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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딴따라 글쓰기 교실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by 김민식pd 2018. 10. 2.

공대를 나온지라, 어려서부터 늘 문과생들이 부러웠습니다. 공학은 특정 분야에 대한 열쇠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배운 석탄채굴학이나 석유시추공학은 탄광이나 석유시추선에서 딸까닥 자물쇠를 여는 키가 되지요. 이런 공부는 해당 분야에 취업하지 않으면 별 쓸모가 없습니다. 저는 전공을 포기한 공대생이었어요. 대학 4년을 다니며, 강의시간에 배우는 건 내 삶을 해석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독학으로 세상을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했고,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어려서부터 문과생들이 늘 부러웠어요. 특히 사회학이나 철학, 심리학은 그냥 과목 하나하나가 다 나 자신을 알고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 같았죠. 

<복학왕의 사회학> (최종렬 / 오월의봄)을 읽었습니다. 계명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최종렬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연신 감탄하고 있어요. ‘그래, 사회학이란 이런 학문이구나!’ 다만 인문대 학생이라고 다들 사회를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사회학과 학생들이 요즘은 전공보다 경영학이나 마케팅학처럼 취업에 도움되는 과목에 더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에 좀 쓸쓸했어요. 저자는 사회학을 하는 태도를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학생들을 볼 때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오지선다형 답안 중 정답을 고르는 능력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 이미 입증된 지방대 학생들이다. 하지만 난 그렇다고 학생들을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오지선다형 시험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이다. 5개 항목 중 반드시정답이 존재하는 퀴즈풀이 같은 시험이 아이들의 장래를 결정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라고 믿고 싶었다. 

(12쪽)


상식을 허무는 질문을 던지는 어느 학생을 만난 교수님은 그가 언젠가 훌륭한 사회학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는데요. 그 제자는 정작 사회학에 관심이 없어요.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영어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납니다. 지방대인 모교에는 돌아오지 않아요. 그렇게 또 하나의 전도유망한 사회학도를 떠나보냅니다.

학기 말, 성적 입력을 마치면 성적 이의 신청 메일을 보내는 학생도 있습니다. 

‘출석 다 하고, 리포트 다 냈는데 왜 성적이 낮은가요?’

답메일을 보냅니다.

‘리포트를 보니, 자기만의 독자적인 생각은 적지 않고, 요약만 해서 점수가 낮군요. 대학은 성실성을 테스트하는 곳이 아니라, 학문의 탁월성을 겨루는 곳입니다. 다음 학기에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의 친절한 답변을 학생은 납득하지 못해요.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강조해도 듣지를 않아요.


성실하게만 하면 좋은 성적 받으리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지방대에서 10년 이상을 가르친 요즘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성실이란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주어진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다. 영혼 없이. 어차피 나는 노력해도 성취를 이룰 수 없으니 성실하게라도 임하자는 생각이 지방대생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23쪽) 


지난 10년 보수 정권이 깊은 상처를 남긴 조직이 공중파 언론사라고 생각해요. 아마 제가 방송사 직원이라 그렇게 느끼는 거겠죠. 대학 역시 지난 정권 동안, 크게 무너진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청년 실업이 늘어나자 이명박 정권은 그 책임을 대학에 물었습니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대학의 서열을 매겼어요. 연극학과가 취업률이 낮다고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죠. 기업에 취직하자고 연극학과에 가는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지난 10년간 취업과 관련한 온갖 스펙이 만들어졌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스펙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거든요.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생들의 현실을 무척 아프게 그린 책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질문이죠. 누군가는 물어야 합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길을 잃고 헤매는 제자들이 편지를 보내오면, 선생님은 답장에 이성복 시인의 시를 써서 보냅니다. 그 글을 옮기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남벽 아래서

긴 호흡 한 번 내쉬고,

우리는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밀고 나가야 한다.

어떤 행운도 어떤 요행도 없고,

위로도 아래로도 나 있지 않은 길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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