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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7 문제가 아니라 답이다 (19)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아버지는 평생을 못난 아들 걱정하며 사신다. 어려서 내 글씨는 지렁이 기어가듯 악필이었다. 아버지는 글씨를 잘 써야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셨다. 직장에서 보고서를 다 손으로 쓰던 시절이다. 중학교 때 서예학원에 가서 펜글씨까지 배웠지만 발전이 없었다. 문과에 가면 악필이라 먹고 살기 힘들다며 아버지는 내게 공대 진학을 강요했다. 훗날 컴퓨터 덕분에 글을 쓰는 게 아들의 취미이자 부업이 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모르셨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방송 노조 부위원장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염려하실까봐 사실을 숨겼다. 하필 검찰이 나를 업무방해로 고발하고, 경찰에서 출석 요구서를 집으로 보내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 회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아버지는 혀를 차셨다. “나이 50에 회사에서 징계나 받고 뭐하는 짓이냐. 그러게 노조는 뭐 하러 해서 이 고생이야.” 방송사가 언론장악의 제물이 되고, 피디들의 제작 자율성이 침해받을 때, 내가 찾은 답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함께 싸우는 것이었다. 내가 찾은 답이 아버지에게는 문제였다.

정부가 바뀌고 회사 사정이 좋아져서 아버지 근심은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도 아들 걱정에 수심이 깊다. 아버지의 평생 취미는 바둑이다. 노인복지관에 가서 바둑을 두며 하루를 보낸다. 아버지는 나만 보면 한숨을 짓는다. “너는 바둑을 둘 줄 모르니, 나중에 늙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래.” 그런 아버지의 삶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닥쳤다. 바로 코로나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노인복지관이 한 달 가까이 문을 닫았다. 갈 곳이 사라지자, 만날 사람도 없어지고, 하루를 사는 낙이 사라졌다. 10년 전, 아버지에게 구청문화센터에서 하는 컴퓨터 수업을 권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흔드셨다. “이 나이에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런 걸 배우냐.”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아버지가 한숨을 쉬셨다. “그때 컴퓨터를 배워뒀으면, 지금 같은 때 집에서 온라인으로 바둑을 두면 될 텐데.”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아버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는다. 아버지는 남의 충고를 듣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당신이 옳으니까.

나는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컴퓨터로 매일 글을 쓴다. 주말에는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읽고 공감을 누른다.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늘 걱정이다. “스마트폰 중독이 너의 큰 문제다. 그거 들여다볼 시간에 차라리 바둑을 배워라. 노후대비는 취미가 중요하다.”

코로나 탓에 즐겨가는 동네 도서관이 휴관을 했다. 요즘 나는 스마트폰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다. 극장 나들이가 쉽지 않아 온라인 플랫폼으로 영화를 본다. 대화 공부 모임이 있는데, 직접 만나는 대신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화상통화로 모인다. 코로나의 시대,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친구를 만난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나의 문제가, 내가 찾은 답이다.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니, 그 둘이 분리 가능한 것인가?’ 저출산, 욜로, 소확행 같은 단어도 너무 낯설었다. 한때 한겨레신문에 육아일기를 연재한 적도 있지만, 아이 없는 삶은 상상 할 수도 없다. 현재를 즐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노후대비라고 믿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나의 문제는, 내가 찾아낸 답이었다. 어쩌면 워라밸, 저출산, 소확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젊은 세대가 찾아낸 답을 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소득의 미래>라는 책을 보면 일자리가 사라지는 미래에 소득의 대안은 기본소득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면 “일하지 않고 돈을 받는 건, 노동 의욕을 저하시키는 문제가 될 거야.”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재난 기본소득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이번 일을 기회로 일자리의 미래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위기의 시대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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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섭섭이짱 2020.03.17 07: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아버님과의 에피소드지만 대상을 친구나 선후배, 직장동료로 바꿔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같네요. 나도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되돌아 보게되는데요.

    혹시나 경직된 생각의 틀에 나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여러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문득 책에서 본 문구가 생각나네요.

    "호기심을 잃지 말자"

    경직된 생각을 젊고 유연한 생각으로 바꾸려면 궁금해 하고 새로운걸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호기심이다라고요. 항상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겠어요

    코로나가 사회에 여러 문제들을 주고 있는데 지혜를 모은다면 슬기롭게 헤쳐나갈거라 봅니다.


    오늘도 생각할 거리를 주신 피디님
    고맙습니다.

  2.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3.17 0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좋은 아침입니다.^^ 기본소득,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년 기본 소득은 청년들의 생계의 안정화를 구축하게 되면서 그것을 발판삼아 미래의 좋은 인적 자원으로써 성장할 수 있는 동력원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재난 기본 소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가 다시 재환원해주어야 좋은 공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3. 보리랑 2020.03.17 0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두번 빵터졌어요~ 😂
    1. 노후 위해 바둑 배워라 2. 언제나 옳으신 당신

    화상이나 그룹콜로 독서모임 해봐야겄어요

  4. 아리아리짱 2020.03.17 0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 님 아리아리!

