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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에어로빅 배우는 남자

by 김민식pd 2012. 11. 7.

요즘 MBC 로비에 앉아 삭발농성하고 있으면 파랗게 깎은 머리가 안쓰러운지 후배들이 눈도 못 마주치고 지나간다.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게까지 마음 쓸 필요는 없다. 난 사실 살면서 별로 창피한 건 모르고 사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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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춤에 빠져서 혼자서 나이트클럽에 춤추러 다녔다. 혼자 춤추러 다니기 뻘쭘하지 않냐고? 옛날에 신촌 로타리에 '우산속'이라는 나이트가 있었는데, 거기 스테이지에는 한 쪽 벽면이 유리였다. 거기서 혼자 거울보며 춤사위를 연습했다.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냐고? 당근 쳐다보지, 웬 미친 놈인가해서... 

 

몇년전에는 춤이 미친듯이 추고 싶은데, 결혼한 후라 나이트를 가기도 그렇고, (일단 요즘 나이트는 너무 비싸서 싫다. 그리고 마치 짝짓기 장터처럼 변한 것도 싫고... 예전에는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서 콜라 한 잔 마시고 밤새 놀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 넘치는 춤에 대한 열정을 어쩌면 좋은가 하고 고민하다... 동네 헬스클럽에 운동하러 갔다가 에어로빅 교실을 구경하게 되었다. 2,30대 여성들이 신나는 댄스 가요에 맞추어 에어로빅을 추고 있었다. '와, 재밌겠다.' 데스크에 가서 물어봤다. 에어로빅 신청할 수 있냐고. "사모님이 하시게요?" "아뇨, 제가 하려구요." 그때 접수직원의 표정.....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괜찮아요. 강사님과 다른 학생분들만 좋다면야."

 

다음날부터 나는 에어로빅을 배웠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 거북이의 노래 '빙고' '왜 이래' 'Come On' 등에 맞춰 신나게 흔들어대는 웬 중년 아저씨의 모습에 헬스크럽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에어로빅은 즐거웠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쓰기보다 자신의 취향에 솔직한 것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하며 오랜 세월 괴롭게 살았다. 남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하지만 어느날 깨달았다. 왕따를 하는 건 저들의 자유지만, 그걸로 괴로움을 겪는 건 나의 선택이라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괴로울 일은 없다. 그걸 깨달은 후, 난 나의 선택과 나의 취향만을 존중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대학 4년 동안 전공은 내팽개치고 영어 소설 읽고 영화나 보러 다녔다. 남들의 시선 따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덕후로서의 삶이 즐거워졌다. 지난 한 주 단식 농성을 하며 괴로웠다. "즐겁게 살자는 인생, 왜 괴로움을 자처하고 있지?" 그래서 주말에 쉬면서 영화 '풋루즈'를 봤다. 영화를 틀어놓고 혼자 마루에서 춤을 췄다. 다시 삶이 즐거워졌다. 누가 봤다면, '땡중이 미친건가?'했겠지. 

 

누가 뭐라하든 춤을 추고 싶을 땐 춤을 춰야지. 미친듯이.

즐기고 싶을 때 즐기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2011년 판 영화 풋루즈, 리메이크지만 원작의 신나는 감흥은 아직 그대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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