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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엔 브레이크를!

by 김민식pd 2014. 5. 14.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취미 사이클 부의 일원으로 자전거 전국일주를 했다. 그중 가장 경치가 아름다웠던 구간은 포항에서 속초까지 가는 동해안 7번 국도다. 오른쪽에는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왼쪽에는 태백산맥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이 코스를 달린 후 서울로 돌아오려면 반드시 넘어야할 고개가 있다. 바로 한계령이다.

 

자전거로 한계령을 오르는 건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 클릿 슈즈라고 해서 발을 페달에 꽉 붙들어주는 신발 덕에 밟는 힘과 끌어올리는 힘을 온전히 활용하기에 오르막을 오르는 게 그나마 수월하다. 하지만, 자전거가 멈추면 발이 페달에 묶여 있어 그대로 자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니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 산을 올라야한다.

 

   (그립고도 고마운 쿠르카 친구들~)

3시간을 죽어라 올라 정상에 도착한 순간 맥이 탁 풀려 한계령 휴게소 옆 주차장에 쓰러졌는데 선배가 나무 막대를 하나 들고 왔다. “, 다들 수고했다. 이제 엎드려 뻗혀서 빠따 한 대씩 맞자.” 고생스레 한계령을 올랐는데 칭찬은 못 해줄망정 웬 매타작이냐.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를 때는 큰 사고가 나지 않는다. 넘어져봤자 무릎만 좀 까질 뿐이다. 진짜 위험한 건 내리막이다. 고생 끝에 오른 산이니 내리막에서 속도를 즐기고 싶은 마음에 브레이크를 아끼다보면 아차 하는 순간 자전거가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 버린다. 연속 내리막 커브 구간에서는 브레이크를 믿어서도 안 된다. 스피드를 즐기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으면 핸들에 연결된 가는 철사가 끊어져버리는 수가 있다.

 

기합을 주던 선배가 그랬다. “오르막보다 더 무서운 건 내리막이다. 내리막보다 더 무서운 건 스피드를 즐기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고,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산에 오를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세월호가 침몰했다. 우리가 누려온 자본주의 성장의 추악한 민낯이 온 세상에 드러났다. 우리 경제는 지난 수십 년간 미친 속도로 성장해왔다. 이제는 성장보다는 분배를, 경쟁보다는 공존을 생각해야할 시기가 되었건만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자본가는 무엇보다 이윤 추구를 우선으로 삼는 이들이다. 우리는 CEO 대통령을 뽑는답시고 정치권력을 자본가에게 넘겨주었다. 환경과 국민의 안전을 자본가에게 넘겨준 결과가 4대강이다. 그러고도 우리는 다시 경제 성장에 대한 환상에 빠져 40년 전 유신 독재를 21세기에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뽑힌 대통령은 경제 성장을 위해 규제 철폐가 우선되어야 한다며, 자본에 대한 규제를 암덩어리라 불렀다.

 

내리막에서 중요한 것은 엔진이 아니라 브레이크다. 국가에서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시장에 대한 견제와 언론의 감시 기능이다. 우리는 스스로 브레이크를 해제시켰다. 시장의 규제는 자본가 입맛대로 다 뜯어고치고 정부와 자본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은 말살 일보 직전이다. 권력의 심기에 거스를까 노심초사하던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정부가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데도 뉴스는 최선을 다해 구조중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오죽하면 유가족들이 KBS 앞에 몰려가 보도 국장 물러나라고 시위를 다 했겠나. 그 보도국장이 물러나며 지른 일성이 권력의 눈치만 보는 KBS 사장 사퇴하라라니, 이거야 말로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보면 욕 나오는 드라마를 막장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진짜 막장은 요즘 공중파 뉴스다. 막장 드라마는 시청률이라도 나오는데, 막장 뉴스는 하도 욕을 먹어서 광고도 안 붙는다. 양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내리막을 질주하는 나라, 이러고도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만 반복할 텐가?

 

(PD 저널 연재 칼럼, 김민식 피디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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