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논스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7.04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실패 (5)
  2. 2012.06.19 연애는 나만의 조인성을 만드는 것 (11)
  3. 2012.01.27 쪽대본, 불륜, 막장, '한드'를 위한 변명 (10)

(PD연합회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조금 분량이 길어요~^^)

 

나의 인생, 나의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떠오른 작품은 나의 데뷔작인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이었다. 피디로서 처음 만든 작품인지라 애정도 많고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 상을 안겨준 작품이라 고마움도 큰 작품이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 글쓰기에 대해 즐거운 일보다는 괴로운 일이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인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방향을 바꿨다. 내 인생의 성공작이 아니라 최고의 실패작에 대해 글을 쓰기로.

 

10년 전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당시 패기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시트콤 연출가였다. ‘뉴 논스톱에서 논스톱 3’까지 2년 반 동안 청춘 시트콤을 만들며 30분짜리 에피소드 500편을 만들었다. 둘 다 시청률 7,8%에서 시작해서 20%를 넘겼다. 시트콤을 만드는 노하우를 얻었다고 자신했지만, 연출가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자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MBC 무한도전의 독무대가 된 토요일 저녁 7, 당시에는 KBS 2스펀지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 들어갔다가 판판이 깨지고 물러나던 시절, 예능국에서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버라이어티로 붙어 질 바엔 아예 다른 카드를 내보자. 주간 시트콤을 이 시간에 방송해보자. 그 편성 계획을 듣고 나는 부리나케 국장님께 달려갔다. ‘저를 써주십시오. 논스톱 때 매주 5편씩 연출하느라, 때로는 방송의 퀄리티에 대해 아쉬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12부작짜리 주간 시트콤을 연출할 기회를 주신다면 작품성이 뛰어난 프로그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나는 MBC 입사하기 전, 외대 통역대학원을 다녔다. 국내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영어 실력으로 동시 통역사가 되려고 고군분투했다. 회화 테이프를 듣고 받아쓰고 대화를 달달 외우며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해서 국제 컨퍼런스에 통역을 하러 갔는데, 연사가 갑자기 조크를 하면 그걸 어떻게 옮길까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갔다.

제가요, 연사가 조크만 하면 실력이 딸리거든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미국 시트콤을 많이 보세요. ‘프렌즈사인펠드같은 시트콤을 자주 보면 생활 영어 표현도 늘고 미국식 유머 감각도 익힐 수 있을 거예요.”

 

교수님의 충고에 따라 시트콤을 열심히 봤는데, 봐도 그만 너무 많이 봤다. 시트콤에 중독되는 바람에, ‘이렇게 재미난 시트콤이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1995년 여름 당시 한국형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나 가족 시트콤의 원조 순풍 산부인과가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래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시트콤 피디로 전직했다.

 

 

뉴 논스톱을 만들던 시절, 연출로서 아쉬움이 많았다. 미국 청춘 시트콤 프렌즈의 광팬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더니 누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피디가 프렌즈마니아라고 하는데 왜 정작 자신은 프렌즈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저질 시트콤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시청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연출답게 나는 바로 답글을 달았다. ‘프렌즈는 시즌제 주간 시트콤이지요. 논스톱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일 시트콤이구요. 프렌즈는 1년에 24편 만들고, 저는 1년에 200편 만듭니다. 프렌즈 피디더러 한국 와서 이 스케줄로 한번 만들어보라고 하세요.’

 

정말이다. 난 당시 야외를 하루에 30개 씬을 찍었고, 스튜디오 녹화는 일주일에 단 하루였는데, 80개 씬을 새벽 2시까지 다 끝냈다. 시트콤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는 속성상 밤을 새고 녹화를 하면 촬영장 분위기가 다운되어 대본의 재미를 살릴 수 없다. 난 지금 가끔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정말 미친 속도감으로 시트콤을 찍어댔다고 생각한다.

