거움에, 그것이 공짜라는 보람을 더하면, 내게는 희열이 된다. 결국 이 블로그는 내가 공짜로 즐기는 세상, 그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프로듀서, 감독, 작가 등의 전문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창작소재 개발을 위한  '2011 콘텐츠 창의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창작 활동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콘텐츠 진흥원 홈피는 가끔 찾아 볼 필요가 있다. 전문 창작자 뿐만 아니라 예비지망생들을 위한 강좌까지 다양하게 지원하니까. 

내가 선택한 강의는 창의워크숍 중 '법학자의 인문학 교실'이다. 강의를 맡으신 박홍규 교수님이 준비해오신 1강의 주인공은 '노동화가 빈센트 반 고흐이다'


우리 시대 가장 창의적인 화가 중 한 사람인 고흐, 그의 창의성의 근원은 무엇일까?

1. 다작
고흐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살아 생전 그가 판 그림은 1점 밖에 되지 않는데, 그리기는 2000점이 넘게 그렸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데도 1년에 수백장씩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27살에 미술 독학을 시작해서 5년간 공부한 후, 5년간 왕성하게 활동하다 37살에 요절한 화가. 너무나 가난해서 모델을 쓸 수 없어 자화상만 그렸던 남자. 그러나 그는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초연한 채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세우고 대가로의 길을 닦았다. 다작하라. 창의성은 끊임없는 작업의 결과로 탄생한다. 대중을 상대로 작업하는 이에게 이런 근성 없이, 창작은 불가능하다.

2. 신념
박홍규 교수는 빈센트 반 고흐를 노동화가라 부른다. 평생을 화랑 점원, 탄광 막장 노동자, 무보수 전도사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살다 간 사람. 노동을 통한 자신의 경험과 사회적 경험을 특유의 단순화를 통해 화폭에 옮긴 사람. 화가로써 고흐가 사회고발적인 그림을 그렸다거나 노동현장을 그린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자신의 그림으로 노동자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싶었다. 고흐는 당시 상류층에게 어필하는 비싼 그림이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들도 누구나 한 장씩 집에 사다놓고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투박한 그의 화풍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 체제에 대항하는 자신만의 신념이 새로운 화풍을 만든 것이다.  

3. 혁신
고흐는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화방 점원 생활을 10년간 하면서 밀레의 흑백 동판화를 본 게 전부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밀레의 흑백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자신만의 채색을 함으로써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갔다. 제도권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반전통적인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화풍을 창조할 수 있었다. 반 고흐가 사후 재평가 된 계기는 그의 이런 혁신성 덕분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기존 체제는 전복된다. 그후 유럽사회는 전통을 거부하는 새로운 문화사조를 받아들이게 되는 데 그때 반 고흐의 그림이 총아로 등장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기존 체제의 답습보다는 혁신에서 시작된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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