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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나이듦 수업

by 김민식pd 2016. 2. 11.

2016-28  나이듦 수업 (고미숙 등 / 서해문집)

새해 한 살 더 먹었다. 이제 내년이면 50줄이다. 어떻게 늙어야 잘 늙는 걸까? 이게 요즘 나의 화두다. 나이듦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하던 차, 고미숙 선생의 강연이 실린 책 소식을 들었다. 경향 신문 책 소개 코너에서 보고, 음... 1월에 나온 신간이니까 7월쯤엔 도서관에서 볼 수 있겠군... 했는데, 운좋게 회사 자료실에서 바로 빌릴 수 있었다.

'오늘 제가 잡은 강연의 주제가 '청춘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청춘을 흉내 내다 노년을 맞이하게 되면 정말로 참담합니다. 절대 청춘을 모방하시면 안 돼요. 그건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스스로 부정하는 거예요. 봄은 아직 여름을 몰라요. 봄과 여름을 지나온 나만이 아는 그 시간을 왜 스스로 부정합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청춘을 부러워하면서 흉내 내요. 사실 근거도 별로 없어요. 제가 정말 청춘이 아름다운가 돌이켜봤는데요, 생각해보니 절대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 시절에 저는 정말 구질구질했어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위의 책 33쪽)

맞다. 내 경우를 돌아봐도, 20대는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았고, 30대는 하고 싶은 건 있으나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고, 40대가 되니 비로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일치되더라. 무엇보다 20대의 나는 존재감이 없었다. 산다는 느낌이 없었다. 

몇해전 숨도 아카데미에서 몸 워크샵을 하는데 고미숙 선생이 오셔서 특강을 하셨다. 그때 선생은 '존재감'을 이렇게 정의했다. 

"존재감이란 무엇인가? 몸과 마음의 교집합이 존재감입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이 저기에 있다면 그 사람의 존재감은 미미하죠. 몸과 마음이 100% 일치해야 존재감이 100% 발휘됩니다. 그렇다면 존재감을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둘 중 하나입니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붙들어매거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보내주거나."

 

그 강의에서 나는 고미숙이라는 이름 석자를 가슴에 새겼다. 내가 사숙해야할 스승을 또 한 사람 만났구나. 이후 선생의 책을 읽고, 선생이 참여하시는 남산강 학원 세미나까지 쫓아가서 수업을 들었다.

다독 비결 28 ----------------------------------------------

스승을 정해 사숙한다. 스승의 새 책이 나오면 달려가 영접한다. 스승은 나에게 태양 같은 존재다. 스승은 나의 존재를 모르지만, 나는 스승의 가르침으로 잠든 삶을 깨우고, 식은 열정을 달군다. 한 사람의 책을 오랜 세월 계속 읽다보면 그의 사상의 궤적이 보이고, 스승이 나이 들어가는 과정도 먼 발치에서 지켜볼 수 있다. 나보다 먼저 늙어간 스승의 인생 발자취를 쫓아간다. 이게 진정한 도반이다. 책을 통해 인생의 스승을 만나는 것, 이것도 다독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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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제대로 늙을 수 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노인이 해야 할 일은 직업을 다시 얻어 사회적으로 진출하는 일이 아니고, 혈연과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체 전체의 비전과 자기 존재의 근원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장이 열려야 합니다. 이 네트워크가 활발해지면 노인과 청년이 계속 소통할 수 있어요.'

아, 역시! 공동체 전체의 비전과 자기 존재의 근원을 위해 일하라! 이 얼마나 원대한 꿈인가! 오늘도 스승에게 배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목표가 더욱 분명해졌다. 노인이 되어서 나는 공동체의 비전 (공짜로 즐기는 세상)과 자기 존재의 근원 (짠돌이로 사는 이유)을 위해 일하리라... ^^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20~30대들에게 고미숙 선생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지금 20~30대가 너무 안됐어요. 희생양이죠. 갈 데까지 가면 청년 문화가 다시 살아나겠지만 그 시간 동안에는 각자 앞가림을 해야 돼요. 왜? 정치경제가 그렇게 해주지 못해요. 다 망가진 다음에나 손을 대는 게 문명이지 예견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지금 세대는 다 희생양이에요. 다음 세대는 다를 거예요. 그래서 저는 미래에 대해서 낙관도 절망도 하지 않습니다. 갈 데까지 가면 다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우주는 몇만 년 동안 그렇게 했어요. 문제는 그 과도기를 거치는 지금의 청년들이 희생양이라는 거죠. 20~30대 후배 여러분들, 부디 각자도생하세요. 시대는 엄청난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는 절대로 꿈쩍 안 합니다. 우리가 경제구조를 바꾸겠습니까? 대중도 동의하지 않을 거고요. 자기 눈앞에서 도시 하나가 없어지는 걸 봐야 그때부터 움직입니다. 일본도 아직 저런 상태인걸요.

Q: 자본주의 문화 때문에 망가진 이 시대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요?

