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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

나의 한계령은 어디인가?

by 김민식pd 2018. 8. 3.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자전거타고 전국일주를 떠났습니다. 내 평생 최초의 자전거 여행이었는데요. 여행과 사랑에 빠지게 된 첫번째 만남이었어요. 내 힘으로 전국을 돌아봤다는 성취감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당시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구간은 동해안 7번국도였어요. 포항에서 속초까지 올라가는데, 오른쪽에 동해바다, 왼쪽에 태백산맥, 절경이 펼쳐지지요.

아름다운 바닷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서울로 돌아오려면 반드시 넘어야하는 고개가 있습니다. 바로 한계령이지요. 전국일주 최고의 난코스입니다. 대학 싸이클부에서 함께 갔는데요. 오르막에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올라가면 완주 탈락입니다. 완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페달을 밟아 설악산 정상까지 올라야합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구비구비 올라가는데 우와... 한계령의 특징은, 저기가 정상인가 하고 올라가보면, 다시 새로운 고갯길이 펼쳐진다는 거죠. 이럴 때, 멀리 바라보고 달리면 안 됩니다. 힘이 빠지거든요. '뭐야, 아직도 멀었어?' 그냥 앞바퀴 바로 앞 바닥만 보면서 페달을 젓습니다. 

"한계령을 어떻게 오르나요?"

"먼저 오른발로 페달을 밟는다. 다음엔 왼발. 다음엔 오른발. 계속 반복한다."

이게 한계령을 오르는 방법이에요. 드라마를 찍는 방법도 똑같고요. 책을 쓰는 방법도 똑같습니다. 한 컷 한 컷, 한 장 한 장, 반복을 합니다. 계속. 


올해 초, 드라마국에 복귀했더니, 후배 드라마 피디가 제 자리에 책을 놓아두고 갔어요. 복귀를 축하하는 후배의 글귀와 함께 놓여진 책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 느린 걸음)

후배 덕분에 오랜만에 박노해 시인의 시집을 읽네요. '한계선'이라는 시를 읽다 문득 한계령이 생각났어요. 오늘은 간만에 시를 공유합니다.


한계선 

- 박노해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도망치게 되리라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스스로 그어버린 그 한계선이

평생 너의 한계가 되고 말리라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그만 금을 긋고 돌아서고 싶을 때

묵묵히 황무지를 갈아가는 일소처럼 


꾸역꾸역 너의 지경을 넓혀가라




<이별이 떠났다> 연출을 맡으며, 이것이 저의 한계를 실감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남몰래 걱정했는데요. 좋은 스탭들과 멋진 배우들을 만난 덕에 드라마 연출이 이토록 즐겁고 매력적인 일이라는 걸 깨닫는 기회가 되었어요. 7년의 이별을 떠나보내고, 현업으로 돌아와 즐겁게 일할 수 있었어요. 

<이별이 떠났다>를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일 저녁 8시 45분 마지막 이야기가 방송됩니다.

그동안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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