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과거의 나를 만나는 해운대 걷기 여행

by 김민식pd 2025. 5. 29.

지난 4월 15일에 김해도서관 강연이 있었어요. 오전 시간에 지방 강연이 잡히면 저는 전날 내려가는 게 마음이 편해요. 당일날 시간 촉박하게 움직이다가 늦으면 낭패니까요. 전날 해운대에 숙소를 잡고 내려갑니다. 점심 무렵에 해운대역에 도착하는데요. 아직 숙소 체크인 전이니 가방은 락커에 넣어두고 걷기 시작합니다.

네이버 지도에서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미포정거장'을 찾아갑니다. 물론 저는 지도를 안 보고도 찾아가요. 늘 가는 곳이니까. 블루라인 따라난 바닷가 산책길을 걸어 송정해수욕장까지 걷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않는 데크 산책로를 이용하는데요. 한 팀이 가다가 "여긴 바다로 가는 길인데?" 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아닌데. 계속 가면 다시 메인 길과 이어지는데.'라고 생각하지만, 말은 않습니다. 걸음수를 줄이려는 분인데, 괜한 참견으로 상대를 불쾌하게 할 이유는 없지요. 자신이 틀렸다는 걸 지적받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다만 누가 제게 잘못을 지적해주시면, 언제나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래야 남들이 편하게 나의 실수를 교정해줄 수 있고요. 그 덕분에 나는 성장하는 사람이 됩니다. 다만 누가 묻지 않았을 때는 참견하지 않으려고요. 

여행을 떠났을 때, 동행이 최단 경로를 선호하면 피곤해집니다. 처음 간 장소에서 어떻게 가장 빠른 경로를 찾을 수 있겠어요. 여기저기 헤매다 얻어걸리는 거지요. 처음 가본 곳에서 최단경로를 찾으려다 보면 의외로 놓치는 풍광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수고를 더 하더라도,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길이 있으면 한번 가봅니다. 그게 인생이에요. 인생을 살면서 수고를 아끼려고 해봤자 남는 거 없어요. 때로는 제대로 된 추억을 남기려면 제대로 살아봐야 합니다. 

1996년에 MBC PD 공채에 지원할 때, 나를 뽑아줄 거라 생각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하지 않고서는 붙여줄지, 안 붙여줄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겁을 먹고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인생에서 수고를 아껴서 남는 건 없습니다.

해운대는 4월 초에 오면 벚꽃이 예쁜데요. 저는 중순에 가서 개화시기는 지났어요. 늦게까지 피어있는 나무가 있어 눈호강을 합니다. 꽃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버텨줘서 고맙다."

관광열차와 나란히 걷다보면...

저 멀리 청사포가 보입니다.

청사포 디딤돌 전망대를 배경으로 또 인증샷~

여기는 갈맷길 2-1구간입니다. 바닷가 산책로를 걷다보면,

길옆으로 예쁜 카페도 많아요.

저는 단골 찻집을 찾아갑니다. 

젬스톤 송정점. 

바다 전망이 끝내주는 곳이지요.

해운대 미포 정거장에서 젬스톤까지 걸어서 1시간 거리입니다. 이제 쉴 기간입니다. 차 한 잔 시켜놓고 네이버 메모장을 열고 음성 인식 기능으로 오면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합니다.

저는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를 여러 차례 걸었어요. 고등학생 때 울산에서 살았는데요.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온 적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창밖으로 멋진 바다가 나타났습니다. 그 순간의 기분을 잊지 못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송정에서 미포까지 가는 열차 구간이었습니다. 아마도 대한민국 열차 풍광중 베스트 10안에 드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제 그 길에 관광 열차가 다닙니다. 바로 블루라인이지요. 해운대 사시는 어머니를 만나러 부산에 올 때마다 이곳에 들릅니다.

길을 걷다 문득 내가 이 아름다운 풍광을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 궁금했어요.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였네요. 고교생 시절, 나는 지금의 내 삶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 시절, 저는 너무너무 우울했거든요. 아버지의 매로부터 도망갈 수도, 아이들의 놀림에서 달아날 수도, 고향을 벗어날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가 '너는 이러이러한 삶을 살 것이다.' 라고 얘기한다면 분명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세상에 별 미친 인간이 다 있네.' 할 겁니다. 지금 저는 어린 시절의 내가 꿈도 꾸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분명 혼자 길을 걷는데 더이상 외롭지가 않습니다. 내 옆에는 무수한 과거의 나, 미래의 나가 함께하고 있어요.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며 웃으며 따라 걷고 있고, 나이 80의 나는 지금의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보며 걷고 있거든요. 영어 공부 이야기나 저축 이야기를 유튜브에 가서 하면, 저더러 왜 그렇게 지독하게 사느냐고 하는 이도 있어요. 20대에는 지독하게 영어 공부를 했고, 30대에 지독하게 돈을 모았어요. 40대에는 지독하게 책을 썼고요. 사람들은 몰라요. 나의 간절함의 깊이를.


제 인생에서 간절함 없이 이루어지는 걸 단 하나도 없었어요. 공부도, 진학도, 취업도 다. 다행입니다. 저는 아직도 간절하거든요.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아요. 매년 한 권씩 책쓰기도 그렇고, 짝수달 해외여행도 그렇고, 홀수달 지역 강의도 그래요. 지금 내가 즐거운 건, 과거 간절했던 내가 있었기 때문이고, 언젠가 내가 행복하다면 오늘의 간절함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해운대로 돌아갈때는 철길 대신 숲길을 걷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샛길로 오릅니다.

달맞이 고개 산책로. 해운대는 바다도 좋고, 숲도 좋아요.

숲을 걷다보면 멀리 바다가 보여요.

그날의 숙소는 해운대 아크블루 호텔, 야놀자앱에서 예약한 도보특가 39000원이고요. 해운대역 도보 5분,
해수욕장 도보 3분, 동백섬 도보 10분 거리입니다. 관광명소 해운대에 이토록 저렴한 싱글룸이 있으니, 역시 여행다니기에는 한국이 최고입니다.

저녁은 '해운대 속씨원한 대구탕'에서 대구탕 한그릇 먹었어요. 국물이 시원하고 끝내주네요. 15000원.

저녁 먹고는 제가 좋아하는 해운대 동백섬 산책로. 코스는 짧지만 아기자기하게 다양한 풍광이 있는곳.

다음날 아침, 강연장소인 김해로 전철타고 갑니다. '돈 워리, 김해피.' ^^

마침 강연하는 곳 근처에 연지공원이 있네요. 

항상 여유있게 일찍 도착해서 근처 산책로를 걷습니다. 

예쁘게 공원을 가꿔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걷기 좋은 길이 있어 참 행복합니다. 

<김해도서관 인문강연> '100세 시대, 소통으로 더 즐겁게 사는 법.'

오늘도 블로그를 통해 저와 소통해주시는 여러분, 고맙습니다.

역시 삶은 하루하루가 다 선물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