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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모험 소년 만달레이 툭툭 투어

by 김민식pd 2024. 4. 24.

어린 시절부터 저의 평생의 꿈은 세계일주였어요.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 30년간 일하고 퇴직하면, 평생 모은 돈을 들고 1년간 세계일주를 떠날 생각이었는데요. 생각해보니 모은 돈을 들고 떠나 1년간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오면, 세가지 문제가 생겨요. 첫째, 이제 세계일주라는 평생의 로망이 사라져요. (이미 실행에 옮겨버렸기 때문에) 둘째, 평생 모은 돈이 사라져요. (벌지는 않고 쓰기만 하니까.) 셋째, 돌아와서 할 일이 사라져요. (1년간 해외에서 한국과는 단절된 생활을 하니까.)

대신 저는 짝수달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미국이든 유럽이든 한번 가서 3~4주간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거죠. 여행을 다니면서도 메일로 강연 요청은 계속 확인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숙소에서 다음해에 나올 책의 원고 작업을 하고요. 일과 여행을 병행하는 거죠. 홀수달에는 강연을 다니고, 짝수달에는 여행을 다니고. 이게 제가 찾은 지속가능한 세계일주 방식입니다. 

지난 2월 3주간 떠난 미얀마 여행기를 이어서 올립니다. 툭툭 기사의 영업에 1일 투어를 선택했는데요. 숙소를 출발한 툭툭을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금박 불탑이 아름다운 마하무니 파고다.

인적이 드문 곳이에요.

울긋불긋 다채로운 색깔의 우산이 손님을 기다립니다. 2010년대 미얀마 여행 붐이 일었을 때는 저걸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았겠지요.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우산만이 늘어서 있습니다. 

힌두교 유적과 닮은 불교 사원. 종교와 신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사이인 것 같아요.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마하간다용 수도원 Mahagandayon Monastery
1914년에 개원한 미얀마 최대의 수도원으로 1천여 명의 승려들이 수행을 하는 수도원이다. 엄격한 규율로 유명하며 평소에 그 조용한 사원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지만 매일 오전 10시 15분에 맞춰 열리는 대규모 탁발행렬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패키지여행자들로 몸살을 앓는다. 일부 여행자들은 예의 없이 탁발을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승려들을 건드리거나 코앞까지 다가가 사진을 찍어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 수도원을 방문할 때는 이 시간을 피하 거나 최대한 수행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자.

<미얀마 셀프 트래블>

영업을 할 때는 영어를 곧잘하던 툭툭 기사가 정작 현장에 도착해서는 별 설명이 없었어요. 알고보니 영업을 하는 정도까지만 배운 영어라 가이드의 역할은 안 되는 거죠. 괜찮아요. 제게는 전자책이 있어요. <미얀마 셀프 트래블>이라는 전자책을 휴대폰에 넣어 다녔어요. 구독 서비스에는 없고 유료 대여가 가능한 책이라 4,000원인가 주고 빌렸는데요. 돈이 아깝지 않았어요. 최고의 가이드랑 같이 다니는 기분이니까요. 미얀마 여행 가시는 분들은 전자책 서점에서 한번 찾아보시기를~

이제 툭툭은 시내를 벗어나 교외를 향해 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얘기를 해주지 않아 살짝 겁이 납니다. '설마 어딘가로 납치하는 건 아니겠지?' 한국인이 미얀마 국경 지역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감금되었다는 흉흉한 소식을 접한 터라, 혹시 싶은 마음에 전날 툭툭 기사에게 받은 명함을 친구에게 보내뒀어요. 숙소의 연락처, 주소와 함께. "내가 내일 툭툭 기사랑 1일 투어를 가는데, 만약 저녁까지 잘 다녀왔다는 연락이 없으면, 이 연락처를 수소문해주세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툭툭 기사는 아무말 없이 시골길을 한 시간 가까이 계속 달리기만 합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사원이 있었어요. 

