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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29 자주 많이 웃는 게 성공이다. (24)

나이 70에 한글을 배우는 칠곡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 <칠곡 가시나들>. 할머니들이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의외의 장애물이 있는데요. 그건 바로 자식들이랍니다. 말리는 아들 딸이 그렇게 많대요. 

"에이 엄마, 힘들게 그걸 왜 해요. 스트레스만 받지."

"아빠 거기 가지 마시라니까. 추운데 넘어지면 큰일 나요."

"참 엄마도 주책이다. 그분들이랑 같이 다니지 마세요."

서울에서 젊은 사람들이 카메라 들고 내려와 촬영한다니까, 이상한 약장수들이 시골 할머니한테 사기치려고 그런다는 자녀도 있어요.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 (김재환 지음 / 주리 그림 / 북하우스)

김재환 감독은 영화 개봉 후 이런 질문을 받았대요.

"오랫동안 할머니들을 지켜보셨는데 우리 시대의 효는 구체적으로 뭐라 생각하세요?"

"효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겠지요. 할머니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자녀들의 전화와 에너지를 주는 리액션이더군요. 저도 많이 반성했어요. 그런데 나이 든 부모님들의 설렘을 가장 방해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자녀들입니다."

(53쪽)

이 대목을 읽다 문득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 자녀들의 설렘을 막은 건 부모겠지요. 

"뭐? 사표 내고 산티아고를 간다고? 아서라, 말아라!"

"지금 네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이건 자녀들의 역습인가요? 설렘을 방해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김재환 감독은 원래 의미있는 사회 고발성 영화를 많이 찍었어요. <트루맛쇼> <MB의 추억> <쿼바디스> 등등. '재미있게 살고 의미있게 죽자'라는 생각으로 살던 저자는 할머니들과 몇 년을 보낸 후, 생각을 바꿨대요. '재미있는 게 의미있는 거다.'로. 자식이 재미있어 하면, 그냥 하도록 놔둬야 하고요. 부모님도 마찬가지예요. 살면서 가슴 설레는 일을 만날 기회가 그리 흔치 않거든요. 책에는 60넘어 한글 공부를 시작해, 시를 짓기 시작한 할머니들의 작품이 여럿 수록되어 있는데요. 영화 <칠곡 가시나들>에 나온 시도 반가웠지만, 처음 만난 시도 많았어요. 그중 가장 재미난 시 한 수 올립니다.


'어휴 저 화상 

- 노정임

 

평생 돈을 벌지 않는 저 화상

가장인데 노력하지 않는 저 화상

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저 화상

아이들과 추억이 없는 저 화상

어휴 저 화상

보기만 하면 자꾸 미워지는 저 화상

나와 결혼한 지 어언 38년 저 화상

젊어선 참이슬 마셔대던 저 화상

이젠 건강 생각해서 소주를 막걸리로 바꾼 저 화상

그래도 어쩌겠나 저 화상

나 없으면 불쌍한 저 화상

남은 삶도 으르렁 같이 살아야지 저 화상

(59쪽)

이 시를 들려드리면 할머니들의 반응이 다양합니다. '그 새댁은 화상이라도 있어서 참 좋겠네 하는 소수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죽은 영감 얼굴 꿈에 볼까 무섭다, 그 새댁이 진짜 제대로 된 화상이랑 안 살아봐서 철없는 소리를 한다며 까르르 하신다고요. 

 

 

<칠곡 가시나들>을 극장에서 볼 때 약간 의아했어요. 1930년대 일제 시대에 나고 자란 딸들은 당시 '가시나가 글 배아서 머할라꼬'하는 소리에 학교도 못가요.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 나이 60이 넘어 문해학교를 다니는데요. 할아버지 중에도 문맹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칠곡 머스마는 없고 가시나들 뿐일까? 할아버지들은 체면 치레 하느라, 문해학교에 안 온답니다. 자신이 무언가 모르는 걸 인정하기 싫은 거죠. 칠곡에 내려가 몇 년 간 촬영을 하면서 보니 동네 할머니는 공부하러 마을회관에 모이고, 할아버지는 막걸리 가게에 모이더래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공간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어요. 바로 웃음입니다. 마치 할머니들은 살짝 스쳐도 까르르 하고, 할아버지들은 톡 건드리면 버럭 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할머니들의 마을회관에는 별일 없어도 웃음이 넘치고, 할아버지들의 막걸리 가게에는 온갖 '썰전'으로 화가 넘쳐요.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게 성공적인 인생이라지요. 웃음기 사라진 할아버지들만의 공간에서 거창하고 공허한 시사토론으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건 우리나라 노년 남성들의 집단적인 비극입니다. 엄격한 남녀 구별과 체면, 가부장 문화의 부메랑이 재미없는 인생 마무리란 형벌로 돌아와 고통을 주는 느낌이랄까요.'  