 

시트콤의 오랜 마니아로서 직접 논스톱 시리즈를 만드는 과정은 즐거웠다. 다만 문제는 그 즐거움이 끝이 나질 않는다는 거. 20006월에 망해가는 시트콤 논스톱에 조연출로 합류했다. 당시 가문의 영광논스톱이 방송 3개월도 못 채우고 연속으로 조기종영하던 시절이었다. 너무 빨리 끝난 논스톱에 이어 새 청춘 시트콤 이름을 지어야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거다. 그래서 그냥 논스톱에다 자 하나 붙이고 주인공 바꿔서 새로 시작했다.

 

뉴 논스톱은 방송 초반, 양동근 박경림의 투톱 코미디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 후, 조인성 장나라 두 명의 슈퍼 루키를 투입해 단번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봄에 평균 시청률 7,8% 로 시작했다 겨울에는 20%를 넘겼다. 신인이었던 출연자들이 떠서 드라마나 영화로 넘어가고, 나 역시 1년 반 넘게 논스톱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스톱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논스톱이라는 제목에 를 빼고 ‘3’를 뒤에 붙여 계속 하라고 주문했다. 제목처럼 논스톱으로 계속 가라는 거지.

 

논스톱 3’을 시작하면서 나는 작가들을 모아 대본을 만들고 감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2년 반 동안 논스톱을 만들었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야외 조연출로 시작해서, 스튜디오 녹화, 궁극에는 대본 작업까지, 시트콤 제작에 관한 모든 과정을 맡아서 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연출로서 행복한 시절이었다. 다만 논스톱이라는 제목 탓인지 도무지 프로그램이 끝날 기미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2년 반 동안 500편의 이야기를 만들자 아이디어 고갈이 심각했다. 회사 측에 양해를 얻어 논스톱에서 빠지고 주말 버라이어티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옮겨 갔다.

 

고백하자면, 난 내가 빠지면 논스톱도 끝날 줄 알았다. 아니더라. 논스톱 4, 논스톱 5, 끝도 없이 잘만 되더라.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논스톱의 성공은 내가 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청춘 시트콤을 만드는 MBC 예능국의 시스템의 힘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30대 초반의 나는 아직 어려 그걸 몰랐다. 그 무지의 결과는 내 인생 최대 참담한 실패작, ‘조선에서 왔소이다로 이어졌다.

 

일일 시트콤을 연출한 내게, 12부작 주간 시트콤은 매력적인 기회였다. 새로운 시간대와 새로운 포맷에 걸맞은 새로운 시트콤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시트콤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야기가 새로우면 된다.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은 궁극의 시트콤이 있었다. 이른바 시간 여행 시트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이야기. 내가 타임머신에 꽂힌 데에는 사연이 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UFO를 봤다. 당시 우리 집 옥상에서 친구들과 놀던 나는, 환한 대낮에 하늘을 날아가는 세 개의 빛을 보았다. 그 빛은 문득 멈춰 서서 한참을 같은 자리에 떠 있다 갑자기 세 방향으로 흩어졌는데, 그 물체가 날아가는 속도나 모양 등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안 온다.

 

내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외계인의 비행접시라고 보기엔 우주는 너무 넓다.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인 시리우스만 해도 그 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8.6년 걸린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8.6년이 걸리는 거리, 81조 킬로미터 떨어져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의 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4년에서 4000년 사이란다.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직선거리가 이 정도라면 그 사이에 있는 공간은 얼마나 광활하고 넓겠는가. 이 넓은 우주에서 누군가 지구를 찾아내어 그 먼 거리를 날아 찾아오기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 그 UFO는 누가 보낸 것일까? 혹시 우리 자신이 보낸 게 아닐까? 이 지구에 사는 미래의 인류가 과거의 역사를 탐방하기 위해 보낸 탐사선이 UFO 아닐까? 우주여행을 하려면 빛의 속도, 혹은 그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야 겨우 태양계나 우리 은하를 벗어날까 말까 한다. 내가 만약 미래의 과학자로서 광속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든다면 저 텅 빈 광활한 우주를 헤매어 다른 생명체를 찾기보다 오히려 과거로 우주선을 보낼 것 같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광속 이상으로 여행하면 시간을 거꾸로 가는 것도 가능하니까.

