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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

여행의 기술

by 김민식pd 2023. 6. 28.

얼마 전, 초등학교 학부모 대상 강연을 했어요. 어떤 분이 물으셨어요. 두 아이의 나이차가 커서 큰 아이는 대학생, 둘째는 초등학생이라고요. 여행 할 때마다 힘들답니다. 큰아이 눈높이에 맞추면 둘째가 힘들어하고, 둘째 눈높이에 맞추면 첫째가 시시해한다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어떤 여행이든 주인공은 한 사람이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여러 사람을 만족시키려다보면 다 삐집니다. "이번 여행은 오빠 대학 입학 축하 여행이니까 오빠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거야." "이번 여행은 할머니 칠순 잔치 대신이니까 할머니 드시고 싶은 걸로 먹을 거야." 이렇게 미리 딱 정해두면 불평이 줄어듭니다.

이번 여름 방학에 가족끼리 해외여행 가는 집도 있겠지요?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제가 생각하는 몇가지 방법을 적어봅니다.

첫째, 테마를 하나만 딱 정한다.
간만에 떠나는 해외여행,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지요. 파리에서 꼭 봐야할 여행지, 10선, 이런 곳 검색해서 다 찾아다니다 보면, 여행의 개성이 사라집니다. 남들 다 가는데 가고, 남들 하는 거 따라 하는 것 밖에 안 되거든요. 뉴욕 걷기 여행, 일본 테마 파크 기행, 영국 시네마 투어, 등 테마를 하나 정해놓고 관련된 명소를 챙기는 겁니다. 만약 아이가 해리 포터의 팬이라면, 해리 포터 관련 여행지 투어를, 배우자가 와인을 좋아한다면 와이너리 투어를 해보셔도 좋아요. 

둘째, 여행의 주인공을 한 사람만 정한다.
온 가족이 떠나, 각자의 취향을 다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는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은 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갈 때는 아버지랑만 가고, 아이들과 갈 때는 아이들이랑만 갑니다. 어른들 눈치 보랴, 아이들 투정 들어주랴, 가운데서 중재하다 보면 지치기 쉽습니다. 딱 정해요.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할머니야. 할머니 좋아하시는 곳으로 다닐 거야. 싫으면 그냥 남아.’ 이래야 합니다. 여행은요, 민주적인 투표가 아닙니다. 각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참정권을 갖고 토론하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무조건 주인공에게 맞춰서 다녀야 합니다.

셋째,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해준다.
작년 가을, 대학생 큰 딸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아빠랑 같이 제주도 가고 싶다는 딸에게 물어봤어요. “왜? 친구들이랑 가지?” “아빠랑 가면 운전을 하니까 더 쉽게 다닐 수 있잖아.” 딸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어요. 방을 2개 잡았고요. 저녁 먹고 숙소에 들어가면, 다음날 아침 9시가 될 때까지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야 여유가 있어요. 평소에 학교 가고 회사 다니며 따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여행지에서 24시간 붙어 있다 보면 잔소리가 나올 수도 있어요. “넌 아직도 안 자고 스마트폰 보니?”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누워있니?” 그럼 안 됩니다. 아침에 출근하듯 같이 여행지로 떠나고요. 돌아오면 각자 집으로 퇴근하듯 자기만의 공간으로 가서 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한 곳에서 3박 4일은 머문다.
유럽의 도시 간 이동의 경우, 숙소에서 오전 11시 전에 체크아웃하고 다음 숙소에서 오후 3시 이후에 체크인을 합니다. 짐을 들고 이동하는데 최소 반나절이 소요되지요. 아이들과 다닐 경우, 짐은 많은데 나눠 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일 좋은 건, 하나의 숙소에 체크인을 하면 최소 3박을 하는 겁니다. 어차피 체크인하고 나면 늦은 오후가 되고요. 이동하느라 피곤한 상태이니 저녁에는 쉬는 편을 권합니다. 이틀을 풀로 쓸 수 있어야 한 도시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많은 곳을 보겠다는 욕심에 2박 3일 숙박 일정으로 도시를 옮기면, 이틀을 이동에 쓰고 정작 구경은 하루 밖에 못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지치거나 힘들 때, 점심 먹고 숙소에 들러 쉬었다가 나오는 게 좋은데요. 체크아웃한 후라면 휴식이 어렵습니다. 가급적 한 숙소에서 3박 정도 하는 편을 권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왕에’ 병을 경계해야 합니다. 기왕에 런던까지 왔으니, 유로스타타고 파리도 들를까? 기왕에 프랑스를 갔으면 샤모니에 가서 알프스도 봐야지? 잠깐 알프스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봐도 괜찮은데, 기차 타고 잠깐 스위스도 다녀올까? 일정이 이렇게 끝없이 늘어나는 건 주의해야 합니다. 



다섯째, 전반부에는 모험을, 후반부에는 휴양을.
여행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모험인 동시에, 바쁜 일상으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기회입니다. 여행 초반에는 다양한 활동/액티비티 위주로 바쁘게 다니고요, 후반부에는 호캉스 즐기기 좋은 도시에서 쉬었다 오는 편을 권합니다. 처음부터 그냥 쉬기만 하면 재미가 없고요, 끝까지 달리기만 하면 휴가 다녀와서 학교나 직장에 복귀할 때 지쳐서 힘듭니다. 초반에는 욕심을 부려 많이 보고요. 후반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쉬다 오는 편이 여행의 전반적인 만족도를 올리는 길입니다.

끝으로, 절대 본전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 많은 돈을 들여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 나가지 않으려는 아이나 불만스러워하는 동행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여행의 목적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일을 하는 건 돈이 목적이지만, 여행의 목적은 즐거운 추억입니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의 기분을 잘 살피는 게 최우선입니다. 돈이 아까워서, 아이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키지는 마세요. 여행은 선행학습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할 과제는 없습니다.

모쪼록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시는 방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 상세한 이야기는 제 책,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를 참고하셔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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