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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그렇다면, 참 좋겠다

by 김민식pd 2016. 2. 16.

2016- 31 그렇다면, 참 좋겠다 (강다솜 / 인사이트 K)

 

MBC 후배 강다솜 아나운서가 책을 냈다. 수필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고, 참 예쁜 책이다.

 

'기다려줄게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의 수다 파티.

워낙 오랜만에 모여서 다들 어떻게 살았는지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한 친구가 우물쭈물 고백한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꽤 오랫동안 솔로였던 친구라 반응은 폭발적이다.

"어머 어머 어머 어때 어때 어때?"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지고,

초롱초롱한 눈빛 발사까지 이어지자

친구는 부끄러운지 조심조심 말을 꺼낸다.

 

"음, 키도 크고 비율도 좋은데 많이 말랐어.

그리고 지금 군인이라서, 머리가 엄청 짧아.

멋을 전혀 못 내서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어.

그런데 살 좀찌고 머리 기르고 꾸미면 

조금은 훈남이 될 것 같아.

사실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겠어"

 

부끄럽지만 행복해 보이는 묘한 미소.

 

남자친구 자랑인 건지 아닌 건지,

좋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아니 그래서 훈남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헷갈리는 찰나, 한 친구가 말한다.

 

"야, 너 진짜 사랑하나 보다?!"

 

"으응?"

얼떨떨한 표정.

 

"왜에~ 이미 몸 좋고 머리 길고 잘 꾸미는 남자를 만나면

간단한 것을 뭘 굳이 다 기다려줘야 하는 남자를 만나냐?

그걸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 자체가 사랑인 거야.

모르긴 뭘 몰라~~ 아이고 사랑에 빠졌구먼?"

 

복숭아 빛으로 물드는 친구의 표정.

영락없이 감출 수 없는 사랑의 기운이 퍼져 나온다.

 

상대가 조금 미숙하고 부족해도

그걸 채워나갈 때까지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것.

그게 사랑의 또 다른 정의일 수도 있겠구나.

친구의 미소를 보며

나도 이 담에 누군가를 만나면

'좀 기다려줘야지'라고 다짐해본다.

 

(위의 책 64~ 66쪽)

 

이 글을 읽은 순간 아내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날 때부터 얼굴은 꽝이었고, 세월이 흘러도 멋있어지기는 커녕 배 나오고 주름만 느는데, 미안해서 이거 어쩌나? 순간 머리를 치고 가는 깨달음. "우리 마님이야말로 진짜 사랑에 빠진 거였구나!" ㅋㅋㅋㅋㅋㅋ

(오늘 저녁에, 심하게 맞을 것 같다...)

 

'~이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게' 진짜 사랑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20대의 사랑을 응원한다.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는, 그 나이에 하는 사랑이야말로 진짜니까. 그럼에도 지금 20대에게 사랑은 쉽지 않다. 이유는?

 

'왜죠?

 

4년제 대학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도 했는데,

이 내 몸 누일 깨끗한 방 한 칸,

내 돈으로 마련 못해요.

원래 집은 은행이 해주는 거래요.

왜죠?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라는데

요즘은 마이너스 통장의 최종 완성이에요.

신랑 신부 입장하는 순간, 빚더미에 앉아요.

왜죠?

 

자격증 취득하고 어학연수 다녀오고

남들 있는 스펙은 다 쌓은 것 같은데

자꾸 서류 탈락이래요.

내가 뭐가 부족해서 탈락인 건지 아무도 몰라요.

왜죠?

 

초등학생 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고, 그게 꿈이라더니

고3이 되니 대학부터 가고 얘기하재요.

대학에 가고 나선 공무원 시험 준비하래요.

왜죠?

 

학생일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른이 되니까

다시 학생이고 싶어져요.

왜죠?

 

분명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고 배웠는데

가는 말이 고우니 호구로 봐요

왜죠?

 

왜죠?

라고, 묻고 싶은 많은 상황들,

 

왜죠?'