 

어려서 UFO를 목격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축복 중 하나다. UFO를 본 후, 인생이 아주 즐거워졌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몰입이 쉬웠다. 우주 전쟁이고, 시간 여행이고, 마법사고, 무엇이든 내게 다 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UFO도 있는데, 세상에 뭐가 불가능하겠어? 그런 자세로 살다보니 책읽기가 즐거웠고, 온갖 상상과 공상을 즐기다보니 자연스레 SF에 빠지게 되더라. 통역대학원 다닐 때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에 빠져 직접 번역까지 했다. 평생 500권의 책을 낸 아시모프, 경이로운 필력을 보면, 그야 말로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시트콤을 만들어보라는 지시가 나왔을 때, SF 시트콤을 바로 떠올렸다. MBCPD가 많지만 SF가 좋아 번역까지 해 본 이는 나밖에 없으니, SF를 소재로 시트콤을 만들어야겠다.

 

 

 

 

조선 시대 양반과 상놈이 타임 슬립을 통해 21세기 서울에 떨어진다. 팽팽 놀고먹기만 했던 양반 선비는 할 줄 아는 게 쥐뿔도 없고, 양반 체면에 일을 하지도 않는다. 양반은 나날이 행색이 초라해져 거지꼴이 되어가고, 그 양반을 모시던 몸종은 현대에 와서 갑자기 귀하신 몸이 된다. 심심풀이 삼아 지푸라기로 짚신을 꼬면, 민속학자가 보고 아니 400년 전 소실된 꽈배기 짚신 꼬기 기술의 전승자가 아직 있었다니, 인간문화재가 나타났다!” 난리를 친다. 나무를 하다 바위틈에서 조그만 애기 삼을 보았는데, 몇 년 더 키워 어머니 몸보신이나 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숨겨놓았다. 타임 슬립으로 현대에 와서 그 자리에 가보니 400년 묵은 산삼이 되어 삼식이를 떼부자로 만든다. 이렇게 양반과 종놈은 현대에 와서 신분이 바뀌어 간다.

 

종놈 삼식이는 21세기 서울이 바로 천국이다. 신분의 차별도 없고, 능력에 따라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이런 사회. 이건 어려서 꿈꾸던 율도국이 아니던가. 양반 윤덕형에게 서울은 지옥이다.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무심히 역사책을 뒤지다 자신의 노름 친구인 봉림대군이 왕으로 즉위한 사실을 알게 된다. 형인 소현세자의 급사로 봉림대군이 왕이 된다니!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야겠다. 21세기에 와서 읽은 역사책을 토대로, 미래를 예견하는 왕의 책사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어야겠다.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방법이 있다면,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방법도 있으렷다? 여기서 안박사가 등장한다. 안박사는 타임머신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실험을 진행하다 그만 잘못되어 자신이 과거로 가는 대신 과거의 두 사람을 현재로 불러오고 말았다. 윤도령을 위해 과거로 돌려보내려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주의 힘에는 평형을 이루려는 작용이 있어, 둘이 과거에서 왔다면, 돌아가는 것도 둘이 함께 여야 한다는 것.

 

그러나 종놈 삼식이는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양반 상놈 없이 모두가 평등한 지상낙원을 두고 왜 조선시대로 돌아간단 말이냐. 그런 삼식이에게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온다. , 21세기 서울은 돈이 양반이고 사람은 죄다 돈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종놈이구나. 여기도 사람 살 곳이 못 되는구나.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조선으로 돌아가려는데........ 과연 안박사는 두 사람을 돌려보낼 수 있을까?

 

안박사는 어쩌다 타임머신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을까?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위해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머니는 그가 열 살 때 돌아가신다. 의사의 꿈을 버리고,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타임머신을 만들어 어머니 살아생전 과거로 돌아가는 게 꿈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중환자실에서 어느 의사에게 하신 말씀이 어린 마음에 사무치게 남았다.

