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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한류 드라마가 성공한 이유?

by 김민식pd 2012. 1. 2.

파워블로거가 되는 비결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나오는 대답이 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꼬박 꼬박 글을 올려야합니다.’ 아니, 돈 받고 매일 매일 꼬박꼬박 출근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돈도 안 생기는 짓을 매일 아침마다 해야한다고? 그렇다. 바로 돈이 생기지 않는데도, 매일 매일 꼬박 꼬박 해야 고수가 될 수 있다. 파워 블로거는 매일 포스팅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매일 들르는 습관을 붙이고, 조회수가 올라간다. 무엇보다 매일 글을 써야 그들 자신도 고수가 된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을 시작한 친구가 있다. “어때, 해보니까?” “쉽지 않은데요.”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쓰는 작가, 참 멋진 직업이다. 그러나 그 일을 매일 매일 한다고 생각해보라. 글 좀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몇 달 안가 아이디어는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매일 매일 마감이 닥쳐오는 직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람들은 모른다. 매일 매일 기사를 송고해야 하는 기자의 임무가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드라마 작가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농 삼아 하는 얘기가 있다. “일일 연속극을 쓰는 건 미친 짓이야.” 매일 40분 짜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 그거 맨 정신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예전에 뉴논스톱이라는 일일 시트콤을 연출한 적이 있다. 드라마는 그나마 길어야 6개월이면 방송이 끝난다. 나는 뉴논스톱에서 시작해 논스톱3’까지 일일 시트콤을 연속으로 2년 반 동안 연출했다. 매일 매일 일주일에 5편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그것도 2년 반을 연속으로. 방송이 끝나야 밀린 휴가도 가고, 쉬기도 할텐데, 방송은 끝날 줄을 몰랐다. ‘너무 잘 만든 탓인가?’ 작가들과 한탄을 했다. “제목을 잘 못 지었어봐... 다음엔 논스톱 대신, 올스톱으로 하자.” 당시엔 고생이 많았지만, 뒤돌아보면 다 즐거운 추억이다. 아니 그 시절에도 참 즐겁게 일을 했었다. 무엇보다 난 연출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뉴논스톱 연출 시절에 다 배웠다.

 

골든 로즈 TV 페스티벌이라는 국제 방송 대회가 있는데, 2002년 봄 뉴논스톱이 본선 경쟁작으로 올라갔다. 아시아 지역 시트콤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방송제 초청을 받아 스위스 몽트레유를 방문했다. 거기서 영국 BBC에서 온 프로듀서와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내 작품을 설명해달라고 하길래 “It’s a daily sitcom.”이라고 했더니 눈이 똥그래졌다. 아니, 시트콤을 매일 방송한다고?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국제 경쟁력을 가진 콘텐츠들은 다 주1회 방송하는 포맷들이다. 미드도 주 1회 방송, 일드도 주 1회 방송한다. 일일 시트콤이라는 기형적인 장르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시장 상황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넌 정말 빨리 찍는구나. 어떻게 일주일에 5편씩 찍는 거지? 비결이 뭐야?”라고 묻기에 짧게 대답했다. “난 포기가 빨라.”

 

사실이다. 2년 반을 일일 시트콤을 찍어낼 수 있었던 건, 최선을 고집하기 보다 차선과 재빠르게 타협한 덕이다.

 

요즘 난 블로그에 몇 달 째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발행 버튼을 누르며 잠시 고민한다. ‘이게 과연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글인가?’ 매일 올리는 글이 최고의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글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글을 묵힐 생각은 없다. 글을 묵혀봤자 쉰내만 나지 상큼한 느낌은 나지 않는다.

 

방송 피디는 하루 하루 주어진 마감시간과 씨름하는 직업이다. 방송나가는 드라마를 보며,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더 잘 찍었을텐데...’하고 후회하는 건 의미없다. 한정된 시간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연출이니까.

 

때로 우리는 품질을 타협하지 않겠다는 핑계로 마감을 미루려한다. 비겁한 변명이다. 월급쟁이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난 방송 연출은 예술이 아니라,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품을 위해 절대 타협할 수 없다고 욕심을 부려 방송을 펑크 내면, 회사와의 약속은 어찌되고 광고주와의 계약은 어떻게 되는가? 아직 준비가 부족해서 방송을 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후배에게는 항상 이렇게 충고한다. “예술할거면 집에 가서 너 혼자 해라. 회사 돈 받아서 예술하는 거 아니다. 우리한테 회사가 월급을 주는 건, 광고를 제깍제깍 붙여서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들라는 거지, 작품을 만들라는 거 아니다.”