툭툭 기사가 알려준 현지 이름은 너무 어려워 가이드북을 찾아보니

싱뷰메 파고다 Hsinbyume Paya
먀떼잉단 파고다 Mya Theindan Paya 라고도 불리는 이 파고다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꼭대기까지 7층으로 된 하얀 테라스가 독특한 아름다 움을 자아낸다.

<미얀마 셀프트래블 2016> | 한동철,이은영

이 사진을 찍어준 건 현지에서 만난 어느 영국인 아저씨인데요. 벨기에로 이민을 갔다고 하더라고요. 브렉시트 후 유럽인으로 계속 살고 싶어서 그랬다고. ^^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아시안 게임 축구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2024년 2월 5일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가 영국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지요. 손흥민 선수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면서 좋은 선수로 성장했다고. 그랬더니 그 친구 왈. "손도 좋지만 황도 훌륭한 선수다. (황희찬) 이번 아시안 게임으로 축구 팬들이 황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 같아 기분 좋다."

역시 여행지에서 외국인을 만났을 때, 가장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화제는 스포츠. ^^

볼수록 아름다운 사원인데요. 툭툭에서 내리자 행상들이 스카프며 기념품을 들고 쫓아왔어요.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말로 말을 겁니다. "오빠!" "싸랑해요." "강남 부자!" 아이고... 

코로나와 군부 쿠데타 이전에는 관광객으로 넘쳐났던 이곳에 2024년에는 사람이 없어요. 그날도 외국인 관광객은 저랑 영국인 달랑 두 사람... 그러다보니 더 집요하게 호객을 합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한 사람에게 물건을 사면, 그걸 본 다른 상인들이 또 달려들거든요. 그냥 눈 질끈 감고 지나치는 수밖에... '제가 이번 미얀마 여행 다니며 미얀마 정부에 많은 경비를 지불했습니다. 국영 여행자 보험이며, 비자 수수료며... 모쪼록 그 돈들이 국가 예산에서 잘 집행되어 잘 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가 여러분 개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서 미안합니다. 제가 만약 오늘 여러분에게 물건을 비싼 값에 사면, 다음에 올 한국인 여행자들은 더욱 시달리게 될테니까요.'

가난한 나라를 여행할 때는 참 복잡한 심경이 되지요. 현지에서 먹고 자고 다니는 데 쓰는 돈으로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길 바랄 뿐입니다. 툭툭을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커다란 종을 봤어요.  

'밍군 종 Mingun Bell
보도파야 왕이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을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1808년에 완성하였다. 약 87톤의 거대한 크기로 타종할 수 있는 종으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며 모스크바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황제의 종 다음으로 큰종이라고 한다. 보도파야 왕은 이 종이 완성된 후 더 큰 종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건설에 참여했던 기술자들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책의 설명을 읽고, '응?' 믿기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도파야 왕의 또다른 유적을 봅니다.

처음 툭툭을 타고 지나칠 때 멀리서 보고는 '산에다 부조로 조각을 했나?' 싶었거든요.

가까이 가서 보니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만든 거더라고요. 호기심에 책을 뒤져보니.


'밍군 파고다(파토또지 파고다) Pahtodawgy Paya
보도파야 왕이 1790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파고다를 지을 목적으로 1천여 노예와 전쟁포로를 동원하였으나 파고다가 완성되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소문 탓에 중단 되었다. 애초에는 150m 이상의 높이로 설계되다가 현재는 49m 높이에 반경 72m의 아랫부분만이 완성된 채 남아 있으며 1838년에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탑의 여러 부위에 세로로 갈라진 흔적이 있다. 파고다의 한쪽에 위치한 170계단을 오르면 에야워디 강과 함께 밍군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데 현재는 붕괴의 위험 때문에 폐쇄됐다. 파고다를 지키는 두 마리의 거대한 사자상이 파고다 앞 강변에 부서진 채 있으며 조각조각마다 섬세한 부조가 살아 있다.'

