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영어 공부할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단권화 작업이다. 이는 고시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배운 방법이다. 영어를 고시공부하듯이 하고있다고 했더니 누가 그러더라. '그럼 너도 단권화 작업 하니?'
단권화 작업이란 딱 한권의 책을 골라 그 책만 집중적으로 판다는 뜻이다. 사법고시생들의 경우, 형법이든 민법이든 한 권에 공부를 집중하여 다른 참고서나 강의에서 배운 지식을 그 한 권의 여백에 기록한단다. 그래서 사법 고시를 앞둔 마지막 날에는 그 책만 들여다보면 모든 지식이 체계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한단다.
내게 있어 영어 단권화 작업도 비슷했다. 여러권의 책을 공부하다보면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설렁 새 책으로 넘기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새해에 새롭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새 책이 기분이 더 좋으니까. 책장에 책은 늘어가는데 실력은 별로 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한 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러권을 읽기보다 한 권을 여러번 읽었다. 페이지를 펼쳐 첫 글귀를 읽으면 그 장의 내용이 스스륵 기억에 떠오를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책 표지 뒷장에다는 언제 공부를 시작해서 언제 끝냈는지 적어뒀다. 그렇게 한 권을 반복해서 공부하면 갈수록 공부하는 기간이 짧아진다. 처음에는 몇달에 걸쳐 보았는데 열번째에 이르면 다 아는 내용이고 다 기억나기에 소설 읽듯이 눈으로 훓으며 며칠 안에 끝내도 학습 내용이 다 떠오른다.
책을 보면 다른 색깔의 펜으로 첨언을 해둔게 보인다. 처음 공부할 때는 모르는 단어를 해설하느라 빨간 색으로 주석을 달았고, 두번째 공부할 때는 중요한 표현에 줄을 치며 공부했고, 세번째 공부할 때는 관련 상용구를 적느라 파란 글씨로 첨언을 했다.
사실 단권화 작업에 열중한 건 대학 시절인데 그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건 졸업후였다. 92년에 졸업한 나는 이후에도 몇차례 영어 시험을 치렀다. 첫번째가 94년에 통역대학원 시험 볼때고, 두번째가 95년에 MBC 입사 시험 볼 때였다. 영어 공부 끝내고 몇년이 지난 후 시험을 본 탓에 긴장이 되었지만 그때마다 단권화 작업을 해둔 책을 펼쳐들었다. 마지막에 MBC 필기 시험을 앞두고 읽었을 때는 하루에 다 떼었다. 그러고나니 예전에 공부한 내용이 다시 머리속에 체계적으로 자리가 잡히고 다시 필기시험에 대한 자신감이 들더라.
영어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자니 약장수 같다. 작년 한 해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탈모가 심하다. 그래서 탈모약을 뒤져봤는데 정말 처방이 다양하더라. 온갖 비누, 샴푸, 마사지, 별의 별개 다 있는데, 책에서 본 의사 양반 말씀. "약이 많다는 건 즉효약이 아직 안나왔다는 뜻입니다. 확실하게 치료되는 약이 하나가 나오면 나머지는 다 사라지는 게 정상이거든요."
영어 공부에도 별의 별 처방이 다 있다. 내가 보기에 즉효약은 이 악물고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는데, 사람들에게 그 약은 별로 인기가 없다. 그래서 다들 달고 맛있는 약을 찾아 헤매고 그래서 다양한 학원이나 영어 교재가 팔리는 거다.
영어 단권화 작업, 새해에 영어를 공부하는 분들께 꼭 권하고 싶다. 어떤 지식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숱한 반복 밖에 없다. 쉽게 공부하는 법을 광고하는 책이나 학원이 많은데 속지 마시라.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렵게 공들여 공부하는 방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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