 

(같은 책 130쪽)

 

추상 같이 묻는 이 질문에, 나도 감히 대답을 못하겠다. 강다솜 아나운서는 책을 써보라는 제의에 "어휴 제가 무슨 책이에요"하고 손사래를 쳤단다. 더 많은 후배들이 책을 쓰고, 더 많이 물었으면 좋겠다. 나이 든 4,50대들만이 책을 쓰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나이든 어른들이 독점한다. 청춘들이 책을 써서 직접 물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은 왜 그런 거죠?' 그래야 어른들이 더 부끄러울 것 같다.

 

몇년 전 회사에서 조직 활성화 연수를 갔다.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며칠간 강화도 펜션에서 묵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연수에서 강다솜 아나운서를 처음 봤는데, 보고 나서, 느낌은.... '뭐 이런 사기 캐릭터가 다 있어?' 였다. 다녀와서 아내에게 얘기했다. 

"당신도 회사에서 어린 후배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하고는 클라스가 아주 다르다는 느낌?"

"왜?"

"아니, 회사 후배가 하나 있는데, 이 친구가 외고 나와서 고려대 법대 갔다가 법학에 흥미를 못 느껴서 방황을 했대. 그러다 마침 라디오를 좋아해서 MBC 아나운서로 지원했다는 거야. 얘기해보니까 예쁘고, 똑똑하고, 생각도 깊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진짜 대단해. 그런데 밥 먹을 때마다 폰카로 뭔가 자꾸 찍는거야. 그걸 보고, 그래도 아직 어리네... 했는데, 나중에 보니 연수 때 짬짬이 찍은 폰카로 뮤직 비디오를 만든 거야. 내가 명색이 피디인데, 나보다 영상 감각이 더 좋더라고. 아니, 요즘 어린 친구들은 뭐든지 그렇게 다 잘 하나?"

아내가 강다솜 아나운서의 프로필을 보더니, 하는 말.

"우리 민지가 이렇게 크면 참 좋겠다." 

 

강다솜 아나운서는 여행도 많이 다닌다. 책 뒤에 그 얘기가 나온다.

 

'"여행을 너무 빽빽하게 계획해서 떠나지 마요.

여행에 가서 맞닥뜨리는 미지의 이야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개.

모두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들 아닐까요?"

 

언뜻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신입 아나운서 시절, 선배는

 

"인터뷰를 할 때는 상대에 대해 70퍼센트만 공부하고 가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30퍼센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그 30퍼센트가 사람들이

진짜 궁금해 하는 핵심이다."

 

채우고 가지 않는 30퍼센트.

난 어떻게 채우게 될까. 그 빈자리에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

일상에선 돌아볼 틈이 없던 나의 상처들을 직면하는,

혼자만의 여행.

 

외로워도 괜찮을까. 좀 덜 채우고 떠나도 괜찮을까.

두려움과 불안감, 설렘으로 범벅된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같은 책 251쪽)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다는 것.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는 것. 부족한 30퍼센트를 각오하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걸 깨달아야 여행도, 인생도 즐길 수 있다.

 

다독 비결 31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같이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다. 술 대신, 나는 다른 사람이 쓴 책을 꼭 읽는다. 같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의 삶, 그의 생각에 대해 알 수 있다. 술자리에서 뭔가 배우기는 쉽지 않은데, 책을 읽으면 나보다 어린 후배에게도 배운다. 어떤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를 통해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 이것도 다독의 이유다.

 

책을 읽다 문득 중학교 다니는 큰 딸 민지에게 물어봤다.

"SWAG가 뭐야? (책에 나온다.)"

그랬더니 민지가.

"아빠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 근데, 왜?"

하기에 책을 보여줬다.

 

(참고로 이 책 띠지는 절대 안 버릴 생각이다. 부럽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책 띠지에 사진 싣는 필자는 못 될 것 같다... ^^)

 

"이 예쁜 언니가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거든? 그런데 심지어 글도 잘 쓴다?"

그랬더니, 민지가, 

"아빠, 다 읽으면 나 줘. 나도 좀 읽게."

그런다.

앗싸!!! 내가 읽는 책에 민지가 관심을 보인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이 책을 읽고 민지가 강다솜 아나운서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 그렇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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