미얀마 셀프트래블 2016 | 한동철,이은영

그러니까 이게 노예와 전쟁 포로를 동원해서 벽돌로 쌓은 산이로군요. 완성하는 순간,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 수 밖에 없네요. 이런 권력과 야심의 끝판왕이라니...

그 앞에는 사자상이 있어요. 마치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 같아요. 실제로 보면 스케일과 디테일에 놀라요. 아주 섬세한 조각상인데 엄청 커요. 이제는 밀림 속에 버려진 폐허가 된...

그런데요. 노예를 1000명이나 부릴려면 아주 부유한 나라였겠지요? 곳곳을 다니며 이렇게 화려한 유적을 보며, 과거 미얀마가 농경 문명 사회 시절 누린 막대한 부를 짐작할 수 있어요. 

이런 황금 불탑을 세운 사원들로 가득한

사가잉 언덕. Sagaing Hill. 각종 수도원이 산재한 미얀마 불교의 중심지로 지역 전체가 금빛 파고다로 뒤덮여 있어요. 

이제 슬슬 배가 고파지는군요. "I am hungry." 그랬더니, 기사가 "미얀마 푸드 오케이?" 하기에 호기롭게 오케이 했어요. 

엄청 푸짐한 상을 받았습니다. 메뉴가 따로 없어요. 직원이 "1명?" 그러기에 "Yes." 했더니 이렇게 한 상 가득 차려내옵니다. 전주식 한정식인가? 완전 푸짐하고 하나하나 다 맛있어요. 양도 엄청나네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육해공군 총출동에 단호박에 메추리알까지.

옆에 웬 솥이 있기에 뭔가 보니, 추가 밥은 셀프로 알아서 양껏 떠가라고 아예 솥째로 줍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를 돼지로 아나. ㅋㅋㅋㅋㅋ'  

처음 보는 식재료도 있는데 일단 다 먹어봤습니다. 씹히는 식감이며 맛이며 낯설기만 하고 재료가 뭔지 전혀 짐작이 안 가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냥 모르고 넘어가기로 했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상을 받아보겠어요. 인생은 언제나 나우 오어 네버. Now or Never.입니다. 

다만 메뉴가 없는 식당이라 살짝 불안하기는 합니다. 혹시 툭툭 기사가 물정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식당이랑 짜고 바가지 씌우려고 데려온거 아닌가? 이렇게 푸짐하게 차려놓고 돈을 다 받으면 엄청 비싼 거 아닌가? 

나갈 때 계산해보니 5500짯 우리 돈 3,500원이에요. 라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네요. 믿기지않는 가격이에요. 보통 관광지에서 기사가 안내한 곳은 바가지를 조금 씌우고 기사랑 이익을 나누는 게 기본인데 여긴 정말 정직하게 일하는 것 같아요. 완전 감동 받았어요. 참고로 미얀마 정식은 저렇게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은 양에 따라 돈을 받더군요. 

툭툭 기사가 전날 영업하며 보여준 일정표를 보니 이제 남은 곳은 

우베인 다리 U-Bein Bridge
타웅타만 호수를 가로지르는 대략 1.2km 길이의 이 목조다리는 아마도 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보도파야 왕이 수도를 이전하면서 잉와 궁전에서 사용했던 티크 목재들을 해체해 아마라푸라 왕궁 건설에 사용하였는데 남은 목재들을 당시 아마라푸라의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모아 다리를 만들었다. 

이제 툭툭 1일 투어를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그날 하루, 놀라운 유적지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서 만든 산. 아니, 사원. 

아침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내 인생에 있어 한 장의 벽돌이라고 생각해요. 그 모든 벽돌이 모여 내 인생의 무늬를 그려가겠지요. 

내가 쓰는 글의 디테일을 더하고, 스케일을 키우며 살고 싶어요. 그걸 위해 저는 오늘도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 글을 씁니다. 

다음 여행기에서는 일본 교토 벚꽃놀이를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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