본인이 바꾸면 됩니다. 내가 바꾸는 만큼 우주는 바뀌어요. 그걸 안 믿기 때문에 집단 차원에서 뭔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대가 바뀌면 뭔가 하겠다고 하면서 정치인들이 바꿔주기를 기다리거든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바꾸는 만큼 이 우주는 전혀 다른 양상을 펼칩니다. 한번 도전해 보세요.'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 라는 부제를 달고 전문가들이 릴레이 특강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심리학자 김태형 선생의 강의를 보면, 노인이 될 때, 경계해야할 점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권위주의적으로 늙어가는 사람들은 지배층,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굴한 반면 가족에게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입니다. 한마디로 꼰대 스타일이 되는 거에요. (중략)

순종적 삶에서 온 비겁함이나 복종심은 '비이성적'인 보수주의적 성향을 갖게 만듭니다. 비겁한 사람들은 불의에 저항하는 모습에 어떤 태도를 취할까요? "나는 비겁하지만 너희는 싸워라, 뒤에서 박수쳐줄게." 이러지 않습니다. 싸잡아서 같이 욕해요. 왜? 자기의 비겁함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이거든요. (중략) 자기가 못하는 건 남도 못하게 하는 게 인간 심리입니다. 내가 비겁하면 저항하는 것 자체가 무섭고 저항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무서워요. 그래서 뜯어말리죠. 심지어 화를 내고요.'

(같은 책 113쪽)

 

여고생이 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피켓을 발로 걷어차는 중년 아저씨의 사진이 페이스북에 뜬 적이 있다. '애들이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 거리에 나왔을까는 생각하지 못하고.... 참 나쁜 사람이네...' 하고 혀를 찼다. 김태형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다. 자신이 아프니까 젊은 세대, 청년 세대의 고통을 들여다보기도 힘든 거다. 세월호 때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는 것, 이게 우리 시대 가장 큰 마음의 병인 것 같다.

책에는 닮고 싶은 노인의 모습도 나온다. 70대 후반의 노교수이자 물리학자인 장회익 선생이다. 노년에도 열심히 공부를 계속하고 왕성한 집필과 강연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유명한 공자님 말씀이 있지요. '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 지혜의 정수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여기다가 하나 더 붙였어요. 아침에 도를 깨닫고 저녁에 죽어 버리면 다른 사람한테 줄 게 없잖아요. 그래서 낮에 이걸 적어놓아야 해요. 낮에 적어 놓고 돌아가셔야지. (좌중 웃음) 우리는 전해줘야 해요. 내가 어렵게 얻었으면 또 전해주어서 우리의 문명 안에 지혜를 쌓아나가야죠.'

(위의 책 144쪽)

그렇구나. 적어야 하는구나. 자신이 깨달은 게 있다면 어떻게든 나눠야 하는 구나. 부지런히 책을 읽고 스승의 말씀을 필사적으로 필사해야겠다.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이신 남경아 선생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서울시에 인생이모작지원단이 있구나. 역시! ^^)

 

'호서대학교 설립자이신 강석규 선생님의 '어느 95세 노인의 수기'를 읽어보신 분 계세요? 2015년 9월, 103세 나이로 돌아가셨어요. 그 분이 95세 때 수기를 하나 쓰셨는데요. 65세 때까지 열심히 일하다 은퇴하고, 이후 30년 동안 퇴직 후 남은 인생은 덤이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했는데 따지고 보니 90세 기준으로 30년이라는 건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기였다는 거죠. 퇴직 후에 30년 더 살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안 살았을 거라고 후회를 하셨어요. 그래서 95세가 된 생일날, 지금부터 어학공부를 시작해서 105세 되는 생일날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글을 남기셨고, 그게 몇 년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103세로 돌아가셨서요. 8년 동안 영어공부 열심히 하신 거죠.'

 

인생 이모작, 하면 다들 어떻게 일자리를 다시 구할까 고민하는데, 그보다는 어떻게 다시 공부할까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공부가 먼저고 일은 나중이다. 

작년 가을 남미 배낭여행 갔을 때, 이구아수 폭포에서 한국인 단체 여행자들을 만났다. 남미 패키지 여행객은 30~40대보다 50~60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무래도 거리가 워낙 머니까 직장인들이 가기에는 부담이 큰 탓일게다. 패키지 여행자들은 같은 나이 또래인 내가 혼자 배낭여행 온 걸 보면 무척 부러워한다. '배낭여행, 참 좋지. 그런데 저 양반은 영어를 잘 하나보지, 우리처럼 영어가 안 되는 사람은 그냥 패키지가 최고여.' 하고 지나가더라.

속으로 나는 '아직 안 늦었는데.....' 한다. 기나긴 노년을 즐길 수 있는 우리 세대는 분명 복받은 세대다. 은퇴하고 수십년 동안, 어려서 못해본 것 다 해 볼 수 있는 세대다. 노년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취미 활동이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젊어서는 일하느라 바빠서, 가족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어서 못한 외국어 공부, 나이 들어 취미 삼아 해보는 건 어떨까?

노인이 되어 가장 서운한 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란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이걸 남들이 몰라주니 화가 치미는 게 노인의 홧병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키운다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날 일이 없다. 자긍심을 기르는 최고의 길이 바로,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일이다. ^^ 

나이듦 수업으로도, 외국어 공부가 참 좋다고 전해라~

공짜 영어 스쿨, 치매 예방에도 참 좋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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