이제 겨우 열 살 된 우리 아들, 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걸 못 보고 가는 게 제일 안타깝네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장성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안박사의 꿈이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타임머신이 제대로 작동해, 20년 전 과거로 날아가는 안박사. 의사 가운 하나 걸쳐 입고 새로 온 인턴인양 어머니의 병실에 들어가는데 막 문을 열고나오는 어린 시절 자신과 스쳐지나간다.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에게 애써 담담하게 말을 건넨다.

방금 나간 아이가 아들인가 보죠?”

, 이제 겨우 열 살 된 우리 아들, 저 아이가 잘 커서 어른이 되는 걸 못 보고 가는 게 제일 안타깝네요.”

무심한 듯 이어지는 안박사의 말.

어머니, 제가요, 관상을 좀 보거든요. 제 눈에는 저 아이의 미래가 눈에 선하게 보여요. 아마 중학교에 가면 과학영재 대회에 나가 장관상을 받을 거예요. 고등학교에 가면 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을 공부하고, 스무 살이 되면 웜 홀을 이용한 타임머신이라는 걸 연구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재미난 친구들도 만나죠. 윤도령과 삼식이라고.”

안박사는 관상을 핑계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긴 이야기가 끝이 나자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눈을 감는다.

고마워요, 이렇게 찾아와줘서.”

 

이렇게 죽이는 엔딩 장면은 끝내 방송을 타지 못했다. 12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방송 4회 만에 조기종영 결정이 내려져서 7회에 방송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실패는 오로지 내 탓이다. 나의 욕심과 열의가 너무 과도한 탓이었다. 제작을 준비하며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다들 피디가 직접 만든 기획에 대해 부담을 표했다. 작가란 자신이 직접 만든 캐릭터로 대본을 써야 이야기가 술술 풀리는 법인데, 연출이 만든 스토리 원안에 살을 붙이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경륜 있는 연출이라면, 내가 말한 기획안을 듣고 작가가 난색을 표했을 때 감을 잡았을 것이다. ‘, 이 이야기가 아직은 대중들에게 매력이 없구나.’ 그러나 나는 당시 한 번의 성공 경험밖에 없는 즉, 실패가 예비 된 연출이었다. 기성 작가를 포기하고, 방송 기회만 준다면 무엇이든 써보겠다는 신인 작가를 찾아 일을 시작했다. 작가의 경험이 부족하면 어때, 여차하면 내가 쓰면 되지 뭐, 하고 들어갔는데 완전 판단미스였다. 일주일에 2일 촬영 준비하고, 4일 찍고, 하루 편집하면 시간 다 간다.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대본을 쓸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연출이 직접 대본을 쓰다 보니 뭔가 이야기에 허점이 있어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역시 무모한 자신감과 오만은 필패로 가는 최단 코스다.

 

조기종영 당한 후, 정말 괴로웠다. 한동안 바깥출입을 못할 지경이었다. 나름 뉴 논스톱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도 받고 잘 나가는 피디인 줄 알았는데, 내가 이리도 재능 없는 연출이었다니.......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송창의 선배님이 부르셨다. 홍대 나와서 술 한 잔 하자고. 술자리에서 송 선배님이 대뜸 그러셨다.

민식아, 쪽팔려 죽겠지? 근데 난 말이다. 이번에 네가 쫄딱 망한 게 정말 잘 된 일 이라고 생각한단다. 완전 운 좋은 거지. 축하할 일이야, 이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발딱 쳐들었다.

, 선배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후배는 지금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송 선배님이 잔에 술을 채워주셨다.

민식아, 네가 지금 몇 살이니?”

서른일곱인데요.”

캬아~ 망하기 참 좋은 나이다. 네가 말이야, 이번 작품도 성공했다고 치자. 그럼 넌 아주 기고만장해 지겠지? 막 신이 나서 달려. 그러다 나이 40 넘어 어느 날 한번 망하잖아? 당연히 망하겠지. 야구에서도 공 10개 중 3개만 쳐도 3할 타자라고 칭송받는데 말이야. 피디 중에 시청률 한 번도 안 망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없잖아? 누구나 망해. 그런데 너무 나이 들어서 처음 망하잖아? 그럼 재기가 불가능해. ? 이미 스타일이 굳어버렸거든.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나이가 돼. 주위를 둘러봐라. 사업하다 30대에 망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재기에 성공하는데 50 다 되어 망한 사람들은 그냥 폐인으로 살다 간단다. 기왕에 망할 거라면 30대 후반, 아직 다시 일어날 힘이 있을 때 망해야지. 그런 점에서 넌 아주 운이 좋은 거라니까?”