(61쪽)

책을 읽어보니 김재환 감독은 <칠곡 가시나들>을 만들며 '노후의 행복이란 무엇일까'란 주제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네요. 책을 읽고 제가 내린 결론은, 늙어서도 '일용할 설렘을 찾아다니자', 즉 책을 읽고 공부를 하자, 고요. 새로운 노후의 꿈이 하나 추가되었어요. 

퇴직 후에, 김재환 감독이랑 둘이서 전국 순회 강연을 다닐 거예요. 자주 많이 웃겨드릴게요.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에 대해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강연이 끝나면 동네 맛집에서 밥을 먹고,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걷기 여행을 즐길 거예요. 김재환 감독이요, 영화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책도 잘 쓰고요, 강연도 잘 하더라고요. 

최근 올라온 김재환 감독의 세바시 강연을 소개합니다. 

 

추석 연휴, 웃음이 함께 하는 명절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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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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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보리랑 2020.09.29 0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는 울면 안되니 슬퍼도 화를 내고, 여자는 화를 내면 안되니 화나도 울고. 양쪽 다 비극이라네요. 슬플땐 울고, 화날땐 화내고. 웃길때는 낄낄낄 하고 삽시다

  3. 인대문의 2020.09.29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표정임을 깨닫고 입꼬리를 올리면 자주 웃어진다.
    자주 웃으면 성공이다.
    성공할 때마다 행복하다.
    행복할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추석 설거지 할 때 입꼬리 올리며 보내세요~*
    피디님처럼 우리집 설거지 담당은 저라서 저는 요가하면서 설거지 합니다 ㅋㅋ

  4. 최수정 2020.09.29 0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도 참 감명적이었는데 시집이 나왔네요. 꼭 읽어 보겠습니다~~^^

  5. 콩장 2020.09.29 0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웃은 게 성공이다! 맞네요!
    웃으면 복이 와요!! 가 맞네요.
    오늘 하루도 웃으며 보내겠습니다! ^^

  6. 아리아리짱 2020.09.29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피디님 아리아리!

    피디님 덕분에 김 재환 감독님의 작품<칠곡 가시나들> 영화를 알게되어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그 감동의 여운으로 전국 할머니들에게 이 영화를 즐기고, 배움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캠패인에 약간의 정성을 보탰습니다.

    그 미약한 보탬을 잊지 않고 어제 김재환 감독님의 단유필름에서
    저에게도 감독님의 <오지게 재미있게 나이듦> 책을
    선물로 보내주셨어요!
    김 재환 감독님의 정성과 의리에 완전 감동 먹었습니다.
    저도 읽고나서 독서일기 올리겠습니다.

  7. 섭섭이짱 2020.09.29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피디님이 쏘셔서 <가시나들> 를 피디님과
    같이본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책으로도 나왔군요.
    맞아요. 웃으면 복이 온다고하는데...
    많이 웃어야죠 😃😁😆🤣😊😉😍
    설레는 일들도 많이 만들기 위해
    호기심도 계속 키우려고요 ^^

    오•재•나 강연 환영합니다.
    두분의 팬으로써 무조건 무조건 달려갑니다~~~

    피디님도 보름달처럼 웃음 가득한 한가위 보내세요

    • 섭섭이짱 2020.09.29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의 곡은 나이듦에 대한 노래인데
      공부 내용으로 조금 개사를 해봤습니다 ^^

