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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자기를 속이는 것은 하늘을 속이는 것이다

by 김민식pd 2014. 7. 11.

 요즘 연일 '짠돌이 독서일기'에 박제가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북학의나 정유각집의 글은 시류와도 맞지 아니하고 좀 뜬금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블로그에 조금씩 올리는 이유는, 이것이 요즘 제가 하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박제가는 조선 영조 시절 서자로 태어나 어려서 글을 읽고 시 짓는 일을 즐겼으나 서얼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늘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박제가 나이 10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첩이었던 어머니는 어린 박제가를 데리고 집을 나와 품팔이를 이어가며 생계를 꾸립니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박제가는 밤을 새어 책을 읽습니다. 서얼의 신분이라 관직에 나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취업이 어려운 요즘, 많은 이들이 '이렇게 공부하고도 세상에 나아가 쓰임새를 얻지 못하면 어떡하나?'하고 고민합니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은 서얼이지만 어려서부터 날밤을 새며 글공부를 합니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에도 나오듯이, 그들에게 공부란 세상의 쓰임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수양의 한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들은 심지어 귀양을 가서도 공부를 하고 저술 활동을 쉬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의 위대한 저작들은 대부분 귀양간 선비들이 쓴 책들입니다. 쓰일 일이 없음을 알면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꺾지 못하는 것이지요. 훗날 정조라는 성군을 만나 서얼허통 정책으로 조선 후기 문인들의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된 것은 분명 이들에게 크나큰 행운입니다. 출세나 속세의 성공과 관계없이 그들이 공부하는 자세는 참 배울만 하다고 느낍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나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박제가의 '정유각집'에서 추린 마지막 글을 올립니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에 대한 이야기, '책만 보는 바보'에 잘 나와 있습니다. 10대 청소년인 아이와 함께 읽기 참 좋은 책입니다. 초등학교 권장 도서에 자주 오르는 책이지요.)

 

정유각집 ()

 

15. 학문은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격물치지보다 큰 것이 없다.

 

대책 對策

 

49

 

신은 대답하여 아뢰나이다.

신이 듣건대, 글자()란 도와 함께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도는 형체가 없으니 글자로써 보이게 하였고, 도는 일정하게 머무는 장소가 없으니 글자로써 인도하였으며, 도는 언어가 없으니 글자로써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물을 떠난 고기가 없듯, 글자를 떠난 도는 없는 법입니다. 하늘에 있어 해와 별이 환히 빛나고 계절이 바뀌며 구름과 노을이 아름다운 모습, 땅에 있어 강물은 흐르고 산악은 치솟았으며 초목이 피고 지며 벌레와 물고기가 변화하는 것, 사람에 있어 신체의 온갖 동작과 의복과 음식, 말하고 움직이는 일체의 모습이 글자 아닌 것이 없습니다.

(중략)

학문은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격물치지보다 큰 것이 없고, 격물치지의 요체는 또 문자에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성주의 학문은 고명하시어 서도(書道)의 근원을 통찰하셨으니, 신이 어찌 감히 한마디 말을 덧붙이겠습니까? 다만 신 등은 이미 전하께서 찬정하신 운서 교정의 명을 받들었으매, 청컨대 운자(韻字)의 한 뜻으로 우러러 아뢰고자 합니다. 글자에는 반드시 뜻이 있고, 또한 반드시 소리가 있습니다. ()가 경전과 통하는 것은 운()이 음악과 통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글자의 뜻이 닦이면 경술이 바르게 되고, 운학(韻學)이 밝아지면 옛 음악이 일어납니다. 바라건대 전하겠서는 힘쓰시고 또 힘쓰시옵소서! 신이 삼가 대답하나이다.

 

16. 벽이 없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다.

 

백화보 서문 百花譜序

 

146

 

벽이 없는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이란 글자는 ’(: 질병)’(: 편벽됨)을 합한 것이니, 병 가운데 지나치게 치우친 것이다. 그러나 홀로 자기만의 세계를 개척하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것은 종종 벽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가 있다.

김군은 화원(花園)을 찾아 서둘러 달려가, 눈은 꽃만 주목하여 온종일 깜빡이지도 않고 오도카니 그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눕는다. 손님과 주인이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으니, 이를 보는 자는 반드시 그를 미쳤거나 멍청이라고 생각하여 웃고 손가락질하며 욕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비웃는 자의 웃음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비웃는 생각은 이미 스러지고 만다. 김군의 마음은 만물을 스승 삼고, 그의 기예는 천고에 짝이 없다. 그가 그린 <백화보>에는 <병사> (甁史), 즉 꽃병의 역사에 그 공훈이 기록되고 향기의 나라에서 식읍(食邑)을 받기에 충분하니, 벽의 보람이 실로 속임이 없다 하겠다.

아아! 저 벌벌 떨고 비실비실하며 천하의 큰 일을 그르치면서 스스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병통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이 화첩을 보고 경계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17. 고고(孤高)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낸다.

 

소전 小傳

 

206

 

그는 조선이 개국한 지 384년째 되던 해, 압록강 동편으로 1천여 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조상은 신라에서 나왔고, 밀양이 그 관향이다.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취해 제가(齊家)라 이름 짓고, <이소>(離騷)에 들어 있는 노래 <초사> (楚辭)에 의탁하여 호를 초정(楚亭)이라 하였다.