 

블로그는 그럼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감에 쫓겨야하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글을 아끼면 오히려 품질은 늘지 않는다. 마감에 쫓겨 가며 글을 꾸준히 써야 글이 는다. 마감이 없으면 긴장도 사라진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마감을 꽁무니에 달고 달리는 직업이다. 먹고 살려면 스스로 마감의 틀 안에 넣고 자신을 괴롭혀봐야 한다. ‘아웃라이어에서 말콤 글래드웰이 ‘1만 시간의 법칙을 통해서 주장했듯이 매일같이 몇시간씩 꾸준히 해야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가 한류 콘텐츠로 이름 날리는 고수가 된 이유? 바로 매일 매일 만들면서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의 최대 약점이 무언지 아시는가? 바로 제한된 배급 시장이다.

 

일본만 해도 인구가 1억이다. 우리보다 경제규모도 크고 광고시장도 크다. 그들은 내수시장만 가지고도 충분히 방송을 제작할 여유가 있다. 전세계 중화권 인구를 생각해보면 우리보다 시장도 크고 가능성도 큰 건 중국어 문화 상품이다. 방송의 포맷은 언어다. 그런데 한국어를 쓰는 인구는 얼마 되지도 않고, 그나마 반으로 쪼개있어 북한에는 팔아먹을 길이 없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우린 어떻게 방송의 품질을 키울 수 있었을까?

 

뉴논스톱을 연출할 때,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김민식 피디는 자신이 시트콤 매니아라고 말한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열혈 팬으로 자처하는 이가, 왜 정작 자신의 시트콤은 이 정도 수준으로 밖에 못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청자와 소통을 노력하는 친절한 감독님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글이었다. 바로 답글을 달았다. “프렌즈 제작진은 1년에 24편 만들고, 나는 1년에 200편 만듭니다. 프렌즈는 편당 제작비가 5억원이고 논스톱 편당 제작비는 1500만원입니다. 프렌즈 감독더러 한국에 와서 이 예산 같고 1년에 200편 만들라고 해보세요. 이만큼 만들기 쉽지 않을걸요?”

 

 

프렌즈는 영어로 만든다. 전세계 영어권 국가에 판매 수익이 엄청났다. 게다가 미국은 케이블 방송이나 위성 채널, DVD 판권 수입이 엄청나다. 2000년 당시 우리 방송은 내수 시장이 작아 제작비를 많이 타낼수가 없었다. 적은 돈으로 제작하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배우들 모아놓고 밤새 찍어 일주일에 다섯 편을 만드는 것. 그래서 편당 광고비 수익을 5배로 늘리는 것...

 

최근에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한류 드라마가 무언지 아시는지? 바로 SBS 일일 연속극 아내의 유혹이다. ‘아내의 유혹는 정말 설정이 강하고, 캐릭터도 하나같이 강력하다. 그래서 때로 막장 연속극이라는 비난을 받는데, 나는 방송 만드는 연출자의 입장에서 그 드라마를 변호하고 싶다. 작은 예산과 빠듯한 촬영 일정에 쫓겨 일일 연속극을 만들려면, 야외 촬영으로 영상미를 추구하거나 지방 로케이션 촬영으로 화면에 공을 들일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연속극은 주로 세트 촬영으로 이야기를 꾸려간다. 화면으로 시청자를 압도할 수 없을 때, 유용한 전략은 각 회별 방송 마지막에 극적인 위기를 터뜨리는 것이다. 깜짝 놀란 주인공의 표정에서 화면을 정지시키고 시청자들을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불륜을 들켜 버린 거야?’ ‘출생의 비밀을 알아 버린 거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숱한 궁금증을 유발시켜야 한다. 그것도 매일 매일 끝날 때마다........ 이거 보통 노하우 아니다. 한국 일일 연속극은 반전에 반전을 무는 극적인 전개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국의 한류 드라마 팬들과 얘기해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 드라마는 중독성이 강하다.’라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 시청자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TV 장르가 드라마다. 항상 주간 시청률 톱 텐은 드라마가 기록한다. 내수 시장에서 치열하게 서로 경쟁하다보니 이야기의 극성이 강해지고 만듦새도 좋아지는 것이다.

 

결국은 양질전환의 법칙이 문화 산업에도 적용된다. 물리적인 임계량에 도달하면 화학적 성분 변화가 일어난다. 무엇이든 경험치가 쌓이지 않고 변화하는 예는 없다.

매일 매일 블로그에 글이 쌓인다면, 어느 날 문득 그대는 고수가 되어 있을 거다.

 



오늘의 동영상 영어 특강 K-Drama 101, Why Korean Dramas are so Addi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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