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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

나는 무엇이 풍족할까?

by 김민식pd 2016. 10. 5.

2016-209 백수 산행기 (김서정 / 부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글이 가슴에 콱 와서 박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백수산행기'의 뒷표지 글이 그랬어요.

 

'불혹의 나이에 나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총각 때보다 27킬로그램이나 불어난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랬다. 어떤 이는 삼십대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쌓아 온 분야에서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한 채 현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아니 회사에 철저하게 손해만 끼친 채 물러나야 했기에 그 패배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무렵 문득 북한산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운명처럼, 도둑처럼, 연인처럼, 분신처럼, 또 다른 삶처럼 내 안에 북한산이 쓱 기어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책 뒷표지) 

 

'남들은 삼십대에 성공하기도 하는데 나는 무엇이 부족할까?

남들은 취업을 잘도 하는데 나는 무엇이 부족할까?

남들은 회사에서 잘도 버티는데 나는 무엇이 부족할까?'

 

이런 고민은 할수록 더 우울해집니다. 학교나 회사가 힘들어 그만둔 경우, 패배자가 된 기분입니다. 남들은 모두 다 바쁘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데 나는 혼자서 뭐하는 걸까? 집안에 틀어박혀 고민이 길어지면 인생이 척박해집니다. 고민을 접고 밖으로 나가야합니다.

오랜 직장 생활 끝에 어느날 백수가 된 저자는 문득 북한산을 찾습니다. 그냥 집에서 하루하루 보내는 게 지루해서 우연히 산을 오릅니다. 저기 산이 보이니까 오른거지요.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살면서 우리는 매일매일 북한산을 보지만, 정작 그곳에 오르겠다는 생각은 잘 못 합니다.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저자는 초반에 혼자 산을 오르며 고생도 많이 해요. 특히 총각시절보다 27킬로나 불어난 체중 때문에 고생이 심합니다. 정상체중보다 20킬로가 더 나간다는 건 20킬로짜리 쌀포대 하나 지고 산에 오르는 겁니다. 북한산에 다니기 시작하고 몇년 만에 20킬로를 뺍니다. 살 빼는데는 등산만한 게 또 없어요.

  

책을 보니 저자가 산을 처음 타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산에 가면 입산료를 1600원씩 냈다네요. 2007년 이후 북한산 매표소들은 다 탐방지원센터로 이름이 바뀌었지요. 이제는 국립공원 북한산이 다 공짜에요. 이토록 즐거운 '공짜로 즐기는 세상!' ^^ 저자는 길을 몰라 헤매기도 하고, 산에서 밤을 샐까봐 겁을 먹기도 합니다. 요즘은 길을 몰라도 별 지장이 없어요. 북한산 둘레길이 있거든요. 둘레길 표식을 따라, 나무에 달린 리본을 찾아 다니다보면 길을 잃을 걱정이 없습니다. 둘레길은 등산과 달리 길이 험하지도 않아서 초보 산행객에게는 정말 최고의 코스지요.

저는 언제가부터 사람을 잘 만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드라마는 언제 연출하니?' 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그래서 어떤 학교에 갈 거니?' '회사는 알아보고 있니?' 같은 질문이 얼마나 사람을 난감하게 만드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도 삼가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이 부족하기에 연출을 못 하는 걸까?'

이런 질문은 자신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질문을 바꿔야지요.

'드라마 연출을 하지 않는 지금, 나는 무엇이 풍족할까?' 

드라마 찍을 때랑 비교하면, 요즘엔 시간이 풍족합니다. 이 풍족한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고, 산을 오르고, 자전거를 탑니다. 

 

10월 3일, 야근하러 나가는 길에, 날씨가 하도 좋아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괴로운 출근길이 즐거운 자전거 나들이로 바뀝니다. 이럴 땐 꼭 중간에 한강 자전거 공원이나 월드컵 공원에서 쉬었다가 갑니다. 그래야 나들이 온 기분이 나거든요. 

 

회사 앞 월드컵 공원에 들렀더니 '서울정원박람회'가 열렸더군요. 갖가지 테마의 정원이 공원곳곳을 장식하고 있었어요.

 

정원마다 테마가 다 있어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나 창작자의 작업 공간 등, 다양한 테마의 정원을 구경하면서 전원 생활을 꿈꾸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내리는 정원'이라는 테마의 이곳이 좋았어요. 창밖으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를 보는 것같은 느낌. 이곳 의자에 앉아 몇시간이고 책을 읽다가 가고 싶네요. 마치 비오는 날 방구석에 앉아 창밖의 비를 보며 책을 읽는 기분일듯.

 

백수가 되었다고, '나는 무엇이 부족할까?'를 고민하면, 답이 없습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있거든요. 지금의 학교가, 회사가, 세상이 문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하고 좀 안 맞는구나. 이럴 때는 다른 세상을 찾아 나섭니다. 그게 산이어도 좋고 공원이어도 좋아요.

  

가을입니다. 이 좋은 날씨에 집안에서 틀어박혀 있을 틈이 없어요. 나가서 저 멋진 자연을 마음껏 즐깁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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