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길을 꿈꾸는 이가 많은데, 배우로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배우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아무때나 일하는 게 아니다. 캐스팅 제의가 와야 일을 할 수 있다. 많은 신인 배우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다 지쳐간다. 그 기다림의 순간을 잘 버텨야 진짜 배우가 된다. 나는 오디션을 보거나 배우를 만나면, 반드시 물어본다. 일이 없을 때 그 무료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예전에 주말연속극 '글로리아'를 연출할 때 신인 여배우로 만난 친구 중 하연주라는 이가 있다. 한번은 그 친구를 만나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더니,
"대학교 청강을 다녀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잉? 대학교 청강이라니, 어떻게?"
그는 촬영이 없을 때 서울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개설된 강의 목록을 찾아보고, 그중 끌리는 과목이 있으면 교수님께 이메일로 청강여부를 문의하거나 학과 사무실에 가서 청강 신청을 한단다. 그렇게 해서 들은 과목이 꽤 된다니, 나로서는 놀랄 일이었다.
"야, 서울대 가서 공부하기가 그렇게 쉬웠단 말이야?"
(생각해보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학교이니 그정도 대국민 서비스는 있어야...^^)
(출처 : 하연주 소속사 프로필용 사진)
여배우가 빈 시간에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청강한다는 얘기에 놀랐지만, 더 놀란 건 그가 공부하는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모의 아가씨가 청강생으로 나타났는데 아무도 들이대는 이가 없었다니, 이건 여신급 미모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
하연주의 얘기를 듣고 나도 요즘은 공짜 청강을 즐긴다. (나야, 공짜로 무엇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아주 환장을 하는 사람이니까.)
예전에 물리학자 이종필 박사님이라는 분을 소개한 적이 있다.
2013/01/22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멋진 물리학자 한 분, 소개합니다!
요즘 이종필 박사님이 고려대 공학 대학원에서 진행하는 과학 강의가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http://open.korea.ac.kr/colleges/colleges!detail.action?subjectNo=1264&user_id=949&page=4
'현대문명과 물리학'이라는 강좌인데, 정말 재미있다. 물론 수준이 꽤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수학과 물리' 2번째 시간엔 강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완전 헤매었다. 그런데 청강이 좋은게 뭔가?
과제가 없고, 시험이 없고, 발표가 없고, 무엇보다 출석 체크가 없다.
듣다가 정말 어려운 대목은 그냥 슬쩍 넘겨도 된다. 몰라도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때로는 그냥 서커스 묘기 구경하듯이 넘어가기도 한다.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빅뱅 이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교재 없이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하는 강의다. 대중과의 소통에 오랜 세월 공들여온 교수님 (혹은 고수님?) 답게 강의만 보고 있어도, 글쓰기나 발표 실력이 쑥쑥 느는 기분이다. 무림 고수의 화려한 초식, 구경만 해도 내공의 몇갑자 상승한다! 매시간 나오는 추천 도서 목록도 보고 있으면 장난이 아니다. 언젠가는 이 강의를 재수강하면서 추천도서 전권 읽기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다.
배우만 기다리는 직업이 아니다. 연출도 기다리는 사람이다. 작가의 대본을, 촬영팀의 세팅을, 배우의 스탠바이를, 시청자의 반응을 기다리는 직업이다. 무엇보다 다음 연출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기다림을 즐기지 못하면 일을 즐길 수 없다. "레디, 액션!"을 외치는 멋진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이다. 그 순간이 있기까지는 오랜 기다림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최고의 취미는 공부다. 내가 속한 세상, 이 우주의 본질을 공부하는데 있어 물리학만한 공부가 없는 것 같다.
주말을 맞아 올리는 공짜 공부 사이트, 오늘은 이종필 박사의 물리학 강연을 올린다.
양자이론 공부와 함께,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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