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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08 행복은 바나나 (21)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김보통 / 한겨레 출판)


김보통 작가님을 좋아합니다. 이분은 정말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작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에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후, 만화가로서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제 인생의 행복 역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온 순간 시작되었어요. 모두가 말리는 일을, 혼자만의 결정으로 밀어붙인 순간, 진짜 어른이 되는 기쁨을 맛 본거죠. 행복은 혼자만의 선택을 하는 용기에서 비롯되거든요.

본업은 만화가이지만, 요즘 에세이를 즐겨 내시는 김보통 작가님의 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읽었어요. 첫번째 글부터 마음에 쏙 듭니다. 


행복은 바나나

행복이란 바나나와 같다. 내겐 그렇다.

너무 달지 않고 시지 않으며 껍질은 까기 쉽고 씨도 없다. 부드러워 먹기 편하고 양도 적당하다. 과일의 왕이다. 


바나나를 숭배하는 대학생 김보통에게 아버지가 그래요. '너는 바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과일이 있는데 겨우 바나나가 제일 좋다니. 한심한 녀석. 두리안도 먹어 보고, 애플망고도 먹어보고, 패션후르츠도 먹어보고 한 다음에야 어떤 게 제일 맛있는가를 결정해야지 먹어본 것도 별로 없으면서 그런 흔한 과일을 최고라고 하는 건 어리석은 거야."

김보통 작가는 군 제대 후, 유럽 배낭여행을 갑니다. 반년이 넘도록 유럽을 유랑하며 온갖 과일을 다 먹어봐요. 그러고 난 후, 내린 결론. '역시 바나나가 최고다.' 후훗~^^


저 역시 바나나를 좋아해요. 작년에 탄자니아 여행을 갔을 때, 하루에 바나나 4~5개씩 먹었어요. 간단하고 저렴한 배낭여행자의 아침 식사. 콘프레이크에 우유를 붓고 바나나를 조각 내어 넣어 먹습니다. 적당히 달고 맛있고 영양가도 있어요. 동남아나 아프리카 같은 열대 지방에서는 가격 대비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과일이 바나나에요. 가성비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은 분모를 낮추는 일입니다. 탄자니아 바나나는 개당 100원 정도 합니다. 싸고 달고 맛있어요. 바나나는 칼이 없어도 어디서나 쉽게 껍질을 벗길 수 있어요. 물에 씻지 않아도 되고요. 간편함과 가성비를 추구하는 배낭족에겐 최고의 과일이지요. 


어렸을 때, 아버지는 저에게 의대 진학을 강요했어요. 

"아버지, 저는 피를 보는 것도 무섭고요. 성격이 까불까불한 편이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은 못 할 것 같아요." 

"그럼 넌 뭘 할래?" 

"저는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게 제일 좋아요. 문과에 진학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에 의사가 얼마나 좋은데, 겨우 글쟁이가 되겠다니, 너는 바보다. 의사가 되면 돈도 많이 벌고, 존경도 받는데."

"아버지, 저는 돈을 벌지 않아도 좋고, 남들 존경도 필요없으니 그냥 저 혼자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요. 의대 갈 성적도 당연 아니고요."

"네가 의지가 부족한 거다.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 먹으면, 공부야 열심히 하면 되지.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게 말이 되냐? 공부하기가 싫은 거겠지."

아버지의 강권에 못이겨 이과를 선택했다가 인생이 정말 힘들어졌죠. 나이 스물에 내린 결론,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부모 조차 나를 이렇게 모르니,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로구나.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고 있어요. 이걸 찾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50에,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술도 먹어보고, 춤도 춰보고, 여행도 다녀보고, 연애도 해보고, 드라마 연출도 해보고, 재미난 일은 다 해봤는데요. 제일 마음이 편할 때는 도서관에 앉아 책 읽을 때에요. 돈도 안 들고, 스트레스도 없어요. 다른 사람을 설득할 필요도 없고요. 그냥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놀이에 심지어 돈 한 푼 안드는데, 인생에 이보다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행복은 바나나에요. 수박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여름철에만 행복하겠지요. 두리안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돈이 많아야겠지요. (꽤 비싸거든요.) 바나나는 사시사철 싸게 구할 수 있고요. 심지어 세일할 때 사서 냉장고에 얼려놓고 가끔식 얼린 딸기와 함께 딸바(딸기바나나) 셰이크를 해서 먹어도 좋아요. 어렵게 구할 수 있는 행복보다 작고 확실한 행복이 더 좋아요. 

'굳이 힘들게 의사가 되어야만 행복한게 아니라, 도서관에만 가도 행복하다.'

