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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뒷담화가 필요한 이유

by 김민식pd 2016. 2. 29.

2016-40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 조현욱 옮김 / 이태수 감수 / 김영사)

명불허전이다! 올해 들어 읽은 책 가운데, 단 한 권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이 책이다.

 

'언론사 선정 2015 올해의 총정리'란 글이 있다. 신문이나 주간지에서 연말 결산으로 작년에 출판된 책을 선정한 기사를 갈무리한 글이다. 나는 요즘 도서관이나 서점에 갈 때 꼭 이 리스트를 참고한다. 

http://dvdprime.donga.com/g5/bbs/board.php?bo_table=comm&wr_id=9633543

그 중 중복 추천된 책들도 있다. 최다 횟수부터 차례로 보면,

 

6번

<사피엔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5번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담론>​

<한국이 싫어서>

 

4번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사람,장소,환대>

<송곳>

<음식의 언어​>

등이다. 작년 한 해, 서평가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 받은 책이 '사피엔스'다. 

 

다독 비결 40

책을 많이 읽으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바쁜 일과 중 시간을 내어 책을 읽기 때문에 그만큼 만족과 효용이 높은 책을 골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믿을만한 추천 목록 리스트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추천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다독의 비결이다.

 

'사피엔스'는 인간 문명의 발달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다. 곳곳에 머리를 치며 감탄케 하는 대목이 나온다.

'온갖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칼로리의 90퍼센트 이상이 밀, 쌀,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처럼 우리 선조들이 기원전 9500년에서 3500년 사이에 작물화했던 한줌의 식물들에서 온다. 지난 2천 년 동안 주목할 만한 식물을 작물화하거나 동물을 가축화한 사례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같은 책 122쪽)

아, 정말 이렇게 새로운 정보를, 이렇게 놀라운 언어로 표현해내는 작가가 또 있던가. 정말 대단한 작가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우리 시대의 친숙한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과거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 데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 걸렸다. 요즘 나는 이메일을 휘갈겨 쓰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종이 우편물 시대에 편지를 쓸 때는 대개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뿐이었다. 머릿속에 처음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리고 역시 그렇게 심사숙고한 답장을 받을 것을 기대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주고받는 편지가 한 달에 몇 통 되지 않았으며 당장 답장을 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지도 않았다. 오늘날 나는 매일 열 통이 넘는 메일을 받고, 상대방은 모두 즉각적인 답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몇년 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배낭여행을 갔다가, 그곳에 있는 사원들을 돌아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가보면 사원이 많이 있는데, 모든 사원이 앙코르 툼처럼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투박하고 단순하게 지어진 사원도 많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점점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경쟁이 불붙고, 조각의 정교함이나 규모가 상향평준화되더라. 시작은 사치품인데, 그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건 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여행을 다니며 항상 궁금했다. 저 많은 문화유적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사치품으로 시작한 공사가 나중에는 필수가 되면서 많은 희생이 따랐을 것이다. 피라미드나 이스터 섬의 거석상처럼 후손들에게 관광 상품을 남기지만, 그런 공사를 담당했던 당시의 노예나 노동자들은 행복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문화유산보다 자연유산을 많이 물려주신 우리 선조들이 참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타인의 노동에 대한 착취가 없었다는 뜻이니까. (안다, 이거 아전인수인거. ^^)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 중 하나는 언어의 좀 더 유려한 구사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차이로 인해, 한 종은 멸종하고 다른 한 종은 문명을 발달시켰다.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별 남성이나 여성이 사자와 들소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중략)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의 책 47쪽)

 

뒷담화가 사피엔스의 생존과 발달을 담보한다면, 국가의 흥망은 체계화된 뒷담화, 즉 언론에 좌우된다. 나치 독일의 경우, 언론을 매우 효과적으로 정부가 독점했다. 히틀러에 대한 뒷담화보다 유태인에 대한 뒷담화가 대량 생산 되었고, 이는 유태인 집단 학살에 이어졌다. 그것이 결국 나치 독일의 패망을 부른 원인이 된다. 전쟁에서 이기는 건 명분을 얻는 쪽이다.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란 쉽지 않다. 상대 진영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 중 하나는 적에 대한 뒷담화다.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이 건강한 뒷담화라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한 뒷담화가 생산되고 있는가? 언론이 정부의 견제 및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민주주의 시대니까 당연히 잘 되고 있겠지' 하고 순진하게 믿지는 말자. 내가 듣기로 파업을 했다고 노조 집행부를 해고하는 방송사도 있고, 아무런 이유없이 그냥 해고했다고 술자리에서 자백하고도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미는 방송사 임원도 있단다. 법원이 부당해고라고 판결을 내려도 복직시키지 않고 버티는 방송사도 있고, 기자와 피디들을 일터에서 내쫓고 방송 통제를 배후조종하는 정부도 있다.

 

사피엔스가 문명을 이루게 된 건, 집단으로의 협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건강한 뒷담화가 사피엔스의 성공 비결 중 하나다. 도덕성이 실추되고 신뢰가 무너지면 구성원간의 협력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지배 집단의 잘못에 대해 건의와 검증이 필요하다. 어떤 회사든, 사회든, 나라든, 발전을 위해서는, 뒷담화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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