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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의 경제 공부

돈, 비겁하게 벌어보자

by 김민식pd 2024. 4. 19.

예능 피디로 일하던 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조연출로 일한 적이 있었어요. 코미디언들과 회의를 하고 촬영을 하고 깨달은 점. ‘아, 배우는 외모나 몸매 같은 신체적 조건이 좋아야 하지만, 코미디언은 머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직업이구나.’ 사람을 웃기는 거 쉽지 않아요. 머리가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디어도 잘 낼 수 있고, 대본도 잘 외울 수 있어요. 특히 수많은 관중을 모시고 녹화를 하는 공개 코미디의 경우, 라이브 공연을 하기에 대사를 외우지 못해 버벅거리면 바로 망합니다. 드라마 촬영은 제한된 녹화 현장에서 몇 번을 반복해서 찍어 가장 좋은 컷을 뽑지만, 코미디는 한 번에 웃겨야 하거든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코미디를 해서 그런 걸까요? 코미디언 중에서는 투자나 사업으로 돈을 벌어 책을 쓴 사람도 많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황현희 작가지요. 일찌감치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투자 고수로 알려진 그가 개그맨이 아닌 투자가로서 최초로, 투자의 황금 원칙을 풀어낸 책이 있어요.

<비겁한 돈> (황현희, 제갈현열 저 | 한빛비즈)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비겁함’과 ‘쉼’입니다. 첫째, 자신의 실력보다 더 많이 벌고 싶은 ‘비겁한’ 마음을 인정할 것. 둘째, 그러기 위해 투자물의 빅사이클을 이해하고 자신의 투자에 ‘쉬는 기간’을 둘 것. 특히 ‘쉼’은 너무나 필수이지만 그동안 누구도 권하지 않고, 지켜지지 않았던 원칙입니다.

세상의 모든 투자물에는 사이클이 있어요. 인간이 투자라는 세계를 창조한 이후로 지금까지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 바로 세상 어디에도 영원히 상승하는 투자물도, 영원히 하락하는 투자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모든 투자물은 일정 수준까지 상승한 뒤에는 다시 하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일정 수준까지 하락한 뒤에는 다시 상승하게 되어 있고요. 

투자물의 상승과 하락은 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결과물입니다. 더 오르리라는 인간의 기대가 들어갔을 때 가격은 상승하고, 이 정도면 너무 많이 올랐다는 불안이 들어가면 하락합니다. 기대와 불안은 인간의 욕망이자 본능입니다. 이게 사라지지 않는 한 시장은 항상 상승장과 하락장을 오갈 수밖에 없지요.

여기서 더 상승할지 아니면 정체기를 맞이하고 하락기로 향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거든요. 하지만 분명히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좋은 시기라고 단정할 근거는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걸 깨닫고 나면 우리가 택해야 할 태도는 하나입니다. 더 비겁해지는 겁니다.

신문에 주식 대박, 부동산 급등 같은 뉴스가 뜨면 갑자기 빚을 끌어모아 그 시장에 뛰어드는 용감한 사람도 있어요. 누군가의 환호성이 갑자기 우리의 귀에 들릴 때는 ‘좋은 장이 왔구나!’ 할 게 아니라, ‘이제 좋은 때는 지나갔구나’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건 조급함입니다. ‘더 늦기 전에 들어가서 나도 남들처럼 돈을 벌어야겠어!’ 이런 생각은 위험합니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아무 예측도 하지 않고 부동산을 샀는데 상승장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어요. 주변에 부동산, 특히 아파트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부동산의 특성상 한번 구입하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애초에 부동산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주거의 영역입니다. 어떻게든 집 한 채를 장만하고 나면, 빚을 갚으면서 그 위에 살면 되는 것이 부동산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자연스럽게 상승장과도 만나게 되는 거죠.

다시 말해 시작점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서가 아니라, 투자 목적이 없더라도 구매해야 하는 거의 유일한 투자물이자, ‘존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유일한 투자물이 부동산입니다. 부동산 불패라는 말은 이런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언제 자산을 매입할 것인가? 그 시기를 아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상승기보다는 하락기에 있는 투자물을 찾아야겠지요. 주식의 경우 누군가는 지수가 반토막 나면 하락기가 끝나는 지점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코스피는 10년을 주기로 반토막을 기록했고, 그 이후 전고점을 돌파하며 우상향해서 지금에 이르렀으니까요. 

만약 이 말에 동의한다면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반토막이 되기를 기다리며 쉬는 것입니다. 반토막이 났을 때 어떤 주식을 살지 고민해보면 됩니다. 일확천금을 바라기보다는 현업에 종사해서 자신의 역량을 기르며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엄청난 폭락 뒤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이 나옵니다. ‘우리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요.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샴페인을 터트려야 비로소 폭락이 시작됩니다. 샴페인을 터트린다는 것은, 어떤 투자물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여했을 때를 말합니다. 즉, 더 이상 해당 투자물에 대한 시장 방관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점. 

주식 투자의 대가로 유명해진 개인 투자자 김종봉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서점에 가면 상승기를 거의 지나간 투자물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점의 경제경영서 신간 코너나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서 압도적으로 많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보라는 겁니다. 바로 그 주제가 상승기의 끝자락에 있는 투자물이라고요. 그 책을 쓴 사람은 해당 투자물로 막대한 돈을 벌고 난 뒤입니다. 책을 쓰고 만드는 데에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국 그 책은 이미 시장 상승기 초입에 진입해서 막대한 돈을 번 사람이, 자신의 후일담을 6개월에 걸쳐 각색하고 난 뒤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시기상으로 초입기는 완전히 지났고 상승기의 정점일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비겁한 돈이란 인내하며 기다린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투자의 황금 시기를 의미합니다. 분명 모든 투자물에는 ‘도저히 돈을 잃을 수 없는 시기’가 존재합니다. 그 시기를 잡는 사람은 실력에 상관없이 승리하는 투자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돈을 모으며 기다렸다가 시장의 바닥지점에서 들어가세요. 운 좋게 하락장의 끝에 들어가 상승장에서 돈을 벌었다면, 절대로 그 돈이 당신의 실력으로 번 돈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연히 한 번의 수익을 냈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투자자로 나서려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요. 조심해야 합니다.

월급이 300만 원이라면 회사를 그만둘 때 한 달에 300만 원이라는 현금 흐름을 걷어차는 것입니다. 서울의 아파트 중 20억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아파트의 월세가 300만 원입니다. 물론 대출을 받지 않고 은행에 이자를 갖다 주는 일이 없어야 가능합니다. 거기다 이 아파트를 월세로 주고 자신이 거주할 수 있는 또 다른 집도 있어야 하고요. 지금 20억짜리 ‘여분의 아파트’를 대출을 끼지 않고 가지고 있나요? 그게 아니라면 일을 그만두고 현금 흐름을 걷어차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 일단 괴롭고 힘들어도 일단 회사에 다니며 월급에서 조금씩 비겁한 돈을 모아야 합니다. 참고 기다렸다가 기회가 왔을 때, 잃기 쉽지 않은 시점, 즉 시장의 바닥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야 돈을 잃을 확률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합니다. 혹시라도 돈을 잃어도 믿을 구석이 있고요. 돈을 번다면, 조금씩 조금씩 판돈을 키워가며 다음 하락장을 또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비겁한 돈이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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