 

단언컨대 나는 그 시절, 시트콤 대가의 애정 어린 충고가 절대 순순히 들리지 않았다.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와 닿는 말씀은 아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돌아보니, 시련을 겪고 있는 후배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송창의 선배님께는 정말 감사드린다.

 

조기종영이 내게 가져다 준 의외의 선물이 있다. 바로 스노보드라는 취미다. 당시 난 10년 넘게 스키만 탔다. 스키를 타면 최상급 코스에 올라가 멋진 자세로 타고 내려오는데, 굳이 보드를 새로 배우고 싶지 않았다. 초보자 코스에 가서 무릎 꿇고 앉아 비굴한 자세로 보드를 배우기는 싫었다. 이 나이에 초보자가 뭐야. 조기종영을 겪은 후,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현재 내가 잘하는 것만 하고 살기에 남은 인생이 너무 길다. 새롭게 즐기려면 기초에서부터 배우는 일도 마다하지 말아야지. 갑작스런 종영 후, 시간이 남아돌아 겨울 내내 스노보드를 배우며 마음의 상처를 달랬다. 늙어서 살짝 위험한 레포츠를 배우면 집중할 수밖에 없기에 딴 생각이 들지 않고 고민이 사라진다. 참 좋다. ^^ 요즘은 해마다 스키장 시즌권을 끊어 스키와 보드를 번갈아 타며 겨울을 보내는데, 이게 다 조선에서 왔소이다조기 종영 덕분이다.

 

(시즌권 사진 보고 딸이 막 웃었다. '아빠, 표정이 왜 이래?'

생긴게 약하면 설정으로 가야한다. ^^)

 

훗날 나이 마흔에 드라마국으로 이직하게 된 것도 시트콤 조기종영 덕분이다. 드라마국 피디 사내 공모에 지원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드라마 갔다가 망하면 어떡할래?’ 망한다고 죽는 건 아니더라. 조기종영도 당해봤는데 뭐가 무서워. 만약 연속 흥행을 이어가는 시트콤계의 스타 피디였다면 드라마로 옮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잘 하는 것 놔두고 굳이 새로 시작할 이유가 없으니. 하지만 망해보니 알겠더라, 어차피 망할 거라면 새로운 거라도 도전해보자. 서툴러서 망했다는 핑계라도 있을 테니.

 

조선에서 왔소이다가 망한 후 깨달았다. PD는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도 직접 대본을 쓰지 않는 한 좋은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는 없다. 좋은 작가일수록 남이 만든 이야기를 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만든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니 좋은 대본을 찾는 것이 좋은 연출의 첫 걸음이다.

 

드라마 연출로 나는 재미난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산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그것만 들여다보며 산다. ‘조선에서 왔소이다이후에도 바뀌지 않은 건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생각이다. 기왕에 망한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 망하는 편이 나으니까.

그리고 ......... 망해도 죽지는 않으니까. ^^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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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가 남시언 2014.07.04 14: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 열매맺는나무 2014.07.05 14: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패, 일어날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 좋지요. 50대에 넘어지면 대부분 재기하기 어렵다고 하니까요.
    좋은 선배님의 좋은 충고였습니다.