      🎵🎶🎵🎶🎵🎶🎵🎶🎵🎶

      < 내 나이가 어때서 >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배우고 싶은 내맘 때문에 하루종일
      설레게 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

      🎵🎶🎵🎶🎵🎶🎵🎶🎵🎶

    • 아리아리짱 2020.09.29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섭섭이짱님 아리아리!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큰소리로 합창 보탭니다. ^^

  8. 꿈트리숲 2020.09.29 0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써 1년 하고도 반년이 더 되었네요.
    작년 3월 아트나인에 모여서 <칠곡가시나들> 영화를 본 게요.
    영화도 재밌었고, 그런 영화를 만드시는 김재환 감독님, 그런 감독님을 응원하는 피디님 모두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오지게 재미나게 나이들고 싶다면 할머니들처럼 계속 배워라.
    오지게 재미나게 나이들고 싶다면 김재환처럼 좋아하는 걸 계속 하라.
    오지게 재미나게 나이들고 싶다면 김민식처럼 좋은 친구를 계속 응원하라.

    그날 제가 새긴 교훈입니다~~^^

  9. 오달자 2020.09.29 1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반가운 소식이네요~
    김재환 감독님 책이 나왔다니!
    당당 사봐야겠습니다~^^

    지난 2018년 피디님께서 영화<칠곡 가시나들> 단체 관람에 초대해 주신 덕분에 지금의 좋은 인연....이어 갈 수 있게 되어 너무도 감사합니다.^^

    두 분이서 오지게 재미나는 강연!
    기대 기대 됩니다~

  10. GOODPOST 2020.09.29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나는 얼마나 자주 웃고 있는지?
    억지로라도 많이 웃어야 겠습니다.

    pd님의 퇴직 후 강연을 보며 웃을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11. 아빠관장님 2020.09.29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피디님의 글도 오지게 재있네요!!!! ㅎㅎㅎㅎ

  12. 모험생띠띠 2020.09.29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피디님의 좋은 글 한편 덕분에 미소짓습니다. 자주 많이 웃어야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13. 밀리멜리 2020.09.30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읽고 싶어졌어요!! 많이 웃고 사는 게 성공이라는 것 공감합니다. 저도 저렇게 멋있게 늙고 싶네요.

  14. 나겸맘 리하 2020.09.30 0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게 의미있는 거다!!
    강렬한 문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가족들 모임에서 '어휴 저 화상' 시를 들려줘야겠어요.ㅎㅎㅎ

    글자 모르는 할머니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본 감독님의 시선도 깨달음도
    참 귀하네요.
    웃음을 길어올리며 삶의 의미를 새기는 법을
    두 분께 배우고 갑니다.
    콜라보 강연 기대하며... 즐거운 명절되세요~~

  15.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9.30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진짜 블로그맛집이네요
    오지게 재밌어요
    피디님과 김재환 감독님의 순회 강연
    엄청 기다려집니다
    코로나는 학교, 직장을 언컨택트로 바꾸더니
    명절까지 ㅠㅠ
    그래도 마음만은 풍성하게 나누는
    한가위가 되시길

  16. 새바지 2020.09.30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전화와 용돈 그리고 설렘!!

  17. 영광굴비 2020.10.01 0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칠곡 가시나들 감독님이 책을 내셨네요. 극장에서 피니님과 김재환감독이 함께 이야기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네요. 모두가 웃는 즐거운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18. 수린 2020.10.01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글 읽을 때마다 인생의 지혜를 얻는기분~
    삶의 방향도 다시 생각하게 해주신 글입니다~^^

  19. 하영하린맘 2020.10.03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석을 끝내고 집에서 쉬는 첫 하루ㅎ 눈과 귀를 역시나 즐겁게 해주시는 글을 보고 자주 많이 웃자라고 다짐하네요. 늘 저희에게 최선을 다하시는 울부모님들♡ 이제 마음을 헤아려드리는 자식이 되길 다짐해봅니다^^

  20. 봄처녀 2020.10.05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칠곡가시나들 아직 못봤는데 꼭 찾아 볼께요 감사합니다~~ 걷기가실때 끼워주심 안될까요 ㅋㅋ

  21. 슬아맘 2020.10.06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분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