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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쥐뿔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법

by 김민식pd 2011. 1. 2.
난 평소에 술 담배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 골프도 치지 않고 돈들어가는 취미는 사절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행복은 소비에서 온다고? 그거  쌩구라다. 비싼 명품을 걸쳐야 폼이 나고, 비싼 술을 마셔야 기분이 나고, 비싼 레저를 해야 제대로 인생을 즐기는 거라고? 그건 다 거짓 행복이다. 참된 행복은 쥐뿔 가진 것 없이도 스스로 자족하는 삶이다. 쥐뿔 가진 것 없이도 즐겁게 사는 법?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참된 행복은 세가지 조건의 삼위일체에서 나온다.
‘하는 일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  ‘남보다 잘 하는 일이 있다.’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참 중요한 얘기다. 내가 쥐뿔 없이도 행복하다고 부르짖으니까, ‘백수의 행복론’에 대해 설파하나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만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하지 않고 누리는 행복은 그 어떤 경우에도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돈이 돈을 벌어 놀고 먹을 수 있다는 재테크의 환상? 그거 다 있는 것들이 자신들의 머니게임에서 없는 것들 삥뜯으려고 하는 소리다. 무엇보다 자신이 일하지 않은 대가를 누리고 사는 사람,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천하게 모은 돈은 끝이 구리다. 진정한 행복의 추구는 ‘노동의 즐거움’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일을 하고 싶어도 세상이 내게 일을 주지 않는다? 그거 당신 탓 아니다. 일찌기 제레미 립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말했다. 21세기는 기계문명과 정보화 혁명의 발달로 인류가 유사 이래 최초로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에서 자유로와지는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다만 그 유토피아는 자본과 생산수단을 가진 소수 자본가에게 유토피아일뿐, 없는 것들에게는 노동에서 소외되어 자아실현의 기회조차 없어지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일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연애의 처방과 같다. 쉼없이 들이대야 한다. 요즘에 비해서는 취업이 쉬웠던 1992년에도 난 취업 때문에 무척 고생했었다. 당시 8개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냈는데 7군데에서 서류전형도 통과하지 못했다. 전공이라봤자 자원 공학인데, 말이 좋아 자원공학이지, 원래 이름은 광산학과였다. 농부 어부 밑에 광부... 죽어도 광산 가기는 싫어 무역회사에 지원을 했는데,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하긴 전공도 다른데다 학점이 3.0도 안되었으니... 그래서 마지막에는 예나 지금이나 유일하게 전공 불문인 직업, 영업직을 지원했다. 다행히 면접에서 특유의 저돌성을 보여준 덕에 난 세일즈맨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취업, 분명 쉽지는 않다. 하지만 들이대고 또 들이대라. 마땅한 상대가 없어서 연애 못한다는 것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세상의 반은 여자다.

둘째,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 이 역시 참 중요하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데 중요한 요소다. 특히 ’하고 있는 일’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일치시킨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큰 행복을 얻게 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사회생활 20년 경험으로 볼 때, 한국 사회에서 열에 일곱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못하고 산다. 과장된 수치인가? 주위를 냉엄하게 한번 둘러보라.

그럼 과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추의 진자 운동’이다. 어떤 추가 한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다면 그 추는 자신이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한다. 이쪽 끝까지 가봤다가, 저 반대편 끝에도 가보고… 이런 진자 운동이 반복되는 가운데, 추는 어디에선가 자신이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 미친 듯이 공부도 해보고, 미친 듯이 놀아도 본 사람만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제자리가 아니라고 생각 하나? 그렇다면 반대편 끝까지 미친듯이 한 번 달려보라. 가봐서 아니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달려가는 길의 어디에선가 당신은 유난히 편안한 자리를 찾아낼 것이다.

내 경우, 영어 통역사라는 범생이 직업과, 세일즈맨이라는 활동적인 직업, 예능 피디라는 딴따라 직업, 그리고 드라마 피디라는 다소 아티스틱한 직업까지 두루 거쳐봤는데, 이렇게 다양하게 살아보는 거, 무척 재미있다. 
인생, 멈춰서는 순간 끝이다. 달려라, 끝없이. 결코 지금 있는 그 자리에 만족하지 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털고 일어서라.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 아닌가?

‘셋째, ‘남보다 잘 하는 일이 있다.’ 어찌 보면 경쟁에 찌든 한국 사회에 너무 흔하게 강요 당하는 조건일 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해도,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현재는 만족할 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아쉬움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즐기며 하는 일을, 남보다 더 잘 하게 된다면야!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걸?

라고 쓰기는 했는데... 이 글을 다음 카페 '시트콤 사랑'에 처음 쓴 게 2001년 10월 20일의 일이다. 당시 '뉴논스톱'을 연출하면서, 시청률이 좀 나왔나보다, 감히 이런 건방진 글을 다 쓴걸 보면... ^^ 10년이 지난 오늘, (한번의 조기종영과 몇번의 범작을 거친 후?) 난 마지막 세번째 행복의 조건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보다 잘 한다'는 것은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왜냐, 이는 상대 평가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잘 하는 것이 누구를 기준으로 한 것인가? 행복은 상대적 기준에서 나오지 않고, 절대적 기준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필요없이 비싼 옷에 돈들이고, 주제넘게 비싼 집을 빚안고 사들이고, 그러다 빚잔치에 삶이 더 찌질해져 가는 거 아닌가? 비교하지 말라. 그냥 혼자서 만족하면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행복의 세 번째 조건을 '남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산다해도,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 역시 공허한 즐거움이다. 진정한 행복은 세상에 봉사하고 이웃을 도우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의 연출의 목표는 남보다 더 잘하는 연출이 되기보다, 작가가 더 좋은 대본을 쓰도록 돕는 연출, 배우가 더 좋은 연기를 하도록 돕는 연출, 스탭이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도록 돕는 연출이다.

'하고 있는 일' '좋아하는 일' 그리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 이 셋을 일치시킨다면, 단언컨대, 쥐뿔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여러분도 새해에 한번 도전해보시라~ 뜻이 없지, 길이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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