  3. 時代遺感 2014.07.06 2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 들어 쏟아지는 타임워프 드라마들을 보면, 피디님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분이신 거에요. 그 시대에 주간 시트콤으로 타임워프 드라마가 성공했다면, 인현왕후의 남자나 나인 같은 명작이 나왔을까 싶기도 하구요. 요즘에사 느끼는 거지만 tvn의 드라마들이 꾸준히 성공하는 것을 보면 이제 우리의 방송환경도 조금은 다원화되었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지상파들은 더욱 긴장해야할 거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김민식pd 2014.07.08 0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감히 부끄러워 글 본문에서는 트렌드를 앞서갔다는 얘기는 못했는데, 댓글로 콕 집어주시는 박선생님의 센스! 늘 감사드려요~^^

  4. KALYU 2014.09.14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정을 가자고 즐겁게 사사는 PD 님이 부럽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캐스팅은 연애다. 오디션은 만인의 연인을 찾는 과정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처음 피디가 되어 만든 게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이다. 첫 작품이니만큼 캐스팅 욕심이 많았다. 어떻게든 최고의 스타를 섭외해서 초호화 출연진을 꾸리고 싶었다. 하지만 톱스타들 중 누구도 청춘 시트콤에 나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망가지는 코미디 연기 잘못했다가 이미지 망치는 수가 있으니까. 

 

답답한 마음에 섭외의 달인이라는 선배를 찾아갔다. 그래서 톱스타 캐스팅을 도와달라고 졸랐다. 그 선배님의 말씀. '지금 네가 이름없는 신인 PD인데 스타 캐스팅한다고 정우성한테 가서 백날 졸라봐라, 그게 되나. 절대 안 먹힌다. 왜? 이미 정우성 앞에는 너같은 PD가 수십명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거든. 그런데 말이야, 피디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지. 그 정우성도 10년 전에는 오디션마다 쫓아다니고 퇴짜맞은 신인이었다는 거.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정우성을 쫓아다니는게 아니야. 10년 뒤 정우성이 될 신인을 찾는 거지.'



그래서 오디션으로 발굴한 게 조인성이다. 사실 조인성도 완전 신인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몇번 시트콤에 나왔다가 반응이 없었던 친구였다. 논스톱 출연 초반에도 게시판 반응이 좋지 않아 기가 좀 죽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촬영장에서 조인성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이 친구는 10년 뒤, 제2의 정우성이 될 친구다. 그러니 지금 정우성처럼 아끼고 사랑하자. 그러면 배우도 자신감을 찾을 것이고, 언젠가는 대중도 그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연애란 그런 것이다. 정우성을 쫓아다니는 것만이 연애가 아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정우성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를 정우성 못지않은 조인성으로 만드는 게 진짜 연애다. 

 

기왕에 '뉴논스톱' 캐스팅 얘기가 나왔으니 한가지만 더. 논스톱 멤버들을 모아놓고 보니 다들 신인들이거나 아역 출신 배우들이었다. 좀더 화제성있는 신인이 없을까 찾다가 우리가 눈독 들인 배우가 하나 있다. 바로 원빈이었다. 10년전의 원빈! 

 

섭외의 달인인 선배에게 원빈의 캐스팅을 부탁했다. 그 선배, 흔쾌히 '정우성은 어려워도 원빈은 데려올 수 있지!'라고 큰소리 치더니 소속사로 달려갔다. 작가와 피디들은 가슴을 졸이며 원빈의 캐스팅을 기다렸다. 다음날 선배가 와서 하는 말. '야, 안돼~ 원빈은 시트콤에 안 맞대. 대신 양동근이라는 애가 있는데, 시트콤에는 걔가 더 어울린데. 그래서 원빈 대신 양동근 하기로 했어.'

 

당시 회의실의 반응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원빈 섭외하러 가서 양동근을 캐스팅해오다니... 하지만 난 가끔 생각한다. 양동근 없이 뉴논스톱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양동근의 발탁은 정말 최고의 캐스팅이었다.

 

연애란 그런 것이다. 지금 정우성이 아니라, 5년 뒤 나만의 정우성이 될 남자를 찾는 것이다. 다들 원빈만 쫓아다닐 때 양동근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다.

 

연애하라 하면, 다들 연애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인류를 모독하지 마시라. 전세계 인구 중 절반이 이성이다.

