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아내, 그리고 또다른 외대 통역대학원 출신 커플, 이렇게 넷이서 한달에 한번씩 고전 독서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책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임승수'이었구요.
2014/06/11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지금 '자본론'을 읽는 이유
그 다음에는 '국부론 -아담 스미스' '총 균 쇠 - 제레미 다이아몬드', 그리고 이번에는 '종의 기원 - 찰스 다윈'을 읽었답니다. 돌아가며 발제를 하는데, 이번에 제가 한 발제문을 올립니다. 책은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송철용 교수님 번역본입니다.)
내 생각을 내 것이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하는 생각은 이제껏 내가 읽은 것, 들은 것, 본 것의 총합 아닌가. 우리가 누리는 문화와 역사도 선조와 동세대 타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온전히 내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결국 집단에 속한 하나의 개체로서, 다중지성의 일부를 공유하고 그 속에서 누리는 안락함을 즐길 뿐이다.
모든 사람이 믿는 공통의 신념에 반대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종교와 정치가 다르지 않기에, 신의 이름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과 권력을 종교가 독차지 하던 시절, 신이 만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선택에 따른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어떤 일이었을까?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 엠마조차 편지에서 ‘당신의 그 진실한 의심으로 인해 우리는 사후 세계에서 이별하게 될지 모르는 게 걱정’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진화론은 위험한 생각이었다. 남편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우려하는 신심 깊은 아내와, 너의 조상은 그럼 원숭이와 고릴라 중 어느 쪽이냐며 조롱하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을 창시한다. 물론 개정판 마지막에서는 ‘생명은 최초에 창조자에 의해 소수의 형태로, 또는 하나의 형태로 모든 능력과 함께 불어넣어졌다고’ (480쪽) 말하지만 말이다.
‘종의 기원’이라는 책은 ‘생각의 진화’를 보여준다.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와 숱한 원예 및 곤충 박물학에 대한 책을 읽고 다윈은 다른 이들의 생각을 모아 거기에 자신만의 상상을 더해 새로운 이론을 완성시킨다. 책에서 언급한 수많은 다른 학자와 책과 논문은 잊혀지고 사라졌지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지금 현재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생각의 하나로 인정받고 자리 잡고 있다.
‘건강하고 활발하며, 또 운이 좋은 자가 살아남아 증식하는 것을 완전히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94쪽) 생존경쟁을 벌인 개체가 그러하듯, 다윈의 생각 역시 오래도록 살아남아 증식을 거듭하고 숱한 자손을 얻기에 이른다.
‘광대한 대륙 지역이 오래 존속하고 넓게 분포하는 생물의 새로운 조류를 다수 생성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곳이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처음에 대륙으로 존속하는 동안 개체수와 종류가 많았던 생물들이 매우 엄격한 경쟁을 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1쪽) 200년 전 다윈의 글 속에서 ‘총 균 쇠 - 제레미 다이아몬드’에서 지적한, 대륙에 따라 가축의 발달이 다른 이유를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다양한 비둘기의 교배와 원예 식물의 교접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책의 초반은 언뜻 지루한 듯 보일 수 있지만, 애완동물과 가축, 농작물의 새로운 품종을 공부하고 관찰하는 것이 18세기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접근은 자신의 위험하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생각을 대중에게 쉽게 전하기 위한 다윈의 고민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23쪽에 소개되는 ‘형질의 분기’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다. ‘처음에는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끊임없이 증대시키고, 또 품종을 그 형질에 있어서 상호간에도, 또 그 공통의 조상으로부터도 분기시켜 가는 원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125쪽) ‘동일한 강 안의 모든 생물의 유연관계는 때로는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에서 나타난다. 나는 이 비유가 매우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144쪽) ‘싹은 성장을 통해 새로운 싹을 만들고 그들의 세력이 강하면 다시 가지를 쳐서 모든 방면에서 다른 연약한 가지들을 능가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큰 나무’도 세대를 거듭하면서 죽어서 떨어진 가지로 지각을 채우고(화석), 계속 분기하는 아름다운 가지들로 지표를 뒤덮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45쪽)
Tree of Life! 이렇게 아름다운 비유를 들 줄 아는 다윈!
