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서 영어 4등급을 받은 수험생이 서울대 정시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학들이 절대평가 도입에 대응해 이번 입시부터 영어 반영점수 등급간 격차를 줄였기 때문이라는군요. 당장 고교에서 영어 수업은 줄이고 국어·수학·탐구 등 대입 당락을 좌우할 주요과목 수업을 늘릴 것이라 하고, 영어 학원 등록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얼마전 지방에 강연을 갔더니 영어학원 중 문닫는 곳도 있다고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1987년에 대학 입학했습니다. 공대를 다녔는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했어요. 학점이 바닥을 기어 과에서 72명 중 70등을 한 적도 있어요. 저보다 성적이 낮은 2명은 수배중인 운동권이라 시험을 못 봤어요. 그러니 사실상 제가 학과 꼴찌지요. 이런 성적으로는 취업이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전공은 포기하고 영어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방위병으로 근무하며 출퇴근할 때마다 영어 회화 문장을 외웠는데요. 1년 반 동안 매일 열 문장씩 외웠더니 복학할 즈음엔 회화교재 한 권을 통째로 외울 수 있었어요. 대학 3학년 때 학교에서 토익을 봤는데 915점을 받아 한양대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없어 토익 915점을 받아도 전교 1등이었지요.
첫 직장을 다니며 영어를 곧잘 한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미국 사람을 만날 기회도 드물던 90년대 초반, 저의 영어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동시통역사로 전업한 것도 그래서죠. 주위에 저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90년대 초반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드물었으니까요. 외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하던 96년 즈음, 세계화 물결이 본격화되면서 영어 능통자를 찾는 직장이 늘어 취업의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방송사 예능 피디란 직업이 재미있어 보여 그쪽으로 진로를 틀었습니다.
공대를 나와 영업사원을 하던 저를 MBC에서 왜 뽑았을까요? 그 시절에는 영어 실력이 성실함의 증거였어요. 국내에서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려면 정신력이 강하고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의 통역대학원 입시반 스승이신 한민근 선생님은 6.25 전쟁 이후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걸어 다니며 영어 청취를 공부하려고 어깨에 카세트 플레이어를 메고 다니며 회화 문장을 외우셨죠. 휴대폰이나 워크맨이 나오기 전의 일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들이 투지 하나로 영어를 공부했고, 그걸로 성실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자, 여기까지는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 이야기입니다. 21세기 들어 조기 유학 붐이 일었습니다. 기러기 아빠라는 세태가 생긴 건, 엄마의 노력과 아빠의 희생으로 아이의 영어 실력을 만들어주겠다는 부모의 열망이 반영된 겁니다. 어린 시절, 조기유학을 다녀온 덕에 영어에 능통한 사람을 기업에서 우대해서 뽑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는 한국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 직장 그만두고 영어 학원의 선생님이 되는 이들이 많았지요.
옛날에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한데다 한국의 조직문화에 적응도 잘 했어요. 어린 시절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등에 업고 유학을 떠난 아이는 상명하복식의 한국 기업 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결국 직장을 나와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지요. 그런 선생님들을 보고 엄마들은 잘못된 교훈을 얻습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저 선생님처럼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내야하는구나.’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고 좌절한 분들이 많죠. '아이를 대학 보내려고 저렇게 까지 해야 해? 그 돈을 들여 애를 고생시키느니 그냥 미국 유학 보내는게 낫지않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현상을 보고 제대로 해석하는 게 중요합니다. 재력, 영향력, 정보력, 모든 걸 가진 이도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한국의 입시라는 게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진짜 교훈입니다.
대학 입시에서 영어의 비중이 줄고 있다는 건, 부모의 자본으로 자식에게 교육의 격차를 마련해주려는 시도가 좌절되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과거엔 영어 실력이 성실함의 방증이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 집단지성을 통해 다시 성실함의 기준을 바로 잡아가는 것 아닐까요?
영어교육, 정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돈으로 격차를 만들려는 시도만큼은 저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육이 빈부격차를 세습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교육은 가능성을 믿는 일입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기회는 공평해야 한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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