연애는 상대의 문제가 아니다. 안목의 문제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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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정현 2012.06.19 0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반성하게 되네요 많이 공감합니다

  2. mrdragonfly1234 2012.06.19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 논스톱을 시청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양동근 같은 배우들이 원빈같은 배우보다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전부 원빈을 훨씬 더 좋아하는것 같애요... (제 집사람부터..^^ ) "와, 정말 잘생겼다" 하면서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면 옆에서 뭐라고 하는게 좋겠습니까? 욘사마 한창때는 욘사마 비디오를 몰래 빌려다 열심히 보더군요..( 나 몰래) - "나는 원빈 보다 양동근이 좋던데, 양동근 나오는 비디오로 빌려와 !! " 이렇게 말했지요 !!

  3. 2012.06.19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안목의 문제 2012.06.19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좋은 말이네요. 안목... 좋은 밤 되세요.

  5. 2012.06.26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Makgun 2018.03.31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글로 배워갑니다~


(프레시안 북스에 기고한 서평입니다.)

PD로서 내가 들은 가장 신랄한 혹평은 예전에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을 연출할 때, 누군가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김민식 PD는 자칭 시트콤 마니아며,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열렬한 팬이라고 하면서 왜 정작 자신이 만드는 시트콤은 <프렌즈>보다 훨씬 떨어지는 저질 시트콤인거죠?"


'시청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절한 연출'이라고 자부하는 나는 바로 댓글을 달았다.

"미국의 <프렌즈>는 1년에 24편 만듭니다. <논스톱>은 일일 시트콤이라 1년에 200편 넘게 만들고요. <프렌즈> 편당 제작비는 수십억이고요, 저희는 편당 1500만 원입니다. <프렌즈> PD보고 이 돈 갖고 1년에 200개 만들어보라고 하세요. 쉽지 않을 걸요?"


이런 후안무치한 소리를 변명이라고 했다니, 이제와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그 시절엔 그게 나의 생각이었다. 당시에 BBC에서 온 프로듀서랑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니?" "I am a daily sitcom director." "일일 시트콤이라고? 그런 포맷도 가능해?" (외국의 시트콤은 다 주1회 방송한다.) "응, 한국에서는 가능해." "넌 정말 빨리 찍는가 보구나. 비결이 뭐니?" "난 포기가 빨라."


가슴 아픈 얘기지만 일일 시트콤을 연출하려면 포기가 빨라야 한다. 장소가 마음에 안 들어서, 대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날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촬영을 접어야 하는 이유는 수만 가지지만, 그래도 오늘 중으로 촬영을 끝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안 그러면 내일 방송 펑크다.


쪽 대본, 초치기, 불륜, 막장… 연출도 이런 수식어가 드라마 앞에 붙는 게 싫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어쩔 수 없다. 일주일에 5개를 만들어야 그만큼 광고 시간이 확보가 되고, 광고를 팔아야 제작비가 나올 것 아닌가. 내가 진정한 예술가라면 타협하지 않고, 완벽한 작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지만, 매일 방송 시간이라는 마감은 어김없이 닥쳐온다. 대본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고, 촬영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어느 순간 절필 선언을 하고 산으로 도망갈 수도 없지 않은가? 드라마 연출, 생각하면 참 뻔뻔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직업이다.


비슷한 이유로, 이번에 나온 책, 김환표의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인물과사상사 펴냄)를 읽는 것이 처음에는 망설여졌다. 신문 한 구석의 TV 비평으로 읽기도 불편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질타를 두꺼운 한 권의 책으로 읽어내는 것, 이거 드라마 PD의 자학 아닌가? 나는 뒤가 많이 구린 용의자의 심정으로 책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정말 방대한 증언과 자료를 내 코앞에
들이댄다. 이름난 선배의 숨겨진 일화를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때로는 부역의 증거 같아 가슴 아프기도 하고, 막장 연속극을 향한 비난을 열거할 때는 피해 진술서를 읽는 듯이 쿡 쿡 찔렸다. 책을 읽으며 나는 저자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 한국 드라마, 이렇게 용의주도하고 집요한 검사를 만났으니, 잘못 걸렸구나!