‘극도로 완성되고 복잡해진 기관’ (191쪽) 즉 우리의 눈을 찬양함으로써 다윈은 진화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눈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우리가 흔히 미개한 생물이라 일컫는 삼엽충을 보면 된다. 가장 초기 삼엽충의 눈은 방해석으로 만들어졌다. 시각의 발달을 거듭하면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시력이 경쟁적으로 향상된 것이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원인이라고 하니, 눈은 진화를 촉발시킨 주역이기도 하고, 그 자신 놀라운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상상하기로는 뻐꾸기 새끼가 배다른 형제를 둥지에서 밀어내는 것도, 개미가 노예를 만드는 것도, 맵시벌과의 유츙이 살아 있는 모충의 체내에서 그 몸을 파먹는 것도, 모두 개별적으로 부여되거나 창조된 본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을 증식시키고 변이시키거나, 강자는 살리고 약자는 도태하여 진보로 이끄는 일반적인 법칙의 작은 결과로 간주하는 편이 훨씬 만족을 안겨준다.’ (253쪽)
지리적 분포에서 종자가 흩어 퍼지는 방법을 입증하기 위해 87종류의 씨앗을 28일간 바닷물에 담가 두고 그중 64종이 발아하고, 몇몇 종은 137일간 담가 두어도 살아있더라고 쓰는 걸 보니, (358쪽) 다윈이 얼마나 성실한 연구자인지 알 수 있다. 하긴 이렇게 혁명적인 생각을 알리려면 그 정도로 준비는 해야겠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걸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다윈의 방대한 저작을 읽으며 순간순간 겸손해진다.
다윈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도 아우르기 위해 책에 한 신학자의 편지를 소개한다.
“하느님이, 저절로 발달하여 다른 유용한 생물이 되는 능력을 가진 소수의 근원적인 종류를 창조했다고 믿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참으로 고귀한 개념이라는 것을 차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471쪽)
‘현재 살고 있는 종 가운데 어느 종류든 매우 먼 미래까지 자손을 전파하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생물이 군을 형성해 가는 양상은, 각각의 속에 포함된 대다수의 종이, 또 많은 속에서는 모든 종이, 전혀 자손을 남기지 않고 모두 멸종했음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에 대해 대체로 예견해 보건대, 궁극적인 승리를 차지하여 새롭고 우세한 종을 만드는 것은 개개의 강 속에서 크고 유리한 군을 이루며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종일 거라고 예언할 수 있다.’ (479쪽)
식물학자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윈은 이렇게 고백한다. (부록 565쪽)
‘농업과 원예에 대한 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읽고, 끊임없이 사실을 모았습니다. 마침내 광명이 비쳤습니다. 그리고 나는, 종이 불변이 아님(살인을 고백하는 것 같지만)을 거의 확신(당초의 생각과는 전혀 반대로)하게 되었습니다.’
살인을 고백하는 심경으로 쓴 책이다. 새삼 다윈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20대 청춘들에게 삶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 여행, 연애’를 즐기라고 말하는데, 책을 보니, 다윈도 이 셋을 통해 진화론을 만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비글호를 타고 떠난 모험 여행에서 그는 하나의 의문을 떠올린다. ‘섬마다 다른 모습으로 발달한 저 핀치 새들이 제각각 창조된 것일까?’ 여행에서 얻은 영감은 독서를 통해 단단해지고 새로운 이론으로 모습을 갖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노력의 결과는, 지식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혹은 책임감이라는 열정에 의해 마치 살인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 것이다.
‘독서, 여행, 연애’, 세 가지 즐거움의 위대함을 칭송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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