그의 사람됨은 이러하다. 물소 이마에 칼 같은 눈썹, 초록빛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孤高)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내고, 권세 있는 자를 보면 일부러 더 멀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맞는 경우가 드물어 언제나 가난했다. 어려서는 문장가의 글을 배우더니, 장성해서는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제도할 학문을 좋아하였다. 몇 달씩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고명한 일에만 마음을 두고 세상일에는 무심하였으며, 사물의 명리(名理)를 종합하고 깊고 아득한 세계에 침잠하였다. 백세 이전의 사람들과 흉금을 트고, 그 뜻은 만 리를 넘어 날아다녔다. 구름과 안개의 기이한 자태를 관찰하고, 온갖 새의 신기한 소리에 귀 기울였다. 아득히 먼 산과 시내, 해와 달과 별자리, 지극히 작은 풀과 나무, 벌레와 물고기, 서리와 이슬, 날마다 변화하지만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하는 것들을 자옥하게 마음속에서 깨달으니, 말로는 그 정상(情狀)을 다 표현할 수가 없고, 입으로는 그 맛을 충분히 담아낼 수가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혼자만 알 뿐 다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여겼다. 아아! 형체만 남기고 가 버리는 것은 정신이요, 뼈는 썩어도 남는 것은 마음이다. 이 말의 뜻을 아는 자는 생사와 성명의 밖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 ()한다.

18. 자기를 속이는 것은 하늘을 속이는 것이다.

 

답하다

 

7

 

383

 

나쁜 짓을 행하여 남들에게 발각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천하 후세 사람을 속인다 하더라도 자기를 속였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자기를 속이는 것은 하늘을 속이는 것이다. 하늘은 아득히 먼 것이 아니니 자기의 마음이 곧 하늘인 것이다. 양진(楊震)이 말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는 사지(四知)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19. 무릇 생각이란 사물에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22

 

390

 

무릇 생각이란 사물에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 있고, 사물을 뛰어넘어 지나치는 것이 있는데, 훈고 또한 그러하다. 마음에서 곧바로 이해되는 것이 있고, 남의 견해를 가져다 뒤집는 것도 있다. 주자의 견해에는 반드시 옛사람의 주석이 충분치 않다고 뒤집는 것도 있다. 후인들은 주자의 견해로 말미암아 또 초월하여 지나쳐 버리니, 도리어 옛사람의 주석과 합치되지 않는 줄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다툼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논쟁을 들은 자 또한 옛것을 옳다 하기도 하고 지금 것을 옳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다툼을 듣는 자가 또 자기 견해를 내게 된다. 그런 까닭에 경전을 논하는 자는 주장이 분명치 않은 것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당파의 마음이 없어지지 않음을 근심한다. 동쪽이 옳다 서쪽이 옳다 하는 자들이야 논할 것도 없다. 거기에 크게 관계된 자들 또한 반드시 겸손하게 변론하여 지극히 마땅한 학설로 몰아가는 데 힘써 지당한 데로 돌아가야 하니, 조금이라도 스스로 잘난 체하는 기색이 있으면 볼 게 전혀 없다. 그러므로 서하 (西河) 모기령 (毛奇齡) 같은 사람은 밝게 가리는 판단력은 있지만 도타운 행실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20. 골육의 마음이란 외물로 가감(加減)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풍수정기>의 뒤에 쓰다 書風樹亭記後

 

448

 

그 어버이가 나면서부터 부귀와 복록을 갖추었고 자손의 영화와 세간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함이 없는데다 그 자신도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린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래도 그 자식 된 자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여 구슬프게 그리워함이 남만 못하지 않은 것은 사사로운 욕심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하늘의 이치다. 또 어떤 사람이 있어, 그 어버이가 나면서부터 빈천 속에서 굶주리며 이리저리 떠돌다가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떴다고 하자. 그러면 자식 된 자가 구슬피 그리워하는 것이 남보다 더함이 있는 것 또한 하늘의 이치인가? 그렇지 않다. 사사로운 마음이다.

대저 골육의 마음이란 외물로 가감(加減)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야흐로 돌아가실 즈음에는 여한이 없을 수 없으니, 살았을 적에 뜻을 얻고 못 얻고는 논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 문제에 있어 사사로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저들도 어버이가 된 것은 똑같은데, 어떤 사람은 부귀하여 오래 살고, 어떤 사람은 빈천 속에 일찍 죽었다면 그 사이에 경중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진실로 그렇구나! 내가 한스러움이 남고 돌이켜 안타까운 것이 남보다 더함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사사로움이 있어서이구나.

하지만 그릇을 씻다가 내 어머님을 생각하면, 아침저녁 끼니도 잇지 못할 양식으로 음식을 준비하시던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도 그렇겠는가? 횃대를 어루만지며 내 어머님을 생각하노라면, 못 쓰게 된 솜으로 늘 추위와 바람을 막아 줄 옷을 다 지어 주시던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도 나와 같겠는가? 등불을 걸다가 내 어머님을 떠올려 보면, 닭이 울 때까지 잠 못 이루시며 무릎을 굽혀 삯바느질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이런 경험이 있겠는가?

상자를 열다가 어머님의 편지를 얻어 자식이 먼 데 나가 노니는 데 대한 마음을 술회하시고 헤어져 있는 괴로움을 말씀하신 대목을 보면 넋이 녹고 뼈가 저미지 않을 수 없어, 갑자기 차라리 몰랐으면 싶어지기까지 한다. 손을 꼽아 내 나이와 어머님의 연세를 헤아려 보아, 돌아가신 어머님의 연세는 겨울 48세이시고 나는 24세임을 알았을 때, 구슬피 머뭇거리며 소리를 놓아 길게 호곡하면서 눈물을 비 오듯 흘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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