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은 별로 회상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엄한 아버지 아래서 컸는데, 공부를 못한다고 허구헌날 맞았다. 성적표만 나오면 빗자루, 총채, 구두 주걱 오만가지 물건이 다 매로 변했다. 하루는 성적표가 오기 전날, 매가 될만한건 다 숨겼는데, 아버지는 전기 코드를 뽑으셨다. 다음날 보니, 온 몸에 뱀 문신을 한 양, 벌건 줄자국이 웃통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문과 취향이었는데, 아버지의 욕심은 아들을 의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교 2년부터 이과를 다녔다. 그러니 성적이 잘 나올 턱이 있나. 고교 내신은 15등급에 7등급이었다. 반에서 중간 정도였다. 의대를 가려면 1등을 해도 간당간당한 판국에 말이다.
늘 집에서 맞고 다니느라 표정이 우울했다. 그랬더니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빼빼 마르고 새카만 얼굴에 늘 울상이라, 반에서 제일 못생긴 아이 1등으로 뽑혔다. 정말 살기가 너무 괴로운 시절이었다...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옛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건, 어제 영화 '돼지의 왕'을 보고서다.
영화에서 중학교 아이들을 나누는 기준은 선명하다. 주위 친구들을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은 '개'들이다. 그런 개들에게 맞서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피둥피둥 살만 찌우고 사는 것은 '돼지'들이다. 돼지는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이, 눈 앞에 놓인 먹이를 열심히 먹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해서 살찐 돼지는 개들의 먹이가 될 뿐이다. 돼지의 행복은 눈 앞의 먹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개들과 싸워 자유를 찾는 것인데, 돼지들은 결코 그 생각을 못한다.
(영화 '돼지의 왕' 감히 2011년 한국 영화 중 최고 걸작이라 평한다. 강추!!!)
영화에서 주인공이 자살을 결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개들에게 복수하고, 돼지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나도 그 시절,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다...
답이 보이지 않았던 시기였으니까. 집에서도 힘들고, 학교에서도 괴로웠다. 의사가 될 자신도 없지만, 의사로 살아갈 자신도 없었다. 결국 탈출구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녀석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자살이라고 생각했다.
그거, 사실 바보같은 생각이다.
자살은 나를 가장 괴롭힌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아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생각하니까, 못 죽겠더라. 무엇보다, 내가 죽어버리면, 나더러 찌질하다고 놀려댔던 녀석들이 '것봐라, 그 놈 진짜 찌질하다니까!'하고 놀릴까봐 약 올라서 못 죽겠더라.
다른 방법으로 증명해주고 싶었다. 나는 찌질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위해서는 일단 살아야했다.
왕따가 세상에 맞서는 법?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 이목 따위 신경쓰지 말고, 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저지르며 사는 것이다.
나는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고교 시절, 자살의 유혹을 이겨냈던 어느 날 이후,
내 삶은 내가 스스로에게 준 상이다.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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