사실 드라마를 비평하기란 쉽다. 기본적으로 한국 국민은 '투잡'을 뛴다. 하나는 본인 직업, 하나는 드라마 비평가. 술자리에서 가장 씹기 좋고 안전한 안주가 드라마다. 정치나 종교 문제를 토론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좌중에 연기력이 부족한 미남 배우의 열혈 팬만 없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전문가의 역할은 더 빛이 나는 법이다. 지은이 김환표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자신만의 논리를 전개한다. 역시 전문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이 한국 드라마의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쪽 대본, 초치기, 막장, 불륜, 열악한 제작 환경 등 다양할 것이다. 용의자의 입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변명은 하나다. 다 한국 방송 시장이 작은 탓이다. 우리도 미드(미국 드라마)나 일드(일본 드라마)처럼 일주일에 방송 한 편 만들면, 명품 만들 수 있다. 영어권 드라마처럼 해외 판권 시장만 크다면 다양한 소재에 도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 시장은 1억 명도 안 되는데 그나마 반으로 쪼개져있어 북한에는 판매도 안 된다. 결국 한정된 제작비로 광고 판매를 극대화하자니, 1주일에 두 편 아니면 다섯 편씩 만들어내야 한다. 빨리 찍자니, 통제와 카메라 세 대 동시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에서 녹화할 수밖에 없다. 세트에서는 그림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독한 대사와 설정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에는 유독 일일 연속극이 많고 연속극은 막장으로 가기 쉽다.


재주 많은 드라마 작가는 누구나 처음에는 주인공에게 시련을 안겨주고 나중에는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도록 이야기를 전개한다. 김환표가 그리는 한국 드라마가 걸어온 길도 비슷하다. '저속 퇴폐' '충성 경쟁' '자기 검열'라는 역경을 딛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국민의 사랑을 바탕으로 조금씩 성장해 간 결과, 한국 드라마는 '한류 열풍'이라는 세계적 성공 스토리를 일구어낸다. 한국 드라마가 걸어온 길은 어찌 보면 시청자가 그토록 드라마에서 원하는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작가의 시선에서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냉혹한 검사인 줄 알았더니, 누구보다 나의 입장을 잘 알고 대변해주는 친절한 변호사였구나! 즐거운 독서를 마치면서 허락된다면 피의자 최후 진술을 하고 싶다.

"한국 드라마, 이제까지 잘못한 점도 많지만,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면 앞으로 더욱 잘 하겠습니다."

멘트는 식상하지만, 진심이다. 이렇게 열심히 드라마 문화사를 기록하는 학자가 있으니, 연출들도 앞으로 더욱 긴장해서 열심히 만들 것이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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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벽다방 2012.01.27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이 글 진짜 마음에 들어요! 파이팅! 힘내세요!

  2. 희망고문 2012.01.27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죠. ^^ 3일을 굶고 링 위에 올랐든 3일 밤을 뜬 눈으로 찾아왔든 그 선수가 링 위에 서 있는 그 순간은 오직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니까요. 우리나라 최초로 월드컵에 나간 조상님들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혹시 야구였을지도 몰라요. 제 기억은 늘 이 따위... ㅋㅋ) 화물칸이든 뭐튼 칸칸이 나눠 타고 나간 세계 대회. 결과는 참혹한 스코어. 하지만 그들이 있어서 오늘이 있고 그래서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드라마죠. 제가 사랑하는 드라마 전세계가 열광하게 만들어 준 프로들! 언젠가 저도 아마츄어가 아니라 세계 챔피언을 꿈꾸는 막장 환타지 휴먼 드라마 해보고 싶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

  3. 여강여호 2012.01.27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명 속에 담겨진 희망을 봅니다.

  4. 민정 2012.01.27 2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책 볼까말까 (피디님과 같은 이유로) 고민했었는데 서평을 보니 욕심이 나네요. 진짜 비평가는 비평하는 대상에 애정이 가득한 사람인 것 같아요 ㅎㅎ

  5. 5252 2012.05.30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에서 드라마 제작에 규모의 지원이 가능한 이유는 뭔가요? 제작 문화의 차이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건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