이게 50년을 살며 찾은 제 인생의 행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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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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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쓰는_사람 2018.02.08 0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오랜 시간 고민하고 다른 취미도 찾아보고 책 사는 일도 끊어보다가 이제는 '인정'하게 됐어요. 나는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올해부턴 대놓고 책 읽고, 좋아하는 책 이야기 실컷 나누고 있습니다. '바보' 소리를 듣더라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매일 챙기며 '즐거운 바보'로 살려고요! :)

  3. 섭섭이짱 2018.02.08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전 정말 운좋게 일찍부터 바나나를(좋아하는일) 맘껏 먹으면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지냈는데요. 요즘은 그렇게 맛있던 바나나가 점점 맛이 예전 같지가 않고, 없어질수도 있게되면서 다른 과일들도 찾아보고 먹으려 하고 있어요. 남들이 먹고 탈났던거나 제 체질을 고려해서 탈나지 않게 이것저것 조금씩 먹어보는데, 먹다보니 바나나 같이 달고 맛있는 과일이 많다는걸 알게 되네요. 앞으로 다양한 과일을 맛보면서 제2의 바나나를 찾아보렵니다.

    PD님 말씀처럼 인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가는 여정 같아요. 나를 찾아서 고고고~~
    오늘도 김민식표 행복 감염주사 잘 맞고 갑니다. ^^

  4. 정지영 2018.02.08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모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 를 저는 제대로
    알아보려 한 적이 없었어요. 책을 만나고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힘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전혀 가공되지 않은 원석을 조금씩 쪼아가며 그 안에 든 진짜 나를 만나는 과정이 행복이고, 성장이고, 성숙인 것을 이제는 알게됐거든요.^^
    작가님 말씀처럼...
    담보되지 않은 내일의 행복보다 지금 여기 댓글 쓰는 오늘의 행복이 좋네요~~

  5. 의사15년째 2018.02.08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굳이 힘들게 의사가 되어야만 행복한게 아니라, 도서관에만 가도 행복하다.'

    ' 힘들게 의사가 되고 나서 십오년 의사를 해보니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힘들고 재미없다. ( 아주 가끔은 재미있고 보람도 있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 나는 망고를 꼭 먹어야지 행복한 것인지 알았지만
    원래 나는 바나나만 먹어도 행복한 사람인 것이었다. '


  6. 2018.02.08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김민석 2018.02.08 1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들게 의사가 되었지만
    도서관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8. 하니 2018.02.08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어났으니 그냥 생긴대로 살면 행복한데, 왜 밖을 보며 나 아닌 다른 이가 되려했을까요? 자기의 욕망과 감정을 부정하면서 사는게 가장 힘든 일인데, 그 힘든 걸 허느라 제가 참 애를 많이 썼네요^^
    지금은 그냥 나여서 좋고, 김민식피디님 글 읽으면서 행복합니다~

  9. 아리아리짱 2018.02.08 2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도서관에만 가도 행복하다.' 이 소박한 행복론을
    가지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많이 옅어집니다. 어렵게 구하는것보다 작고 확실한 행복
    '바나나 행복론' 너무 흔하고 손 쉬워서 귀한 느낌 밀쳐뒀는데, 다시 급 소중함 새깁니다.^^

  10. 철학 2018.02.08 2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봐야겠네요 ^_^
    책소개 감사합니다.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고 있어요. 이걸 찾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

    공감, 공감..:D

  11. 박소라 2018.02.08 2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예스24 팟캐스트 보고 찾아왔어요~ 피디님 멋져용~~!!

  12. luvholic 2018.02.09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개글을 보니까 너무너무 읽고싶네요!
    위시리스트에 바로 담아 놓았습니다 :)
    김보통 작가의 책 기대됩니다. 추천 감사드립니다^^

  13. 단비마마 2018.02.09 1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보통씨 좋아하는데 오늘도 좋은 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14. 미소 2018.02.10 1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공감합니다!
    지금 제 맘을 너무 딱 맞게 표현 해주신것 처럼요~ ㅎ
    작가님 하고 같은 인생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오늘도 행복합니다 ^^
    감사합니다☺

  15. 투썬플레이스 2018.02.11 0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 넘넘 좋아요>_<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이 멋지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당^^

  16. 하새 2018.02.11 1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의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고,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던 중 블로그에 들어왔어요.
    pd님의 글들은 읽기 편하면서 얻고 느끼는 게 많은 알찬 좋은 글 들이에요.
    앞으로도 블로그에서 글 많이 볼게요. 좋은 책을 쓰시고, 또 다른 좋은 책들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7. SORA& 2018.02.11 1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당~~^^

  18. 오롯한 2018.02.14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 처럼 저도 그냥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보고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 들으면서 사는게,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공무원 일 할때보다 훨씬 행복합니다.

  19. 동아 2018.02.16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아이들에게 말하죠. 좋아하는걸 찾는데 시간을 쓰라고. 저도 늘 제 삶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20. 아이린 2018.03.02 0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저도 피디님의 말씀에 힘 입어 직장을 때려치고 제가 좋아하는일을 하려고 했는데요.. 막상 때려치니 좋아하는 일에 집중을 못하더라고요 ㅜㅜ 더 게을러지고 .. 그래서 다시 직장에 들어가려고요 ㅜㅜ..

  21. 최자작나무 2018.04.07 1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강연듣고 독서가 정말 멋진 취미라는 걸
    새삼 크게 느끼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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