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북한강 자전거 여행

by 김민식pd 2017. 12. 12.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몇 주째 감기 몸살에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쉬는 게 최고지요. 그냥 조용히 집에서 쉽니다. 늘 빨빨거리고 다니던 사람이 쉬고 있으면 좀이 쑤셔 근질거립니다. 이럴 때는 휴대폰 메모장을 뒤적여봐요. 지난 봄에 자전거 여행을 갔다가 쓴 메모를 찾아봅니다. 그리고 휴대폰 사진 폴더로 들어가 그날 찍은 사진을 봐요. 여행을 할 수 없을 땐 여행하며 남긴 글이나 사진을 통해 그날의 여행을 다시 머릿속으로 즐깁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서울 근교 자전거 여행 코스는 북한강 코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양재천을 타고 탄천 합류부를 지나 종합운동장까지 가면 한강 자전거 도로를 만납니다. 왼쪽으로 가면 여의도, 오른쪽으로 가면 미사리입니다. 저는 미사리쪽으로 방향을 꺾어요. 여의도로 해서 아라뱃길을 따라 서해까지 가는 코스가 있고, 미사리를 지나 양평이나 춘천으로 가는 코스가 있는데, 저는 후자를 더 좋아합니다.




구리 타워 맞은편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이날은 여기까지 한번에 왔네요. 2년 전 자전거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 한강으로 나오면 처음엔 20분도 안 되어 다리가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양재천에서 쉬었어요. 그 다음에는 잠실 선착장에서 주로 쉬었습니다. 자전거 통근으로 다리 근육량이 늘었는지 이제는 한 시간을 달려도 끄떡이 없어요. 집에서 하남시까지 한달음에 옵니다. 



영어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이렇게 조금씩 늘어가는 게 보람이자 즐거움입니다. 영어 공부의 경우, 처음엔 한 과를 외우는 것도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머릿속 메모리 용량이 늘어나는 게 느껴져요. 5분을 책 없이 암송하다, 언젠가 30분 동안 눈감고 암송하게 되면 완전 신기합니다. 그럴 때는 북한산으로 갑니다. 인적이 드문 길을 걸으며 혼자 큰 소리로 회화책을 외워요. 일본어나 중국어 책 한 권을 외우면서 걸어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저는 어제의 나와 경쟁을 합니다. 지난번엔 잠실대교까지 왔는데, 이번에 미사리까지 왔구나. 이렇게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는 게 즐거움입니다.   



다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남양주시 다산생태공원입니다. 예전에 <여왕의 꽃> 야외 촬영하러 왔던 곳인데요, 그때 경치가 좋아서 언젠가 시간이 나면 다시 와야지, 했는데 마침 북한강 자전거 도로에 인접한 곳이라 자전거 여행의 기착지로 삼고 자주 오게 되었어요.




제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가 있어요. 풍광도 수려하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요. 선생은 나이 마흔에 신유박해를 만나 모함에 빠져 모진 고문을 받고,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을 갑니다. 



예순 한 살이 될 때까지 유배지에서 글을 읽고 책을 씁니다. 여유당집 500권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네요. 





고전을 읽고 정리합니다. <맹자 요의> <맹자>를 읽고 실용적 입장에서 재해석한 책.

어릴 적 글을 모읍니다. <삼미자집> 10세 이전에 쓴 글을 모은 문집. (와우,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 《삼미자집(三眉子集)》 : 정약용이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았다가 나았는데, 그때 오른쪽 눈썹에 그 자국이 남아 눈썹이 셋으로 나뉘어 삼미(三眉)라 불렸다. 이 《삼미자집》은 정약용이 10세 이전에 지은 글을 모은 문집이다. (출처: 위키 백과)



정약용의 3대 저서가 있지요. 


  • 목민심서》 :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 목민관(牧民官, 수령)의 치민(治民)에 관한 요령과 감계(鑑戒)가 될 만한 마음가짐과 태도 등을 저술한 책.
  • 흠흠신서》 : 곡산부사로 재직할 때 실제 수사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서술한 판결과 형벌에 대한 주의와 규범에 관한 책.
  • 경세유표》 : 국가 경영에 관한 일체의 제도 법규에 대하여 적절하고도 준칙(準則)이 될 만한 것을 논한 책.




3대 저서를 보면, 그는 귀양지에서도 복귀의 나날을 기다립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마음을 되새깁니다. 하지만 나라는 그를 끝내 크게 쓰지 않아요. 유배지를 떠돌며 18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꾸준히 책을 펴냅니다. 대부분의 저서가 유배 시절에 나온 저작물이에요. 한창 일할 나이에 유배지를 떠돌다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납니다.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이 있어요.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티라"는 것이지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고, 군주의 눈에서 사라지면 다시 쓰일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자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며 생각에 빠집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정약용의 삶은 내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나? 

1년 전, 출판사와 3권의 책을 계약했어요. 

'돈 안 들이고 영어 공부하는 방법' 

'돈 안 들이고 블로그를 즐기는 방법' 

'돈 안 들이고 여행을 즐기는 방법'


당시 저는 주조정실에서 교대근무를 했는데요. 밤샘 근무를 하면서 MBC 뉴스를 보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회사에서 욕을 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회사 그만두고 나갈까?'


그때 정약용의 유언이 귓가를 맴돌았어요. "무조건 한양에서 버텨라."


그때 결심했어요. '나가긴 왜 내가 나가? 내가 MBC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게 5월 18일이구요. 이 여행을 다녀온 후, 근무 중 화장실에 갈 때마다 회사 복도에서 외치기 시작했어요. 


"김장겸은 물러나라!"


그 시절 사진을 보며 봄의 자전거 여행을 추억하다 깨달았어요. 다시 싸울 수 있는 에너지를 제게 준건 스스로에게 선물한 여행이었네요.   




북한강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팁!


북한강은 교외로 드라이브가는 데이트 코스라 길 옆에 레스토랑이나 고깃집이 많은데요,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요. 그리고 커플들이 분위기 잡고 먹는 고급 식당에서 자전거 쫄쫄이 차림으로 혼자 밥 먹기 쉽지 않지요. 어딜 가나 큰 길가에 택시들이 주차해있으면 눈여겨 봅니다. 근처에 기사 식당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기사님 식당은 '혼밥의 성지'이지요. 7천원짜리 제육볶음을 시키면 국과 반찬과 고기가 나와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아요. 기사 식당은 전통의 맛집 강자인 경우가 많아요. 음식이 허술하면 기사님들 사이에 금세 소문이 나거든요.


자전거 여행, 저는 늘 혼자 다닙니다. 내 속도와 내 체력에 맞춰서 달려요. 그리고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눕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을 얻어도 좋고 못 얻어도 좋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하루하루를 즐거운 일상으로 채우고 있다는 건 이미 답을 찾은 걸 지도 모르거든요.    



반응형

'짠돌이 여행예찬 > 짠돌이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자전거길 예찬  (9) 2018.04.20
괴산 여우숲 여행  (15) 2018.02.23
대기발령과 바꾼 자전거 여행  (9) 2017.11.23
해운대 밤길 여행  (16) 2017.08.08
부산 육아 여행  (11) 2017.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