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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도서관에서 만난 책들

by 김민식pd 2016. 8. 29.

2016-196 작자미상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한스미디어)

 

올 여름은 미쓰다 신조를 발견하고, 호러 미스터리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난 덕분에 조금이나마 서늘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책을 읽다보면 목덜미에 차가운 바람이 스윽 하고 스치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작자미상은 단편 모음 같은 장편소설인데 이 또한 신조 선생의 장기지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수수께끼의 책이 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가장 큰 반전은 책 자체가 갖고 있는 비밀입니다. 작가 본인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메타픽션인데, 그 설정이 주는 재미도 있어요. 무엇보다 이 작가, 참 성실하네요. 단편 하나하나 그 반전이 꼼꼼하여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도 탁월하고, 호러 작가로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드는 묘사도 섬세합니다. 부지런한 작가님, 내년 여름에 또 만나요~^^

 

2016-197 바텐더 (윌리엄 래시너 / 김연우 / 피니스 아프리카에)

 

아들이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어요. 그는 최근 바람을 피운 아버지가 어머니의 살인범이라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하지만 형은 아버지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두 형제는 만나면 싸워요. 어머니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 아버지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살인범, 아버지를 신고한 동생, 동생이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믿는 형. 이 집, 여간 콩가루 집안이 아니지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바텐더로 일하는 동생 앞에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납니다. “내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어. 그래서 고백하는 건데... 실은 내가 니 엄마를 죽인 사람이야.”

오래 전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가 생각나는 소설입니다. 어머니를 죽인 진범을 쫓는 아들의 이야기가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끝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 대박이에요!

 

2016-198 최악의 외계인 (츠츠이 야스타카 / 이규원 /작가정신)

 

작가 자신이 직접 뽑은 걸작 단편집입니다. 이 뒤죽박죽 SF를 추천받은 건 오래전 일인데, 이제야 읽었네요. 간담 서늘한 맹독성 유머와 블랙 코미디가 정상과 광기 사이를 오갑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라는데요. 상상력의 스케일이 보통이 아니네요. 일본에서는 이런 소설이 1974년에 나왔구나. 새삼 일본 장르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에 혀를 두르게 됩니다. SF를 읽다가 배꼽 빠지도록 웃는 경험!

 

2016-199 담요 (크레이그 톰슨 / 박여영 / 미메시스)

 

엄격한 기독교 전통을 따르는 집과 학교에서 자라며 화가의 꿈을 키우는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입니다. 미대에 진학하는 게 꿈이라니까 학교 선생이 반대합니다. “사람들의 벗은 모습을 그리는 건 죄악이야.” 사랑을 시작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육신의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모태 신앙을 갖고 태어났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크리스천보다 아티스트에 있다고 고민하는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이야기. 성장통의 괴로움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 아닐까요? 600쪽에 육박하는 만화인데, 그림도 좋고 대사도 좋아요.

 

처음 공립 도서관에 갔던 날, 나는 공짜로 사탕을 나눠 주는 사탕 가게에 들어선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소화불량이 될 때까지 닥치는 대로 책을 집어삼켰다.’

(위의 책 551)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는데요. 역시나 힘들었던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도서관은 길을 잃은 이들에게 언제나 피난처구나 하고 느꼈어요. 지금도 도서관은 제게 구원의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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