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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외로움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법

by 김민식pd 2023. 5. 24.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누구일까요? 아마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 아닐까요? 그럼 반대로 제일 좋은 사람은 원수를 은혜로 갚는 사람이겠지요? 오늘은 원수를 은혜로 갚는 법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1992년에 첫 직장에 입사했는데요. 치과 외판 사원으로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불쑥 치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원장님들께 욕을 먹고 쫓겨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남의 일터에 불쑥 찾아갔다가 욕먹는 건 방문 외판 사원이 각오하고 살아야 합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마음고생을 좀 했는데요. 직장 상사에게 자주 혼났습니다. 당시 상사는 일하다 과로사할 뻔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일하는 분이었어요. 그분 눈에는 제가 하는 업무량이 눈에 안 찼겠지요. 하루는 저를 불러서 그러시더라고요.

"김민식 씨, 나랑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권투 시합 한 번 할까? 넥타이 풀고 사나이 대 사나이로 말이야."

네, 이건 "너는 좀 맞아야겠다."라는 소리지요. 요즘 같으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라도 했겠지만, 당시는 1994년, 직장 내 권위적인 분위기가 심하던 시절입니다. 회사에 다니는 게 너무 괴로워 사표 쓰고 나왔고요. 아버지가 난리를 치셨어요. 힘들어도 버텨야지, 그만한 일에 왜 회사를 나오느냐고. 나중에 그러시더라고요. 

“그 상사가 네 인생의 원수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 애를 그렇게 힘들게 해서 회사 그만두게 했으니.”

20대 후반에 백수가 되어 집에서 놀고먹으려니 참 외롭고 힘들더라고요. 제가 ​회사 다닐 때 저녁마다 영어학원에 다녔는데요. 낮에 외판 영업 뛰는 건 힘든데, 밤에 하는 영어 공부는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회사 그만두고 하루 종일 영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 덕분에 외대 통역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지요. 통역대학원 졸업할 때는 MBC 피디 공채에 지원해 합격했어요.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정말 기뻐하시더군요. 

“나중에 첫 직장 상사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드려라. 그 양반이 네 인생의 은인이다. 그 사람 아니었으면 네가 어떻게 MBC 피디가 되었겠니?”

그때 깨달았어요. 원수라고 생각한 사람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의 은인이구나.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나를 외롭게 만든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잖아요? 나의 소중한 시간, 나의 귀한 인생을 그 사람에게 갖다 바치는 겁니다. 누군가를 원망하며 사는 삶은 괴로운 삶입니다. 남이 괴롭혀서 가뜩이나 힘든 나를, 나까지 왜 괴롭혀요? 그냥 그 사람은 잊고 나한테 잘하면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됩니다.

제가 2012년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170일 파업에 앞장섰다가 난리가 났어요. 대기 발령, 정직 6개월, 교육 발령, 징계 3종 세트를 받고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검찰에서 저에게 구속영장 2번 청구하고 징역 2년형 구형하고 막. 그런데요, 저 그때만 해도 크게 외롭지는 않았어요. 조합원들이랑 집행부 동료들이랑 함께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파업이 끝나고 3년이 지나고 또 보복 발령이 납니다. 2015년에 송출실로 쫓겨나고요. 혼자서 주 야간 교대 근무를 하면서 새벽 3시에 심야 프로그램에 자막을 흘리고, 새벽 5시에 애국가를 틀면서 '난 누구인가? 여긴 또 어디인가?' 하고 살았어요. 제 인생에 두 번째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알지요. 나를 발령을 낸 저 사람이 지금은 원수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내 은인이 될 거라는 걸. 그분을 나의 은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 평생의 꿈을 이루는 겁니다. 저는 매년 200권의 책을 읽습니다. 술 담배 커피는 하지 않고 오로지 활자 중독에 빠져 사는 책벌레의 꿈은 무엇일까요? 언젠가는 책을 쓰는 저자가 되는 것이지요. 나를 핍박하는 회사 경영진을 나의 은인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글을 잘 못 써요. 이과 출신에 공대를 나와 영업사원을 하던 제가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든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저는 고민이 생기면 도서관에 찾아갑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이 고민을 예전에도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가 그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면 그는 그 답을 책에 글로 남겼을 것이다, 하고 믿어요. 

도서관에 가서 글쓰기라는 주제어로 검색을 하니 수십 권의 책이 뜨더라고요. 스티븐 킹의 글쓰기, 대통령의 글쓰기, 작가의 글쓰기, 그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했고요. 모든 책에서 하나같이 하는 조언은, 글을 자꾸 써보라는 것이었어요.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글을 써서 공개하는 것이 최고의 글쓰기 훈련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10년 동안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 한 편씩 올렸습니다. 그러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모아 낸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외로움을 그냥 두면 괴로움이 됩니다. 외로움이 즐거움이 되기 위해서는 즐거운 일을 찾아 꾸준히 반복해야 합니다. 즐거운 일을 찾을 때 3가지 기준을 알려드릴게요. 첫 번째, ‘나의 즐거움이 타인의 괴로움이 되지는 않는가?’ 내가 즐겁자고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 폭력, 재미 삼아, 장난으로 하면 큰일 납니다. 두 번째, ‘지금의 즐거움이 훗날의 괴로움이 되지는 않는가?’ 지금 즐겁자고 하는 담배나 술이 훗날 나를 아프게 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의 즐거움이 훗날의 괴로움이 되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세 번째, ‘처음엔 어렵지만 갈수록 쉬워지는가?’ 영어 공부도 그렇고요, 독서나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습관을 들이면 갈수록 점점 쉬워지고요. 그 결과 나는 매일 성장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원수를 만난다면, 저 사람이 내 인생의 은인이 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그 사람에게 잘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나 자신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가 괴롭혀서 힘든 나 자신을 나까지 힘들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공지사항 :

6월 8일 저녁 7시, 북바이북 광화문점 북토크는 서점 사정으로 취소되었습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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