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흔들리는 기억, 흔들리는 화면

by 김민식pd 2018. 6. 22.

M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처음 대본을 받아들고 고민이 들었어요. 여주인공 영희는 집안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사는 여자입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안방 침대 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생필품을 사다주는 올케와도 면대면 접촉이 없어요. 바람난 오빠에 대한 미안함에 찾아오는 시누이도 만날 수 없지요.

드라마에서 대부분의 사정 이야기는 대사를 통해 표현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저간의 사정이 알려지는데요, 주인공 영희는 숨어살기에, 그녀의 사정은 오로지 회상으로만 표현됩니다. 1~8부 대본을 받아들고 촬영을 준비하면서 내내 고민이었어요. 회상과 현실이 오가는 장면이 많아서 시청자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과거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때 제가 가진 고민에 답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김만태 촬영 감독입니다. 

"과거 회상은 핸드헬드 촬영 기법으로 찍어 화면이 흔들리는 느낌을 주면 어떨까요?"



사진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이별이 떠났다>의 김만태 촬영감독입니다.

사진을 보면 마치 제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같지만, 보통 촬영장에서 저의 역할은 묻는 것입니다. 

"이번씬은 어떻게 촬영할까요?"

그럼 김만태 감독이 촬영 콘티를 제안합니다. 

"처음엔 인물이 움직이니까 스테디캠으로 동선을 잡고, 인물이 멈추면 바스트샷으로 따고 들어가지요."

제가 하는 말은 간단합니다.

"좋은데요?"


방송 초반 회상과 현실을 오가는 화면 구성이 참 좋았어요. 김만태 감독의 흔들리는 핸드 헬드 촬영도 감각적이었고요. 언젠가 물어봤어요. "왜 핸드 헬드인가요?"

"사람의 기억은 주관적이잖아요. 정확하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카메라를 세팅하고 정적인 화면으로 찍는 것보다는 흔들리는 화면으로 기억의 부정확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살면서 우리는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살아가요. 그런데 그 상처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에요. 내 기억속의 상대의 모습이지요. 저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학대에 가까운 체벌을 당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버지는 지금도 그것이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고 말해요. 누구의 기억이 정확할까요? 

저는 대부분의 경우, 약자의 편에, 피해자의 편에 서서 기억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의 경우는 자신이 준 상처를 기억하지도 못하거든요. 하지만 약자에게는 그 기억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지요. 어린 시절, 제게 매질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요.


영희는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아이를 가진 정효를 보며, '이 아이 역시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겠구나' 생각합니다. 그 상처들로부터 지켜주고 싶어요. 

흔들리는 기억 속에서, 영희는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정효를 지켜주기 위한 영희의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까요? 

내일 토요일 저녁 8시 35분 방송을 기다려주세요! (월드컵 중계로 평소보다 10분 일찍 방송 시작합니당~)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