    '문제가 아니라 답이다.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답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문제가 답이 될 수 있는 것이군요.

    내가 문제라고 여기는 것들이 답일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렵니다.

  5. 고로 2020.03.17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 30년전 소비쿠폰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제를 시행했다가 대실패하고 국제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한 바 있는데.. 우리의 정의롭고 반일사상으로 똘똘뭉친 진보깨시민님들은 기본소득제 하려고 난리인가요?? 일본을 그렇게 따라하고 싶은건지... 똥을 꼭 먹어봐야 똥인줄 아는건지... 한심합니다!!!!

  6. 코넬리 2020.03.17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7. 나겸맘 리하 2020.03.17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기는 기회이고 시련은 꼭 선물과
    함께 온다는 말씀이 떠오르네요.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고 걱정하는 그 곳에
    '나의 해답'이 있다는 생각.
    그게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발상의전환
    아닐까요?

    아버님의 '초지일관 근심걱정형'의 자세가
    피디님을 더 주체적, 긍정적으로
    만드신 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교훈과 감동을 주면서도 재미요소까지
    두루 갖춘, 한편의 시트콤을 본 느낌.^^
    (주인공=아버님)

  8. 미니쭌 2020.03.17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세대가 말하는 문제가 아랫서대가 찾은 답이라니 곰곰 생각하니 정말 맞는말 같아서 크게 공감하고 갑니다~

  9. GOODPOST 2020.03.17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 변화에 적응 못하면 도태되는 세상.
    과거의 아버지 세대가 생각하는 나의 문제가 현재를 사는 나에게 필요한 답이되고
    현재의 내가 생각하는 문제가 미래의 세대에는 답이 될수 있다.

    어쩌면 코로나로 위기의 시대를 맞고있는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것 같습니다.

    항상 놀랍니다. 아버지의 에피소드 글에서
    더 넓은 세상을 생각하게하는 작가님의 멋진 글,,,감사합니다.

  10. 오달자 2020.03.17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요.
    그 다름을 인정하는 걸 보통 사람들은 어려워하죠.

    나와 다른 그를 인정하고 그와 다른 나를 인정해준다면 분쟁도 없어지고 좋을텐데 말이죠.
    사람들은 항상 나와 다른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찾으신 문제가 피디님께서는 답이 되다.
    스마트한 세상~~
    우리 스마트하게 삽시다아~~~^^

  11. 헤니짱 2020.03.17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잘지내시죠?
    늘 피디님 글을 읽고나면 뭔가 생각할 거리가 생겨요~ 고맙습니다^^

  12. 꿈트리숲 2020.03.17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아버지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아직 크게 편찮으신 곳도 없고 매일
    등산을 하며 온라인으로 바둑도 두시고 복지센타에서 노인 요가도
    배우고 계세요.

    오래전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아빠에게 전 귀찮아하며 가르쳐드렸는데, 좀 더 친절하게 알려드릴걸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렇게나마 배운 컴퓨터로 요즘 같은 방콕 시기에 아주 잘 활용하고 계시니
    말이죠. 젊은 사람들이 주가 되는 세상, 그들에게 답을 구하면 좀 더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 나올 것 같아요.
    스마트폰도 드라이브스루도 화상모임도 그들이 추구하는 편리함에서 나온거지 싶어요.

  13. 슬아맘 2020.03.17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좋은 글 때문에 기본소득에 대해서
    고민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14. 토끼의시계 2020.03.17 15: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할 거리가 느는 글이네요
    인생에서 말 못할 부분을 만드는 게
    살아가는 시간이죠.

  15. 김주이 2020.03.17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름을 존중하며 그 안에서 답을 찾는다.
    좋은 가르침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16. 더치커피좋아! 2020.03.17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기의 시대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늘 하던대로 하려고 했는데
    앞이 가로막혀 길이 보이지 않는.
    그런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늘 가던길로만 가려고 하지 말고
    새로운길을 만들어가는 기회의
    시간이 온것도 같습니다.
    힘들고 지친 시간들이지만..
    피디님처럼 마음을 유연하게 갖고
    늘 배우고자 하면 길이 보일것도
    같습니다.
    오늘도 고생많으셨어요~
    피디님~파이팅!

  17. 김한소 2020.03.17 2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18. 캐뤼 2020.03.18 0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세소상공인으로서 실패의 두려움 속에 있는 저로서는 기본소득이 간절합니다. 밥벌이에 하루종일 시달리는 분들을 봐도 그렇고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듯 무조건적인 복지를 바라며 오늘도 살아갑니다

  19. 시엘 Ciel 2020.03.22 1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오늘은 주말이라그런지 글이 올라오지 않네요. 이전에 읽지 않았던 글을 읽고 갑니다. 읽으면서 20대인 저도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